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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Sep 20. 2022

집 앞 공원에 공공임대주택을 짓는다고 합니다.

'임대주택 혐오' 정서와 생활권 공원 갈망 사이에서

지역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드리기 위해 쓰는 글은 절대 아닙니다. 그냥 여러가지 면에서 고민이 되어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볼 겸, 또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임대주택 혐오' 정서와 관련 쟁점들을 한번 다같이 짚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써봅니다. 사실 제목을 '집 앞 공원에 <공공임대주택>을 짓는다고 합니다.'로 할지, '집 앞 공원에 <아파트>를 짓는다고 합니다.'로 할지도 고민이 되더라고요.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봐요.


저는 서울에 살고 있고, 주택이 들어올 공원은 집 근처 사거리의 한 귀퉁이에 있습니다. 집에서 조망할 수 있는 건 아니고, 한 5분 정도 걸어나가야 만날 수 있는 공원입니다. 원래는 여러 정부기관이 모여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기관들이 행정도시 세종 등 여러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주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개방됐습니다. 기관들이 쓰던 건물은 그대로 남아 중소기업이나 NGO, 시민사회단체들의 사무실이 들어서 있습니다. 나무숲과 잔디 중심의 정원 같은 공원보다는 대학캠퍼스 같은 공원에 가깝습니다. 올림픽공원이나 서울숲처럼 흔히 떠올리는 공원보다는 훨씬 작은, 그냥 '동네 공원'이라고 부를만한 곳입니다. 공원 한바퀴를 돌면 500~600m 정도 됩니다.

Photo by Ignacio Brosa on Unsplash

공원 주변은 아파트도 많고 빌라도 많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는 주거지입니다. 이 곳으로 이사오기 전 동네를 둘러볼 때 지하철역에서 살짝 멀다는 감이 있었지만, 이 공원에 가깝다는 점에 점수를 더 주면서 이 곳을 살 집으로 골랐습니다. 그 전에 살던 동네는 자동차공업사 같은 공업용지와 주택용지가 뒤섞여 이런 공원은 좀처럼 찾기 힘든 곳이었거든요. 그 때 제가 역세권보다는 '공세권'을 더 중하게 여긴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공세권의 앞날은 이제 불투명해졌습니다. 사실 이 공원을 택지로 삼자는 이야기가 나온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서울의 공공용지 중에서는 입지가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정부나 서울시가 새로운 주택공급 유형(예를 들면 '반값아파트')을 띄울 때면 언제나 시범지로 이 공원이 거론되곤 했습니다.


사실 주민들도 이 곳을 공원으로 남겨두길 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후보들이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 복합문화시설을 짓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주민들 중에는 그냥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지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변이 온통 집들뿐이다 보니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생활권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주 무리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부지 소유권을 가진 서울시는 주민들의 바람을 적당히 받아들여 시립대학교 캠퍼스 일부를 이 공원에 유치한다는 계획 정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 싫더라고요. 그냥 걷고 뛰고 강아지들이나 실컷 볼 수 있는 공원으로 남길 바라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선선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무더운 여름에도 아침저녁이면 어김없이, 또 주말이면 산책과 나들이를 즐기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1년 내내 끊이지 않는 곳이어서요.


하지만 문화시설이니, 공원이니 이런 식으로 곳곳의 사정을 다 고려하다 보면 서울에서는 결국 공공주택 지을 땅을 하나도 찾을 수 없겠지요. 생활권 공원 운운하는 건 '주택 공급'이란 대의, 또 전체 주택 중 7~8% 정도인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대의 앞에서 한없이 약해보이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생활권 공원 역시 소중하다는 것도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녹지 하나 없이 주택과 건물만 가득 들어차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으니까요. 생활권에 대한 인식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도 합니다. 서울시가 오래 전부터 '10분 동네'나 '생활 SOC' 같은 사업들로 동네에 부족한 문화·교육·여가시설을 공급하려고 애써왔고, 부산 등 여러 도시가 프랑스의 '15분 도시' 개념을 차용해 생활권 형성 사업에 집중하는 것을 보면요.


저는 동네에서 논의가 이런 방향으로 굴러갔으면 좋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공공임대주택 찬반' 구도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 씁쓸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일부 주민들이 이미 반대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서명란 위에 "우리 동네에는 공공임대주택만 짓습니까?"란 문구를 보고는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덧붙이면, 사실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가장 염려하는 건 집값일텐데, 그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약하다는 건 이미 여러 논문을 통해 입증된 바 있습니다. 설령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그 지역민 입장에서는 불만을 가질 수 있겠으나, 좀 더 긴 시간과 넓은 지역의 관점에서 보면 전체 집값을 안정시킨다는 의미 또한 있겠습니다.


사실 내 집 주변 임대주택을 거부하는 심리의 큰 부분은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와 관련이 있겠지요. 임대아파트 사는 아이들과 학군을 분리해 달라는 분양아파트 사는 부모들의 요구는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니까요. 아마 장애학생을 위한 특수학교인 '서진학교'를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장애아를 둔 부모들이 학교 건립을 허가해 달라고 무릎 꿇는 장면으로 많이 알려지게 됐죠. 서진학교 갈등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역시 주변 임대아파트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들을 분리하고자 했던 분양아파트 주민들의 '숙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다시 저희 동네로 돌아와 보면, 처음부터 많은 주민들이 요구했던 건 공원의 존치가 아니라 공원의 개발이었습니다. 그리고 '공공임대주택 반대'란 구호는 이미 세상에 나와버렸습니다. 생활권 공원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설자리가 없는 듯합니다. 앞으로 이 지역의 갈등은 '문화시설로 개발 VS. 공공주택으로 개발', 이런 구도가 되겠네요. 사실 앞서도 얘기했듯이 문화시설이든 공원이든 주민들이 무엇을 요구하든 '공공주택 공급' 앞에서는 모두 '님비(NIMBY)'가 될 수밖에 없겠지요. 저는 왠지 이 갈등의 결말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Photo by Carl Newt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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