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한 사색 (feat : 점집 탐방기)
삶은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다. 그저 눈앞에 닥친 현실 고민을 해결하면서 정신없이 살아갈 뿐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은 과거로 시간을 돌리는 시간여행을 한다. 후회되는 과거의 한 순간을 돌려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시간을 돌려 리셋시킨 일상은 오히려 자신과 둘러싼 사람들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그로 인해 다시 처음의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선택을 한다.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좋은 결과만을 도출하지 않으며, 최악의 선택이 나쁜 결과만 도래하지 않는다. 강렬한 에너지들의 충돌이 일어나는 현실 세계에서는 나의 선택은 매 순간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과거의 순간은 ‘만약~그랬더라면’이라는 가정은 할 수 있지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과거에 대한 집착이 견고하여 현재를 비관한다. 현재의 불안은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감지하며 또한 불안하다. 그래서 우리는 늘 불안하다.
빨리 어른이 되면 현실을 나의 의지로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어른이 하는 선택은 정답지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다. 어른은 선택지 앞에 더 많이 흔들린다는 것을. 나의 선택은 가족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복잡하게 얽힌 타인의 감정과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하며,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견뎌야 하는 수많은 선택지가 끊임없이 나를 독촉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홀로서기의 기로에서, 취업의 관문 앞에서, 삶의 실패를 뼈저리게 경험하고, 생을 통틀어 가장 힘든 시간을 지나갈 즈음, 찾아간 곳이 있었다. 그곳은 점집이었다. 되는 게 하나 없는 청춘이 찾아가 희망을 안고 나왔던 곳이 점집이라 의아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어쩌면 믿어야 희망이 있다고 여겼기에 믿었는지도 모른다.
긴장한 청춘과 달리, 노련한 점쟁이는 새털같이 가볍게 한 마디 던졌다.
“뭘 걱정하냐? 니 인생 잘 풀릴 거다. 쫌 있어봐라~~.”
그 말의 힘은 지긋지긋한 현실 앞, 칠흑 같은 밤하늘에 별 하나 없는데 유성(별똥별)이 반짝이며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뭐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 막막하기만 했던 미래가 그나마 밝아지는 듯했다. 아무도 말해주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일면식도 없던 누군가가 내게 꼭 그럴 거라고, 의심의 여지없다는 듯 툭 던졌다.
첫 번째 나의 점집 탐방기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흔들렸던 청춘은 금융회사의 문턱을 통과하여 버젓한 직장인이 되었다. 누군가는 부러워할 만한 연봉을 받으며 성실한 직장인으로 앞만 보고 달렸다. 저축도 하고, 차도 사고, 여행도 다니고 그러다 오래 사귄 연인과 결혼도 했다.
그렇게 간절하게 입사했던 회사도 10여 년이 채워지면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영혼 없이 다니게 되고, 결혼으로 인해 2세에 대한 의무감도 생겼고, 회사는 구조조정의 급물살이 불어, 가슴속 사직서가 희망퇴직으로 인해 한몫 챙겨 나가라고 부추겼다. 결혼 후 1년이 지나도 2세 소식이 없어 부랴부랴 병원에서 검사도 하고, 한약도 먹고 있었다. 나는 회사의 구조조정 가운데 임신 소식을 접했다. 회사가 희망퇴직을 직원들에게 권고하기 시작할 즈음, 나는 입덧이 절정을 달리기 시작했다.
입덧이 심해 하루하루 버티는 게 힘든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쉽사리 포기하기 힘든 월급이라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서글픈 날들이 연속되었다. 남편 역시 쉽게 포기하기 힘든 월급이었는지 쉽사리 ”당장, 그만둬!!!! “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는 매우 현실적이며 실리주의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선택지 앞에서 계산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야속했지만, 희망퇴직금으로 한몫을 챙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선택지 앞에서 결국 나는 점집에 물어보기로 했다. 나의 두 번째 점집 탐방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내가 들은 말은,
“당장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 아이가 위험해질 수 있고, 그만둔다고 못 먹고살지도 않아요.”였다.
