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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 주 Dec 31. 2022

커피의 위로가 필요하지만 견뎌야 한다

씁쓸한 쓴 삶

이틀 전,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 건강검진을 했다. 올 3월경 잡았던 건강검진 일자가 가족여행(시댁부모님과 함께 하는)을 위해 미뤄졌고, 생리와 맞물리면서 미뤄지고, 아버님의 갑작스러운 뇌동맥 관련 수술을 진행하게 되면서 대학병원을 수차례 들락날락해야 했기에 또 한 번 미뤄졌다. 국민건강검진대상 짝수해로 해당되기에 또한 미룰 수가 없었기에 마지못해 12월 29일. 한 해 마지막을 이틀 앞두고서야 하게 되었다.


30대까지만 해도 건강검진을 하면, 비운의 여주인공이 된 마냥 혹여 불치병이라도 튀어나오면 어쩌나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유 없이 어딘가 아픈 것 같고, 분명 병이 튀어 나올 것 같고 그랬다. 검진 결과는 크게 이상이 없었다. 그 마저도 의심했다. 이렇게 피곤하고, 허리도 아프고, 심장도 갑갑하고, 두통도 있고, 소화도 잘 안되고… 왠지 오진 같은 건강함을 의심했다.


40대에 접어들어 소화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음식 섭취가 힘들 때가 있었다. 하여 맥주와 새우깡 혹은 꽃게랑(겨자맛)으로 식사를 대체하던 날도 있었다. 건강검진을 하니 담석이 있다고 하였다. 그게 점점 자라면 자극이 와서 못 견딜 만큼 아프다고 한다. 그럼 병원에 오게 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 무렵 식사할 때마다 소화가 힘들어 밥을 피하는 악순환이 지속되었으나 나름 건강식을 하려고 노력도 했었다. 어느 날 올 것이 왔다. 미치게 아프면서 쓰러질 지경에 이르러 응급실에 갔는데, 큰 병원으로 이송을 해야 할 만큼 수술이 급해 보인다고 하였다. 종합병원으로 옮겨져 그날 밤 담석제거와 더불어 쓸개가 망가져 쓸개도 떼어 냈다. 우리 몸에 필요 없는 장기는 없겠지만, 그 장기가 사라지면 또 다른 장기가 스페어 기능을 해주는 인체의 신비가 작용한다. 쓸개의 역할을 간이 대신 해 주고 있다.


내가 살면서 죽음의 위기를 감지한 것은 딱 두 번이었다. 첫 번째는 아이를 낳을 때였고(임신중독으로 병원에 장기 입원과 이른둥이를 낳았었다.), 두 번째는 담석과 쓸개를 떼어 냈을 때이다. 그 후 나는 비련의 주인공을 떠올리지 않는다. 삶은 어떻게든 비련이 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지켜야 한다는 것을 두 번의 큰 수술로 알았다.


두 번째 수술을 하고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병원은 어떻게든 피할 곳이 아니라, 되도록 적절하게 피하지 않으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가야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자꾸 피할 이유를 만들어 피하게 되는 것도 같다. 어쩌면 3월에 했어야 하는 건강검진이 12월 막바지까지 밀려온 것은 내가 만든 핑계이고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어김없이 건강검진은 불쾌한 과정이었다. 여전히 유방암 검사를 위해 프레스기기에 있는 살 없는 살 끌어 찍어내는 것은 신음과 욕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애써 참고 우아함을 유지하려 하지만, 꼭 다시 찍는 순간이 발생한다. 검사원 선생님께 화 아닌 엄살을 욕을 대신해서 에둘러하게 된다. 그분도 이미 ctrl+v를 수없이 경험한 터라 대꾸 없는 액받이가 되어주고 있는 듯하다.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검사가 있다. 부인과 혹은 산부인과 검사다. 속옷을 탈의하고 단두대에 올라가 있는 나의 의식을 동물의 생식기라고 고쳐먹어야 조금이나마 자의식을 배제할 수 있다. 가끔 여의사였으면 기대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내가 만난 건강검진센터 부인과에는 남자의사였다. 여자로서 검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환자 혹은 그냥 여자사람(나의 의식만큼은 동물)으로서 검사를 받는 것이라 굳이 여의사를 찾으려 하지는 않는다. 아니 찾지 않는 것이 이성적 사고의 영역을 가진 사람이라고 설득하는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수면 내시경이나, 대장 내시경은 어차피 의식이 없는 상태라 견딜만하다. 다만 병이 생기면 가장 치명적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큰 것이 문제다. 아니나 다를까 위에 문제가 생겼다. 담당의사 선생님은 어느 70대 노인의 깨끗한 위와 나의 위를 비교했다. 아니 같은 연령대도 아니고 70대라니?


“당신의 위가 이 분의 위보다 노화된 상태입니다. 균과 염증과 모양도 매끄럽지 않고 위궤양이 올 수도 있고, 발전하면 위암도 발생할 수 있는 겁니다.”


약을 14일 동안 끊지 않고 먹으라는 처방과 함께 커피와 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하라고 하였다. 다른 건 모르겠고, 커피를 먹지 말라는 말만 맴맴 돌았다. 금주할 수 있다. 자극적인 음식 원래 잘 안 먹었으니 피할 수 있다. 그런데 커피 끊으라는 말은 부당하게 느껴졌다.


술은 좋아하지만 매일 먹지 않고 기분 좋을 때 마시는 정도이고, 음식은 매운 음식 못 먹는 식구들 덕에 이벤트 적으로 한 번씩 먹을까 말까이고, 굳이 내가 위를 나쁘게 하는 요소라면 매일 커피를 마신다는 정도이다. 그런데 위가 나빠진 이유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먹기 위해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는다. 밤잠을 설칠까 늦은 오후가 되기 전에는 커피를 마시지도 않는다. 나의 일탈은 커피를 마시는 것 외에 위를 자극할 만한 것이 딱히 없다.


건강을 지키는 자보다 건강을 해치는 자(남편)가 더 위가 깨끗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세상은 분명 이유가 있음보다 이유가 없음이 더 당연한 것이 많다. 매일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왜?라고 물었을 때, 내가 생각한 답과 괴리가 너무 많은 것들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왜 태어나 살고 있는지 모르듯이 왜 죽는지 모르다 죽음을 맞이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씁쓸하지만 삶은 씁쓸함 가운데 피어나는 꽃을 기대하며 하루를 아름답게 버텨내야 한다. 왜 죽는지 모르는 날 자연스럽게 언제 죽을지 모를 일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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