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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남설 Jan 25. 2022

'작은 마을'을 만드는 재개발

재개발인데 뭔가를 보전하자는 '백사마을 프로젝트'

재개발·재건축은 무조건 ‘덩치’를 키워야만 성립하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1000세대가 사는 단독주택 단지를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하려면 아파트 세대 수가 1200세대는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1000세대가 집을 한 채씩 받고, 나머지 200세대를 외부인에게 분양해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거죠. 2~3층짜리 집을 허물고 20~30층짜리 아파트를 새로 짓는 일엔 당연히 돈이 들어갑니다. 그 공사비를 바로 200세대 분양대금으로 충당하는 거죠.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원래 살던 1000세대도 돈을 내야 합니다. 그걸 '분담금'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아파트를 1200세대가 아니라 1400세대로 지으면? 분양대금은 200세대에서 400세대로 2배 늘어납니다. 당연히 기존 1000세대가 내야 할 분담금이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재개발·재건축조합은 어떻게든 세대수를 늘리려고 합니다. 용적률을 키우고 층수 제한을 없애려는 게 다 그런 노력의 한 가지입니다. 내가 사는 곳을 더 크고, 더 높은 아파트로 고쳐지을수록 오히려 내가 내야 할 돈이 줄어드는 희한한 판이 바로 재개발·재건축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런 재개발·재건축 논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사업이 있습니다. 바로 '백사마을 프로젝트'입니다.


백사마을은 서울 노원구 중계본동 104번지 일대를 말합니다. 불암산 기슭에 자리한 백사마을은 1960년대 지정한 철거민·이재민 이주정착지 중 한 곳이죠. 그때 서울시가 청계고가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청계천변 무허가 판잣집을 철거하면서 그곳에 살던 이들을 현 백사마을 자리로 이주시켰습니다. 서울시 기록에는 1967~1968년 모두 1180가구가 이주했다고 나옵니다. 지금 백사마을은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립니다. 서울에선 시멘트 블록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은 집이 줄줄이 늘어선 풍경을 볼 수 있는 몇 안 남은 동네 중 하나입니다. 최근엔 재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데요, 2008년부터 재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해 2022년 1월 현재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중입니다. 조만간 철거와 건설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 재개발 프로젝트엔 뭔가 남다른 구석이 있습니다. 18만7000㎡ 부지를 7 대 3으로 나눠서 큰 땅(7)에는 최고 20층 아파트 1950여 세대를 짓습니다. 작은 땅(3)에는 최고 4층 저층주택 480여 세대가 들어섭니다. 4층이라고요? 이해하기 힘든 구조입니다. 4층이 아니라 14층, 24층으로 올린다면 480세대가 아니라 1480세대를 짓는 것도 가능할 텐데 말이죠.


이 대담하거나 무모한 프로젝트를 감행하는 곳은 서울시입니다. 달동네를 재개발해서 기껏해야 4층짜리 주택을 짓는 이 프로젝트의 정식 명칭은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인데요. '주거지'를 '보전'한다니, 재개발을 한다면서? 심지어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엔 건축가 10여 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모두 건축계에서는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작품 활동이 왕성한 건축가들입니다. 이 건축가들은 지금 이 사업을 8년째 맡고 있죠. 이 사업은 대체 무엇이길래, 이런 걸출한 건축가들의 재능과 시간을 이렇게 붙잡고 있는 걸까요? 발에 채이는 게 아파트인 나라인데, 굳이 '값비싼' 건축가들에게 디자인을 맡겨야 할까요? 이런 의문이 드는 게 아주 당연합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이해가 안 가는 점이 더 많습니다. 이 건축가들이 공유한 이른바 <백사마을 디자인 가이드라인>이란 게 있는데, 그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디자인 스타일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을 것', '건축물을 독립된 개별 요소로 부각하지 않을 것', '공사비 상승을 부르는 외관 계획에 치중하지 않을 것'…. 이건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그냥 디자인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에 가까운 건 아닐까요?