이미 마음속에 그만 두리라 마음을 먹었던 것인지? 그 말을 믿어서였는지? 헷갈렸지만 나는 희망퇴직을 과감히 선택했었다. 당시 남편은 나를 의아하게 여겼다. 점쟁이 말을 듣고 과감히 그만둔다고 결정한다는 것이. 그런 말도 했었다. “네가 그만두고 싶었던 거지?” 이미 결정을 하고 가서 물어본 것 아니냐고 하기도 했었다.
희망퇴직 후, 태교에 혼을 불어넣어 보리라 했었다. 좋은 생각, 좋은 음식, 좋은 음악, 좋은 사람, 좋은 책….. 악기를 하나 배우면 뱃속 아기에게 좋을 것 같아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언어 공부를 하면 좋을 듯싶어 영어 공부도 했다. 오롯이 태교에 전념하고 싶었으나 입덧이 심해 좋은 음식은 먹을 수도 없고, 먹지 못하니 힘이 없어 침대에 누워 있는 날이 잦았다. 몸이 힘드니 아무것도 의지대로 되는 것이 없어 가장 우울한 시간이 되었다. 아침에 눈 뜨면 손발이 퉁퉁 부어 있고, 어느 날부터는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날이 지속되었다. 임신 기간은 내 생애 통틀어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어느 날, 아기가 태어나려면 넉 달이나 남았는데 배가 아파 견딜 수 없어 새벽에 병원에 들어가 며칠 입원을 해서 검사를 받았다. 병명은 임신 중독이었다. 인큐베이터가 있는 큰 산부인과였으나, 산모와 아기가 모두 위험할 수 있으니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해야만 했다. 생에 처음 앰뷸런스에 실려간 날이었다.
한 달여 이상을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였다. 제발 아직은 나오면 안 된다고 기도하며 견디다 죽음이 목전에 와닿았을 즈음에 아기를 꺼냈다. 아기는 칠삭둥이로 태어나 인큐베이터 안으로, 나는 병원에서 회복하고 홀로 퇴원을 했었다. 이후 아기는 태어나 두 달을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랐다.
결국, 나의 선택은 현명했다. 어차피 회사는 다닐 수도 없었을 것이며, 병가를 내어 휴직을 했더라도 민폐였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망가져 시일을 알 수 없는 상태로 회사를 무기한 연기하더라도 버티다 제 발로 사직서를 쓰고 나와야 했을 것이다. 퇴직금만 챙기고.
인생을 살다 보면 내가 감당하기 힘든 선택지가 놓일 때가 있다. 욕심이든, 욕망이든, 미련이든, 불안이든… 미래에 대한 알 수 없음 때문에 우리는 때론 보이지 않는 것에 의지하게 되는 때가 있다. 흘러가는 대로 뒀어도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집을 찾아 나선 나는 인생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한다.
큰 바윗덩이를 혼자 짊어지다, 누군가 알아봐 주고, 적극적으로 정답지 같은, 어쩌면 나의 답정너였겠지만. 삶의 이정표를 받는 느낌이었다.
한 때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한 때는 가톨릭 신자였다. 지금은 절을 더 자주 가니 불교 신자에 가깝다 할 수 있다. 한 참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나의 종교는 ‘가톨릭이지’라고 여겼을 즈음에 첫 번째 점집 탐방기 경험을 했었다. 교회를 다니는 자가 신을 믿지 않고, 미신을 찾아간 사실이 찝찝하여, 고해성사를 했던 기억은 아직도 웃음을 유발한다.
이후, 인생의 파장은 신을 부정하는 삶의 비관과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고 이번 생은 망했다며, 골방에 갇혀 허송세월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그런 골방에서 마지막으로 생을 희망하게 했던 곳이 점집이었다. 다행히 굿판을 벌여야 한다거나, 비싼 부적을 써야 한다고 겁을 주던 점쟁이를 만난 적은 없다. 딱 봐도 가난한 중생으로 보였는지도..^^;;
그때 그 장소도, 그분들의 얼굴도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시절 내게 꼭 필요했던 말. “넌 잘 될 거다. 걱정 말고 나아가!!!”라고 했던 막연하지만 우렁찬 믿음의 말. 다시 나를 일으켜 나아갈 수 있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구나 흔들리고, 매달리고 싶은 심정으로 생이 막막할 때가 있다. 우린 때론 샤머니스트 일 때, 손에 잡히지도 않는 내일을 걸어 나가는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샤머니트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