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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주 Feb 07. 2023

엄마의 그릇

속상한 숙주 - 불안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라는 간절한 기도는 아이가 아플때나 읖조리는 진심이 아닐까 싶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균형을 맞춰보려 애쓰지만, 때때로 흔들기 일쑤다.


이제 겨우 일곱살 아이를 둔 A는 불안하다고 했다. 아이가 내년이면 학교에 입학해야 하는데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제 그릇이 작아서 아이를 잘 못 키우게 될까봐 걱정이에요.” 


그녀를 불안하게 하는 건 그녀 자신일까? 한국이라는 사회속에 사는 인간 본연의 불안일까? 우리는 이 불안을 어떻게 이겨내며 살아야 할까? 그 불안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역시 겪는 불안증세임은 틀림없다.


올 해 수능을 본 조카가 둘 있었다. 둘 다 제법 공부를 쭉~잘해 왔고, 사교육의 도움을 크게 받지 않고도 S대에 원서를 내었다. 비록 운이 따라주지 않아 S대 까지는 아니었지만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수준의 학교에 입학을 앞두고 있다. 내 자식도 아닌데 우쭐했다. 공부 잘 하는 조카 덕에 S대의 문턱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다. 아무나 갈 수 없는 대학이지만, 그 아무나가 우리 집안에서도 나올 수 있겠다는 설레임이 있었다.

다행히 언니들이 조카의 S대 입학 실패에 크게 동요없이 조카들의 앞 날을 응원했고, 나 역시 크게 축하해줬다. 그동안 애썼고, 너희들의 스무살을 응원한다고.

부모의 힘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의 힘으로 뚫고 지나 온 지독한 한국의 입시경쟁을 응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국의 입시경쟁은 고등교육에만 한정되었던 우리 시절과 달리, 이제 수능은 초등교육부터 준비해야 되는 현실로 바뀌었다. 초등학교 때 이미 수포자, 영포자, 국포자 같은 용어가 돌아다닌다.

사교육현장에서 키운 경쟁인지? 학부모가 키운 경쟁인지? 사회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경쟁이었는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논할 지경에 이르렇다. 아이들이 노는 곳도 닭장이다. 운동장과 동네를 다니며 어울리던 놀이문화는 찾기 힘들다. 놀이를 위해서는 기기가 필요하고, 장소가 필요한 시대이다. 아이들 손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한 기기가 들려있다. 친구와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스마트 기기를 매번져야만 소통이 된다. 이 기기의 단점은 코로나를 거치며 더 견고해졌다. 물리적으로 차단 되었던 인간관계는 더 스마트한 단점의 세계로 빠져들며 소통의 부재를 낳고 있다. 


조금이나마 그 진한한 입시 과정을 수월하게 도와 주고 싶은 마음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엄마들은 불안하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10여년 전부터 개발된 신도시이다. 현대식 아파트와 건물, 깨끗하게 정비된 동네. 적당히 숲과 산책로와 하천이 흐르는 조용한 동네이다. 그럼에도 중심상가로 나가 면밀히 건물을 들여다 보면, 1층에는 브랜드의 체인점이 즐비해 있고, 대부분의 건물 4층 이상은 학원가이다. 이름만 다른 국.영.수 학원과 미술, 음악학원, 기타의 학원들이 건물을 메우고 있다.


신도시답게 인근 도시로 출근하며 젊은 층 중심으로 인구가 밀집해 있다. 타 동네에 비해 아이들이 많은 편이다. 학교가 사라지고 있으나, 학교의 공급을 주장하는 일부 시민이 공존해 있는 동네이다. 그 많은 학원가가 명명하고 살아남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의 공부가 월등하거나 학구열이 높은 학부모들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인근 대도시로 이사를 가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아침 우리 동네의 풍경은 학교로, 어린이집으로, 유치원으로 등원하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점심 동네의 풍경은 노란 승합차가 학교 앞에서 학원가로 아이들을 실어나르는 모습을, 저녁은 노란 승합차가 아이들을 집으로 실어 나르는 풍경이 매일 반복된다.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들은 매일 펼쳐진다.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대부분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하원하는 아이들이 엄마가 지켜보는 가운데 삼삼오오 놀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초등학생들은 시간과 시간 사이에 잠시 머물다 가는 모습이 보이긴 해도 대부분은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로 한정적이다. 집 밖에만 나가면 친구들이 놀던 나의 어린시절의 모습과는 사뭇 낯설다. 친구와 약속을 잡고 놀아야 하고, 그 마저도 학원 시간이 다르다 보니 평일 낮에 만나 놀기가 쉽지가 않다.


뚝심있게 학원을 보내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만, 여느 집에 아이가 뛰어나 보이거나 뭔가 우리 아이가 뒤쳐지는 것 같으면 불쑥불쑥 불안한 마음이 튀어나온다. 학원을 보내는 일보다 건강하게 먹이기 위해 나는 더 애를 쓴다. 책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고, 하루 한장의 힘을 믿듯 문제집을 꾸준히 풀고 있다. 학원의 도움은 없지만 매일 조금이라도 스스로 해야 하는 분량을 지켜서 할 뿐이다. 엄마의 주도권에서 아이의 주도권으로 이양시키려 애쓰고 있다. 엄마의 그릇으로 채워서 덜어주기 보다는 아이의 그릇은 아이가 채워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A의 불안은 우리 모두의 불안이기도 하다. 우리가 당면한 한국사회가 조장하는 불안임을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그 불안이 부디 아이의 인생에 건강하게 쓰여지길 바라며, 누구나 부족하고, 흔들리고, 불안하다는 것을 A가 알았으면 좋겠다. A는 결코 그릇이 작은 엄마가 아니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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