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집사의 식물 키우는 진심.

식물 키우는데 진심인 삽질

by 와이 주

식물계에도 사후 세계가 있다면, 나는 저승사자다. 어찌 된 일인지 내 손에 키워지면 죽어 나가는 게 식물이었다. 식물이 떠난 자리에 식물이 들어왔고, 또 떠나고, 또 들였다.



나는 2011년 9월에 결혼을 했다. 올해로 결혼 11년 차가 되었다. 식물 집사 경력도 11년 차다. 당시 플랜테리어라는 말이 없었을 때, 이미 신혼집을 식물로 인테리어를 할 요량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의 결혼 경력과 식물 집사 경력이 일치한다. 당시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일과 가정의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인테리어를 위해 열심히 식물로 집을 채우고, 잘 키우려고 애도 썼다. 책도 보고, 귀동냥도 해가며 식물을 키우려고 사투를 벌였다. 그런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병충해를 입고, 시들해지기도 하고, 어김없이 죽는 것을 반복했다. 잦은 식물의 죽음으로 빈 화분이 늘 존재했다. 베란다 한쪽에는 크기별로 화분이 쌓여 있었고, 다음 식물의 운명을 기다렸다.



애써 식물을 키우는 나의 목적은 오직 식물 인테리어였다. 야무지게 물을 주었고, 틈나는 대로 애정을 쏟기도 했다. 노력에도 불과하고 자꾸 식물이 죽으니, 식물 키우는 것은 나의 적성에 맞지 않는 취미이고, 식물은 연약한 생명체라 키울 게 못된다는 이유를 끼워 맞췄다. 어느 날, 빈 화분들이 가시처럼 나를 불쾌하게 하였다. 이제 새로운 식구는 들이지 않겠어.라고 생각하며 화분을 정리하려는데, 기어이 내 손에서도 생명을 버텨 낸 아이들이 보였다. 연약하기만 한 식물이라고 싸잡았던 나에게 말을 거는 듯 느껴졌다. “부족한 너라도 괜찮아, 나는 살아 남아 꽃을 피우고 있잖아.”라고.


그때 말 걸어준 아이들이 난타나, 자스민, 산호초, 트리얀이었다. 그중 트리얀만 작년에 실수로 물을 건너뛰어 바짝 마른 상태에서 발견했고, 임계점을 넘긴 상태라 10년의 동고동락에 끝을 맺었다. 식물을 다루는데 능숙하다고 자만하던 나를 질책하는 듯했다. 트리안이 있던 화분에는 봄에 설란이 자리를 잡았다.

난타나는 처음 집에 들였을 때, 어찌나 잦은 깍지벌레를 몰고 다니는지 포기할까도 여러 번이었다. 괜히 옆자리 친구였던 자스민에게 까지도 해를 끼쳤더랬다. 몇 해를 병충해를 입고, 나아지기를 반복하더니 어느 순간 개의치 않고 잘 자라주었다. 산호초는 가히 화분을 꽉 채우다 못해 넘쳐나는 중이다. 나에겐 가장 쉬운 식물이었다. 그래서 고맙기도 하다. 알아서 컸는데, 잘 크기까지 한 자식 마냥 기특하다.


물론, 지금도 빈 화분을 채우고, 빈 화분이 생기는 일은 잦다. 그래도 식물을 키웠던 시간만큼 식물을 키우는 일에 노련미와 의연함은 생겼다. 제법 식물 집사로서의 나를 인정해 주기로 했다.




자만심이 컸던 탓이었을까? 지난겨울 위기가 찾아왔다. 추운 겨울도 베란다에서 거뜬히 생명을 키웠던 난타나, 자스민, 산호초 그리고 사랑초가 있었다. 내가 치명적이 실수를 했다. 물을 주고 나서 수도꼭지를 끝까지 잠그지 않았던 것이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대아를 물로 가득 채웠고, 대아에 떨어지는 물 방울이 식물에 밤새 튀었다. 가뜩이나 추운 날씨였는데 북극으로 만들어 준 셈이다. 다음 날, 늦은 아침에서야 발견했다. 이미 나뭇가지와 잎에는 죽음이 드리워져 있었다. 미안함에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침묵 속에 서 있었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TV 속 명의의 말이 생각났다. “의사가 환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라는 그의 말처럼, 내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보살피면 희망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스치듯 했다. 어쩌면, 내 손으로 흙을 파서 뿌리까지 도려내어 장례를 치워 줄 용기보다는 끝까지 희망을 갖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영양제를 주고, 햇볕 드는 자리로 이리저리 옮겨주고, 적당한 때에 물을 주고, 다시 영양제를 주고…… 하얗게 썩어 버린 나뭇가지는 시일을 두고 지켜보다 가망 없는 가지는 잘랐다. 조금이나마 희망이 있는 곳에 힘을 쓰라고. 시간이 흘러도 별 반응이 없는 식물들을 볼 때마다 미안하기도 하고, 이제 그만 보낼까?라고 자주 흔들렸다. ‘봄까지만’ 그렇게 봄까지만 노력해보기로 했다. 인간도, 식물도 모든 생명체에게 겨울은 힘들지 않은가. 봄에 싹을 틔워 보려고 애쓰면서 겨울을 견디지 않는가.


