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사실
일요일 아침, 6시 눈을 떠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주말에 근무가 잡힌 그의 식사를 간단히라도 준비해 주기 위해서였다. 밥을 차려주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려든 발걸음이 멈춰 섰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과 구름과 떠오르는 해가 아침을 강렬하게 일깨워 주는 듯싶었다. 그냥 잠을 자면 안 될 것 같은 이끌림이었다. 책을 읽을까? 산책을 나갈까? 그의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를 끝내고 배웅에 집중할까? 여러 가지 선택지를 만들고 고민하며 해가 완전히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고 서 있는데 설레었다.
설렘이 도망가지 못하게 얼른 가벼운 옷차림을 장착하고, 남편에게 산보 다녀오겠다 말하고 집을 나섰다. 아이가 깨기 전에 돌아올 것이고, 신경 쓰지 말고 출근하라고 일러두고 먼저 집을 나섰다. 아직 꿈나라에 한참인 딸아이는 두어 시간이 지나야 일어날 듯 싶고, 잠에서 깨어나 엄마의 부재에 당황하더라도 전화로 서로의 안위를 소통할 나이는 이르렀으니, 망설임 없이 운동화를 질끈 묶었다.
6시 반, 세상이 이미 환하다. 요즘 가을은 여름날 기억을 붙잡아 두고 있지만, 성큼 가을의 문을 열었기에 아침나절과 저녁나절은 제법 가을 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아침, 저녁으로 하천을 따라 뛰는 러너들이 많아졌다. 형형색색의 운동복과 나를 금세 지나쳐 저만치 뛰는 뒷모습을 보니 생동감이 느껴졌다.
뛰어가는 러너들과는 달리, 나는 하등 바쁠 것 없는 사람처럼 천천히 거닐듯 조용히 걸어갔다. 걷다 보니 어느새 단골 카페에 이르렀다. 이곳은 어김없이 365일 아침 7시에 문을 연다. 단 한 번도 의심의 여지없이 문을 여는 가게이기도 하고, 8년여를 한결같이 드나드는 카페이다. 이른 시간임에도 테라스에 사람들이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 순간 커피 한 잔의 유혹이 강하게 밀려왔다. 아직 빈 속이기에 커피를 흡수할 시간이 아니다. 딱 하루만 몸의 혹사를 감수하고 커피를 마셔볼까 했지만 참았다. 커피에 유독 약한 저항력을 가진 몸인지라.
두 시간여를 걷다 돌아왔는데 딸아이는 아직 꿀잠 중이었다. 이내 일어난 아이의 주말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 집안에서 해야 하는 최소한의 반복되는 일거리인 설거지, 빨래 개기, 청소기 돌리기, 이것저것 뒷정리를 마쳤다. 11시 딸아이는 친구와 약속이 잡혀 있었다. 챙겨서 아이가 나가니 주말 오롯이 나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작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다. 애써 나의 시간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투쟁하듯 챙겨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변화는 사람을 당황케 한다. 어쩌다 챙김이 필요했던 시간이 자연스럽게 주어지면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내야 할지? 설렘이지만 혹시나 허투루 보내게 될까 조바심도 난다. 잠시 소파에 누워 고민하려다 소파에 누워 일어나지 못할까 봐 - 이른 기상과 오전에 산책을 강행했기에- 소파에 눕지 않았다. 이번 달 읽기로 한 카뮈의 <시지프 신화> 고전과 새롭게 배우기 시작한 뜨개 연습을 위해 뜨개도구를 챙기고, 아이패드를 야무지게 챙겨 나섰다. 자전거에 짐을 싣고, 작업실(301호실 이야기 매거진 참조)로 향했다. 이른 커피의 유혹을 참었던 자아를 칭찬하며, 제법 달궈진 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흡족스럽게 마셨다. 에너지 효율이 높아진 느낌이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펼쳤다. 철학적 에세이답게 쉽사리 한 장 넘기기가 힘들게 읽혔다. 철학적 사유는 뇌를 최대한 활성화시켜야 겨우 이해가 되었다. 부조리에 가득 한 세계에 사는 인간 본질의 존재가치를 이야기하는 카뮈의 사유를 다 이해하기는 역부족이다. 애먼 밑줄이 늘어나고, 독서노트에 필사만 이어지니 책 읽는 속도가 아주 더디게 흐른다. 쫓기는 것도 아닌 시간을 쫓기듯 쓰게 되는 것이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 같기도 하다. 나는 늘 내게 주어진 시간을 쓰고 살면서, 늘 내 시간을 뺏기고 사는 사람처럼 군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쓰는 시간이 마치 도둑맞은 시간처럼 억울해할 때도 있다. 그 또한 내가 선택한 삶이었으니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것일 뿐 누구의 탓도 아닐터인데.
낯선 하루의 텅 빈 시간이 너무 오랜만이라 방해받지 않을 이유들로 가득 채우고 싶다. 쫓기듯 책을 읽지 말자. 쫓기듯 커피를 마시지도 말고, 쫓기듯 누군가의 일과를 걱정하지도 말고,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보자. 어쩌면 이 또한 강박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조리다.
뜨개 수업에서 배운 것을 복습해 보니, 서툰 손놀림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다 보면 시간 도둑이 아닐 수 없다. 어느새 오후를 향해 시간이 흘렀다.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와 수영을 하러 수영장에 들어가니 2시간 반정도는 통화가 되지 않을 거란다. 수영을 하고 나와 친구와 편의점에 들러 간단하게 간식을 사 먹고 집으로 돌아올 거라는 계획을 전했다. 전화를 끊고 옹골차게 이 시간을 써야 될 것 같은 강박이 밀려왔다. 서둘러 짐을 꾸려 작업실에서 나왔다. 자전거로 집으로 오는 길에 무조건 문이 열린 미용실이 있다면, 무조건 손님이 없어야 하고, 무조건 롸잇나우 펌을 하고 머리카락을 정리할 수 있다면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일주일 내내 미용실을 가야 하는 헤어상태를 견디면서도 미루던 중이었기에 무조건이라는 전제를 깔았다.
영업 중이면서, 손님이 없는 상태의 미용실을 발견했고 헤어 손질을 하였다. 딱히 까다로운 스타일의 손님이 아니기에 오늘! 마침! 머리카락 손질을 하였다는 것에 만족한다. 미용실을 나서 집으로 돌아오니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딸아이는 친구와 막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라고 연락이 왔다. 부랴부랴 저녁을 준비하려니 친구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먹었다고 한다. 저녁 식사 준비에 힘을 쏟을 필요가 없어졌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두와 떡과 호빵을 쪘다. 두유와 포도하나 씻어 저녁을 해결하니 이미 어둠이 짙어져 있었다.
하루가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뿌듯했다.
하루를 되돌아감기를 해보니 참으로 즉흥적인 하루였다.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발버둥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바라던 잔잔한 시간이었다.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아이와 분리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내게도 이런 하루는 더 이상 낯선 하루가 아닌 날들이 될 것이라는 직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