이렇듯 이 사업은 '재개발'인데 뭔가를 '보전'하고, '디자인'을 하면서도 '개성'을 감추라고 요구합니다.

기존 터전을 갈아엎는 게 목적인 재개발사업에서 무엇을 보전하고, 왜 보전해야 하는 걸까요? 10여 명의 건축가들도 끊임없이 마주했을 질문입니다. 재개발에서 느닷없이 보전이 튀어나온 데는 시대적 배경이 있습니다.


서울시가 백사마을 재개발에 주거지보전사업을 시행하겠다고 선언한 2011년은 이른바 '뉴타운 출구전략'을 강구할 때입니다. 한때 서울 면적의 10%, 서울 인구의 15%가 뉴타운지구에 속한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뉴타운 바람은 거셌죠. 웬만한 평탄지를 모두 휩쓴 뒤, 백사마을처럼 개발 시대 도심에서 밀려난 도시 빈민들이 정착한 구릉지 노후주거지에도 들이닥쳤습니다. 옹벽을 치고 경사를 평평히 다져 아파트를 세우는 개발사업이 이전에는 경험해 본 적 없는 규모로 펼쳐질 기세였죠.


자연히 논쟁이 일었습니다. 백사마을은 불암산 자락에 있는 데다 2008년까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을 정도로 주변 환경을 보전해 온 지역이었는데요. 여기에 서울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아파트를 복제해서 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게 된 거죠. 이건 무려 뉴타운 공약을 걸고 당선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건축가 승효상이 2010년부터 이런 주장을 강하게 내세웠습니다. 그는 유네스코(UNESCO)의 <역사도시 보전을 위한 헌장>(1987)을 들고 나왔습니다. 이 헌장은 역사도시에서 보전해야 할 요소로 필지, 길, 지형, 생활방식을 꼽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백사마을을 재개발하면서 이 원칙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지형, 길, 터(집터·공터·텃밭 등)를 보전한다'라고 천명한 것이죠.  2018년 개정된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엔 주거지보전사업의 정의가 새로 담겼습니다. '재개발구역에서 기존 마을의 지형, 터, 골목길 및 생활상 등 해당 주거지의 특성을 보전하는 사업'.

하지만, '무엇을'을 빼도 '왜 보전하는가'란 질문이 여전히 남습니다. 백사마을 같은 산자락 마을에서 '지형, 길, 터'라고 해봤자 비탈에 구불구불하게 낸 골목, 그 길 옆으로 아무렇게나 가꾼 텃밭 같은 것들뿐인데 말입니다. 서울시는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을 발표하면서 "백사마을이 아날로그적인 서울의 옛 모습을 간직한 추억의 동네로 남는다(2011년 9월5일 서울시 보도자료)"라고 했습니다. 이건 주거지가 아니라 드라마 세트장을 만들겠다는 것일까요? 민속촌이나 디즈니랜드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향수와 환상을 자극할 뿐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건축가들은 좀 다르게 봤습니다. 백사마을의 지형, 길, 터가 순전히 사람의 손으로 일군 풍경을 간직했을 뿐만 아니라, '대면 공동체를 추동해 온 건축적 장치'(<백사마을 디자인 가이드라인>)이기 때문에 보전해야 한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말이 좀 어려운데요, 한마디로 이 비탈진 지형에서 백사마을 원주민들이 집을 지은 방식, 길을 낸 방식, 마당을 만든 방식, 텃밭을 가꾼 방식을 보면 이웃을 배려하고 함께 어울리며 살고자 했던 삶의 방식이 녹아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백사마을 지형은 북사면(남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경사지)입니다. 산자락에 집이 들어서는 방식이 대개 그렇듯, 백사마을에서도 낮은 쪽부터 한 채씩 집이 들어서면서 마을을 이루게 됐을 것입니다. 철수가 집을 짓고, 영희가 그다음에 집을 지으려면 철수네 집보다는 한층 높은 땅에 영희가 집을 짓게 됩니다. 그런데 지형이 높아지는 쪽이 남향이므로, 영희네 집은 철수네 집에 드는 햇볕을 가리게 될 수가 있습니다. 영희네가 집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철수네 일조권이 달린 것이죠. 건축가들은 백사마을에서 집이 한 채씩 늘어날 때 그전에 있던 집의 일조를 훼손하지 않게 노력한 흔적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공동체적 흔적'이죠.