봄이 되었다. 차마 오랜 반려 식물을 보내지 못하고 봄을 기다렸다. 산호초를 시작으로 사랑초, 난타나에서 신호가 왔다. 나는 TV 속 명의가 느꼈을 감정이 무엇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산호초는 빠르게 새잎이 돋아나 풍성해졌고, 사랑초도 귀여운 하트를 만들어 냈다. 난타나의 나뭇가지 하나에서 초록의 가지가 고개를 내밀고 잎도 생기기 시작했다. 자스민만 아우런 반응이 없었다. 더 부여잡고 싶은 마음과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교차하는 여러 날을 보냈다. 이미 나뭇가지는 거의 다 잘라 낸 상태여서 흙 안에서의 신호만 기다렸다. 그런데 새싹이 움트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명의 감정은 분명 “고마움”이 가장 컸을 감정이라고 나는 짐작해본다. 나의 노력과 기다림의 결과이기보다는 부족한 식물 집사에게서 11년 동안 견뎌내 온 내공이 있는 녀석들이라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초보 식물 집사들은 의례 식물을 화원이나 꽃집에서 들일 때, 물 주는 주기를 묻거나, 실내 혹은 실외에 키워야 하는지, 키우는 데 있어서의 난이도 상. 중. 하를 따져 묻곤 한다. 특히 물 주는 주기에 민감하다. 나 역시 그랬었다. 물을 좋아하는 식물일 경우 물을 자주 줘도 된다라든가, 일주일에 한 번, 10일에 한 번, 한 달에 두 번, 것도 어렵다 싶으면 흙이 바짝 말랐는지 손으로 혹은 나무젓가락으로 확인해보고 물을 주라고 한다. 초보 식물 집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과습이다.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물을 준다. 집집마다 습도도 틀리고, 환경도 틀리다. 그리고 식물도 환경이 바뀌면 적응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분갈이하고 나서도 몸살처럼 앓다가 죽기도 하고, 다시 건강하게 쑥쑥 자라기도 한다. 요즘은 식물 키우는 난이도를 체크해 놓은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사실 누군가에게 정말 쉬운 식물이, 아무리 능수능란한 능력자에게는 어려운 식물이 될 수 있다. 스투키는 웬만한 똥 손도 키운다는 말이 있지만, 내가 아는 분 중에는 스투키가 제일 어렵다는 분도 있다. 나는 고백하건대, 율마가 가장 어렵다. 같은 날 비슷한 크기의 쌍둥이 율마를 사서 온 적이 있다. 이미 율마를 실패한 경험이 있어 둘을 같이 키워봤다. 같은 장소, 같은 날 물주기, 같은 날 영양제도 투입하고 같은 정성을 쏟았다. 한쪽 율마가 색이 갈색으로 짙어지더니, 이내 흉하게 죽어버렸다. 그래도 나에겐 ‘아직 한 척의 율마가 더 있다.’라며 정성을 쏟았다. 에게~, 또 하나의 율마 마저 보냈다. 그 후 아직 율마에 도전하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 불쑥 데려올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나는 일어나면 여유를 만들어 식물 앞에 서서 시간을 잠시 멈춘다. 병원에서 의사가 아침 회진을 돌며 환자를 대하듯, 식물을 대한다. 굳이 물을 주는 주기를 따지지 않고, 물이 필요한지? 영양제가 필요한지? 통풍이 필요한지? 햇볕 드는 자리가 필요한지? 마른 잎에만 물을 뿌려주면 되는지? 벌레는 생기지 않았는지? 살핀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려 하듯 , 식물을 읽으려 한다.


살다 보면 식물 집사도 아픈 날들이 있다. 몸이 아픈 날도 있고, 마음이 아픈 날도 있다. 때론 아픈 날들이 길어지거나, 때론 긴 여행으로 인해 차마 돌 보지 못 할 때가 있다.

나에게 적응한 게 분명하다. 그런 날도 알아서 나의 반려식물들은 기다려준다. 부족한 식물 집사와 합을 이뤄 사는 법을 터득한 것만 같다. 어느 쪽이 더 많이 길들여진 쪽일까?




식물을 키우는 여러 가지 이유에는 인테리어, 공기정화, 습도 조절 등과 같은 목적의식이 뚜렷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제 식물을 돌보는 일상 자체를 영위한다. 크고 작은 화분에 거실을 내어 주고, 베란다를 할애 주고, 방 곳곳에 자리를 마련했다. 아파트에서 제 키만 한 식물과 크고 작은 식물들을 키운다는 것은 만만찮은 노동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거실과 베란다로, 화장실로 화분을 이리저리 옮겨 다닐 일이 잦다. 물을 줄 때도 그렇고, 분갈이가 필요할 때도 그렇고, 통풍에도 신경을 써야 하고, 햇볕의 양을 조절하기 위해 커튼을 거두기도 하고, 치기도 한다. 허리도 아프고, 손목도 시큰거릴 때가 잦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누가 “쩐”을 주는 일도 아님에도 기꺼이 나의 노동을 갈음하여 식물을 키우고 있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나의 반려 식물들 앞에 한 참을 머문다. 그들이 경험한 식물 이야기를 쏟아내고 나서야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다. 식물은 낯선 이의 방문을 항상 자연스럽게 편안함으로 이어준다. 어린 딸의 친구들이 방문할 때도 다르지 않다. “너네 집에 진짜 식물이 많다.” 그렇게 말문을 트면 딸아이는 식물들에게 직접 지어준 이름을 말해주기도 하고, 식물 박사가 된 것 마냥 이야기를 한다. 남편 역시 식물에는 관대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식물의 성장을 바라보고 감탄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무거운 화분을 옮겨주고, 분갈이를 돕고, 새로 들이는 식물에 대해 이름을 기억하려 한다. 우리 가족은 식물원이 있는 곳이면 지나치기가 힘들다. 집에 식물이 있어도 식물을 보러 간다. 우리 가족은 식물을 통해 에너지를 받고 있는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