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한 소설
새벽 2시 50분이었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선명해서 눈이 번쩍 떠졌다. 급히 휴대폰을 열어 검색을 했다. 선명했던 꿈 만큼이나 마음이 조급했고 불안했다. 하나같이 불길한 징조의 시그널이었다.
꿈을 자주 꾼다. 대부분의 날은 기억에서 휘발해 버리기에 꿈을 꾼 사실은 기억하나 꿈의 내용은 기억하지 못한다. 문제는 악몽이다. 예사롭지 않은 내용은 물론이고, 끔찍한 장면들은 스릴러 혹은 공포영화를 능가한다. 눈을 번쩍 뜨고도 몸이 굳어 한참을 뜬 눈으로 감각을 확인하는 날도 있었고, 어느 날 갑자기 떠올려보라고 해도 생생하여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 꿈 뒤에 일어났던 일련의 크고 작은 사건 마저도 선명하다. 나비 꿈을 꾼 장자가 이르기를 나비가 내가 된 것인지, 내가 나비가 된 것인지 헷갈렸다고 하였듯이 나는 가끔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헷갈린다.
유독 비현실적으로 뚜렷한 장면으로 기억되던 악몽에 늘 반응했던 나의 현실세계는 이번에도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몇 일동안 긴장감이 맴돌았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꿈자리가 사나우니 매사 조심하라고 당부를 하고, 방과 후 참여를 하기 위해 나서는 딸 아이가 걱정되어 학교까지 동행하고, 언니들과 엄마에게 꿈이 불길하니 조심하라고 일렀다.
뭐가 되었든, 그 꿈의 현실화는 내게 국한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컵을 깨트렸다. 이런 자잔한 불편한 것들이 꿈의 징조인가? 하며, 생각의 파편들은 자꾸 소멸되기보다는 확장되어 겉잡을 수 없이 신경을 곤두세웠다. 평소 연락이 없이 지내던 지인들로 부터 문자가 왔다. 부모님의 부고 소식이었다. 거의 10년여동안 소식과 만남이 없던 애매한 사이의 사람들이라 잠시나마 부의금을 보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꿈의 시그널인가 싶어, 하등 고민없이 부의금을 좋은 마음으로 보내드렸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음 날, 형부명의의 차량을 명의이전을 해야했기에 가까운 차량사업소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약속 시간 보다 넉넉하게 준비를 하고 나섰는데 차량등록증이 보이지 않았다. 전날 불안한 나의 심리상태 때문에 부러 잘 챙긴다고 남편에게 물었었다. 남편은 분명한 어조로 차에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차에 없었다.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나왔는데, 차량등록증을 찾느라 시간을 다 써버렸다. 결국 차량등록사업소에 확인하니 없어도 된다고 확인을 받고, 검색을 통해 차대번호만 확인하면 된다고 하여, 차대번호를 알아내고서야 출발했다. 이때도 나는 꿈의 시그널일 수 있으니, 액땜을 치루고 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차량사업소에 도착하여서도 왠지 무슨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여운이 남아, 긴장을 늦추지 않았던 것 같다. 지갑을 꺼내서는 지갑을 잃어버릴까 걱정했고, 서류를 접수 하고는 잘 접수가 된 것인지? 기다리면서는 내것만 담당자가 미쳐 못 보고 일처리를 안 해주는 것은 아닌지? 불안의 꼬리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세금을 납부하는 기계 앞에서는 허둥대고 있으니, 어떤 분이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다가와서 자기일처럼 도와주었다. 그 도움마저 의심을 했다. 왜? 갑자기 과잉친절을 베풀지? 제가 하겠습니다. 라고 하여도 카드를 삽입하고 종이를 찢고, 할부할거냐? 일시불할거냐? 물으며 순식간에 세금납부 처리를 해 주었다. 문득, 그 분을 의심했고 지갑을 더 움켜쥐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차량등록증을 교부 받는 곳에 이르렀을 때, 이제 이 곳을 떠날 수 있겠구나. 싶은 안도감이 들었다. 주변을 두리번 거렸고, 카드지갑에 현금이 없어 차량등록증 교부를 위해 가방 안에 있던 장지갑을 꺼내 3천원을 지급하고 서둘러 차량사업소를 떴다.
형부와 차량명의이전을 잘 마무리하고, 점심시간이라 근처 유명한 중국집에 가기로 하였다. 가는 길에 아까 도움을 주셨던 아주머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형부는 상주하는 도우미인 줄 알았다며, 너무 적극적으롤 도와주어서 당황스럽기는 했는데 빨리 처리했다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내가 계산을 하려는데, 식사를 먼저 마친 형부가 계산을 하려고 해서 급한 마음에 뛰어 나가서 카드를 뺏고, 카드 지갑을 꺼내려는데 보이지 않아서 장지갑에서 다른 카드를 꺼내 계산을 서둘러 했다.