그렇게 집을 하나씩 짓는 과정에서 어지러이 형성된 골목은 그야말로 백사마을의 공동체적 성격을 잘 드러내는 공간입니다. 한 건축가(민현식)의 표현을 빌리면, 가난하고 좁은 집에 살았던 백사마을 주민들에게 골목은 "거실이자 부엌이며 때로는 잠을 자는 공간"이었습니다. 골목은 저마다 폭도 다르고 길이도 다를 텐데, 어떤 골목은 그냥 지나다니는 길이 아니라 머무르는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걸터앉을 만한 계단이나 낮은 담이 없으면 저마다 가져온 의자가 하나둘씩 모였습니다. 건축가들은 이 공간을 '의자골목' 혹은 '골목마당'이라고 부릅니다. 그 누구도 그곳을 이웃과 만나는 장소라고 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골목이 만나거나, 여러 사람이 친숙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게끔 하는 특유의 공간 구조가 우연히 생겨났고, 그곳은 이웃과 이웃을 마주치게 하고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건축가들은 백사마을의 이 구조를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한 골목을 공유하는 이웃관계에 있는 집터들끼리 묶어 각자 새집을 디자인할 구역을 나눠갖되, 끊임없이 서로 관여했습니다. 이웃 구역을 배려해 집의 높이를 낮추거나 방과 출입구의 위치를 바꾸는 작업을 반복했죠. 원래 의자골목, 골목마당이 있던 곳은 계속 비워놓거나, 비슷한 구조를 지닌 다른 곳을 일부러 비웠습니다. 이 작업의 전제로 개성을 자제하자는 규율을 공유하면서요. 개별 주택이 아니라 104번지 골목의 처음 집이 맨 끝 집까지 영향을 미치는 마을을 재구성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지형이나 골목 같은 물리적인 차원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거지' 못지않게 '거주민' 역시 보전하고자 하는 게 이 사업의 핵심 목표입니다. 재개발이 끝나면 원래 그곳에 살던 주민 중 90%는 떠납니다. 남는 사람은 고작 10% 안팍이란 이야기인데요. 대부분은 세입자들이고, 집주인일지라도 몇억원씩 하는 분담금을 내는 게 부담이 되면 집을 팔고 떠나버리기 때문입니다.


백사마을의 월세방은 최근까지만 해도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0만원을 넘지 않았습니다. 주민 대부분은 도시 빈민이었죠. 이들이 모두 떠나버리고 골목만 남기는 건 사실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새로운 주거지를 건설하는 동안 이 원주민들이 이사 갈 집을 연결해 주고, 공사가 끝난 다음엔 다시 백사마을로 돌아올 수 있게끔 관리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임대료도 이들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책정할 예정입니다. 다만, 50%가 넘는 주민들이 재정착하겠다는 뜻을 밝히긴 했어도, 사업이 끝나기까지는 3~4년이 걸릴 것이므로 그 사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백사마을 주거지보전사업은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 유일무이한 사례로 남을 것 같습니다. 재개발 이후에도 오래된 마을과 같은 공동체적 삶이 가능하고, 많은 원주민들이 재정착해 살 수 있는 주거지를 꿈꾸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더 크게, 더 높게 짓겠다는 똑같은 욕망을 복제해 도시 이곳저곳으로 퍼뜨리기만 했던 재개발·재건축 역사에서 빠져나와 작은 물줄기를 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주거지보전사업 이후의 백사마을에서 목격할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그 미래에는 10%보다는 많은 백사마을 원주민이 있기를 바랍니다. 건축가들이 꿈꾼대로 예전의 공동체적 삶을 함께 일구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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