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성실
신이 당신께 태어나기 전에 딱 하나만 골라서 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는 다재다능한 능력이라고 하셨고, 다른 하나는 꾸준한 인내라고 하셨다면 당신은 어떤 능력을 고르시겠습니까?
미술을 가르치는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들의 재능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호기심이 많고, 재능이 뛰어난 아이는 나름의 천재성을 믿고 노력을 게을리하는 반면에 느리지만 꾸준히 그리는 아이가 있다고 하였다. 시간이 쌓이면서 재능이 없고, 느렸던 아이가 나중에는 더 잘 그리게 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물론, 재능과 꾸준함을 다 갖춘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며, 넘사벽은 제외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어릴 때 상을 받으면 글을 써서 받은 상이 많았다. 무심코 써서 낸 일기장이, 무심코 써서 낸 시가, 무심코 써서 낸 산문이 상이라는 보상으로 돌아왔다. 그러하니 스스로 글을 좀 쓰나 보다 하는 정도였다. 공부 잘해서 받은 상이 아니다 보니 자랑거리도 못 되었다. 상을 받아와도 기뻐해줄 어른이 없었다. 삶이 치열하고 먹고사는 문제와 아이들을 키워내는 여력으로 사는 바쁜 어른에게 아이의 상장 같은 것은 기뻐할 여유가 없었다.
친정에 갔다가 졸업앨범을 보다가 사이에 껴 있는 상장 무더기를 발견했다. 제법 글을 써서 받은 상이 많았건만 칭찬받은 기억도 없고, 좋았던 기억도 없는 것이다. 어릴 때 어느 집을 가든 상장 하나쯤은 거실에 걸려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걸려 있었다. 그 집을 들어서는 순간 눈에 들어온다. 자랑스러움과 과시하고 싶은 욕망의 줄타기를 하는 위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자랑스러움도 과시용도 될 수 없었던 상장을 나는 책장 사이에 그냥 끼워 넣었거나, 서랍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었을 것이고, 절대 버리지 않을 것 같은 졸업앨범에 나름 머리를 굴려 끼워 넣었을 것이다.
어떻게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쨌든 친구 따라갔을 것이다. 초등시절 교회는 나에게 신문물 같은 장소였다. 안전했으며, 모든 것을 포용해 주는 어른이 있었으며, 노래와 성경공부를 시켜주었다. 말 잘 듣는 아이는 곧 잘 시키는 것을 잘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크리스마스 공연을 준비할 때였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재연하는 무용을 했는데, 많은 아이들 가운데 마리아의 형상을 한 주인공이 중심에 섰다. 주인공을 제외한 들러리로서 무용을 하고 있었는데, 점점 중심을 향해 자리 이동이 되더니 급기야 나는 마리아가 되었다. 그때 내게 주어진 주인공은 의미가 컸다. 아무도 관심 가져 주지 않았던 한 아이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씁쓸하게도 나의 가족 중 그 누구도 나의 공연을 본 이는 없다. 나 홀로 교회를 다녔기 때문이다. 교회 행사에서 두각을 발휘하며 다녔고, 한 때는 무용을 배워 무용수가 되는 꿈을 가져 본 적도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했을 당시 첫 담임 선생님이 체육 선생님이셨는데, 무용을 전공하신 분이셨다. 그 덕에 무용실에서 왈츠며, 발레며 배울 기회가 잠시잠깐 있었고, 교회를 그만두면서 자연스레 무용을 할 무대가 사라지니 무용수라는 나의 꿈이 머물렀다 사라졌다.
나의 첫 학원은 피아노 학원이었다. 5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갈 즈음, 엄마가 식당을 하고 자리를 잡으면서 시간은 없으셨으나, 경제적 여유가 숨통을 트일 때쯤이었던 기억이 난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둘째 언니가(당시 18살) 내 손을 잡고 피아노 학원에 가서 등록을 해 주었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음악학원을 다닌 혜택 받은 이가 나라는 것을, 언니들은 늘 강조했고, 부러워했었다. 늦게 시작한 탓에 피아노의 습득이 빨랐다. 선생님은 진도가 그 누구보다 빠르다고 하셨고, 고비 없이 피아노를 꽤 오래 쳤다. 중학교 3학년이 되기까지 피아노 학원을 다녔으니, 선생님은 내가 피아노로 진로를 정해 가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 나이가 되면 보통 공부에 올인해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준비하고, 바쁜 일상을 보내는데 결석 없이 피아노 학원을 다니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재능도 없는데 너무 열심히 다니니까 선생님은 물어보지도 않고 이레 짐작하셨던 것 같다.
그날은 내가 피아노를 그만 다니게 된 계기가 된 날이었기에 잊히지 않고 기억한다. 다만 베토벤이었는지? 쇼팽이었는지? 모차르트였는지? 기억도 없지만 연필을 한 칸씩 옮겨가며 열심히 피아노를 쳤다. 잘 안 되는 부분을 반복해서 될 때까지 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연습했었다. 선생님이 검사를 하러 들어오셨는데 야단을 치셨다. 연습 안 하고 뭐 했냐며 나무라듯 핀잔을 주셨다. 순간 비참하고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그만해도 되었다는 시그널을 알아차린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피아노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저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이 좋았을 뿐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고 바로 다음 날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 마음에는 원망도 서려있었다. 그 선생님과 나 사이에는 이해가 없었다. 그저 피아노 기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만 존재한 다는 것을 또한 확인 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면 자연스레 어린 날의 나를 소환해 내기 마련이다. 한 때는 부모가 미리 재능을 발견해 줬더라면 더 나은 인생을 영위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못난 시절도 있었다. 요즘은 대부분의 부모가 혹여 아이의 재능을 미처 발견하지 못할 까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촉각을 세우는 듯하다.
이 나이가 되고서야 조금 알 것도 같다. 길이 있으면 가지 않으려고 해도 그 길목에 들어서기 마련이다. 섣불리 아이의 재능을 키워주려는 것도, 너무 관심 없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답은 아닌 듯싶다.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고, 그 재능을 뛰어넘을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때론 최고가 아니더라도 일상이 되는, 즐거움이 되는 재능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재능도 성공 가도의 수단으로만 바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