차량사업소에서 너무 긴장한 탓에 힘이 좀 빠진 상태였는데, 급히 계산을 하느라 허둥댔다. 가방을 챙겨 나섰는데, 우리가 먹었던 자리를 정리하던 아주머니가 뛰어나와 휴대폰을 두고 갔다며 가져다 주셨다. ‘내가 그럼 그렇지’라며 읖조리며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뭔지는 알 수 없지만 계속 찝찝했다.
오후에 딸 아이를 수영장에 데려다 주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수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카드지갑 안에 든 입출입카드를 찾는데 카드지갑이 보이지 않았다. 식당에서 카드지갑을 급히 찾으려다 못 찾아서 장지갑을 꺼내 계산했던 찰나가 생각났다. 내내 찝찝했던 것이 카드지갑임을 인지하게 된 순간이었다. 마지막 차량등록증 교부때까지만 해도 손에서 일순간도 놓지 않았던 카드지갑이었다. 일단, 차량사업소와 점심식사를 했던 중국집에 전화를 했다. 두 군데 모두 카드지갑이 없다고 하였다.
문득, 과잉친절을 보였던 그 아주머니가 떠올랐고 내내 긴장했던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해보았다. 그러자 소매치기범의 소행일거라는 추측에 이르렀다. 사실 카드지갑이라 소지하던 카드의 분실신고만해도 되고, 카드를 사용하였다고 해도 문자가 올 것이라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신고하는 과정과 카드를 바꿔야 하는 수고스러움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면 된다. 문제는 카드 지갑 안에 든 나의 신분증과 아파트 입출입카드다. 그 카드 한 장이면 아파트 입출입과 우리 현관을 아무런 장애물 없이 드나들 수 있다. 보잘 것 없는 카드지갑을 훔쳐간 당위성을 생각하니 이유는 하나였다. 신분증에는 버젖이 상세한 아파트 주소와 동,호수가 적혀 있으니, 쉽게 네비게이션의 도움으로 집앞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집 현관문을 열 수 있다. 생각은 멈추지 않았고, 공포영화 한 장면과 뉴스 헤드라인을 쉽게 써내려 갔다.
저녁을 준비해야 하는데, 불안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차에 두 번이나 왔다갔다했다. 혹시 차에 흘렸을까 싶어서. 형부에게 전화를 걸어 형부차에 흘렸는지 찾아봐 달라며 부탁하고, 또 전화해서 그 아주머니 수상하지 않았냐고? 왠지 소매치기 당한 것 같다며 불안해 했다. 현금이 있던 것도 아니니 기다려 보라는 형부의 위안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망할 꿈이 이거였나? 또 나의 머릿속을 헤집어놓았다. 남편이 퇴근 후, 내가 너무 불안해 보였는지 현관문은 카드를 삭제하고 다시 등록하면 된다고, 집에 있던 현관카드를 모두 삭제하고 다시 등록을 시켜주었다. 그제사 조금 안정이 되었던 것 같다.
그날 밤, 어깨에 갑자기 돌이 떨어져 얹혀진것 처럼 움직이지 않아 한 쪽 어깨를 쓸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까지도 어깨가 아파서 들 수가 없었다. 병원에 가서 CT를 찍어야 하나?고민하다 선약이 있어서 선약장소에 갔다가 병원에 들러 볼 생각이었다.
한 참 이야기를 하는데 전화가 울렸다. 전화번호가 낯설지 않았다. 어제 다녀왔던 차량사업소 전화번호 같아서 얼른 받았다. 마지막에 들렀던 차량등록증교부하던 곳이라며, 카드지갑이 있다고 하였다. 바로 찾으러 가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스릴러가 휴먼드라마가 되는 순간이었다. ‘할레루야~’ 구원 받은 느낌이었다.
어깨는 몇 일 동전파스와 저주파-안마를 하며 서서히 나아졌다. 나는 몇 일 꿈속을 산 것인지? 현실을 산 것인지? 헷갈렸다. 나는 꿈의 생경함에 현실을 살았다. 공포영화와 소설을 쓰며 악역으로 변질되었던 친절했던 아주머니에게 크게 죄송하고 감사하다.
꿈의 지배를 받으며 나의 무의식은 계속 어떤 불안을 감지했고, 그 불안은 어쩌면 나 스스로 증폭시킨 결과물이었는지, 일어났어야 하는 나쁜 사건의 단편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