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파는 삽질에 관해.
세상에 태어나 내가 읽은 첫 문장, 혹은 첫 책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기억을 더듬어 추측해 보건대, 쉘 실버스타인 작.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지 않았을까 한다. 서점에서 근무를 하던 막내 외삼촌이 가난한 누이에게 준 선물이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 처음으로 전집이 생겼다. 세계명작 시리즈. 책도 없는 집에 장난감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겨우 초등학교 입학해서 한글을 깨쳤으니, 제대로 책을 읽어낼 수도 없었다. 50여 권의 전집 중에 내가 그나마 읽었다면 글밥은 적고, 그림이 절반을 차지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가장 유력하다.
시간은 많고,
장난감은 없고,
책은 세계명작 시리즈 전집뿐이고,
아이는 항상 심심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초등시절 세계명작 시리즈는 심심해서 읽었던 나의 첫 책이었다. 그 경험은 훗날 내 아이를 키우면서 장난감을 사주는 대신 책을 사주겠다는 결심으로, 아이는 좀 심심해야 된다는 생각의 밑거름이 되었다.
초등시절 읽었던 세계명작 시리즈 이후, 우리 집에 더 이상의 전집은 없었다.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학업에만 치중되어, 책은 서서히 멀어졌다. 시험기간만 되면 책을 읽고 싶어 안달이 났던 기억이 있다.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눈앞에 두고, 시험공부를 했다. ‘시험만 끝나면 읽으리라’ 하면서. 정작 시험이 끝나면 책은 읽지 않았다. 책은 공부하기 싫은 마음을 잡아주는 수단으로써의 역할만 했다. 나의 지적 사고력은 세계명작 시리즈에 정체된 상태로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 좋았던 1순위는 대학교에는 도서관이 있고, 책을 빌릴 수 있는 것이었다. 제법 책 근육을 키워 사회에 나왔으나, 이내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사회인의 일상에 책은 점점 멀어졌다. 애써 키운 근육은 탄력을 잃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였다. 아이라는 존재의 무게를 실감하고, 허우적대다 궁여지책으로 육아서를 집어 들었다. 남들도 다 키우는데 나라고 못 키우겠어?라고 얕잡아 보았다가 큰코다친 격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자괴감에 빠졌다. 그때 아무도 ‘엄마’는 처음이라 힘들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라면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라고 채근했다. 기댈 때가 없었다. 남편은 퇴근 후 육아를 도와야 된다는 것에 못마땅한 내색을 팍팍 내 던 때였다. 그도 육아의 고충을 차차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이해했지만, 당시는 ‘이런 남자와 평생을 살아야 해’?라고 고민도 했었다. 책으로 육아에 전념하는 나날을 보내다 힘에 부쳤다. 육아서 조차 나를 채근했다. 육아서는 성공한 엄마가 쓴 책이었다. 결국 그녀만의 육아법을 따라가다 지쳐갔고, 육아서를 다른 육아서로 대체하는 날들을 보냈다. 나는 항상 부족한 엄마이고, 끈기가 부족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육아서는 책으로 가는 길목에 문을 열어줬다. 딱 거기까지였다.
성공한 육아서에 치이던 와중에 서툰 엄마가 만난 책이 있었다. 바로 그림책이다.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어색한 엄마는 누워서 그림책을 펼쳐 읽어주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데 내가 위안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림이 말없이 건네는 위로와 따뜻한 글이 말을 걸어 주었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림책이 건네는 처방전으로 길 잃은 육아에 길을 만났다.
그림책 읽다 웃기도 하고,
그림책 읽다 울기도 하고,
그림책 읽다 주인공처럼 따라 놀고, 춤추고, 노래 부르고,
그림책 읽다 그림도 그리고,
그림책 하나만 있으면 아이와 보내는 시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아이도 즐겁고 엄마도 즐거웠다. 그림책으로 매일 샤워를 했다. 그림책 덕후가 되었고 여전히 보물찾기 하듯 그림책을 찾는다.
2022년 8월 현재 : 대출 이력 815권.
도서관 대출카드를 만든 2015년 10월부터, 6년 10개월의 대출 이력이 815권이다. 월평균 9.9권의 책을 읽은 셈이다. 직접 구매하여 읽은 책도 있으니 훨씬 많은 양의 책을 읽었을 것이다. 물론 읽다가 취향이 아니거나, 시일 내 못 읽어서 반납한 책도 있다. 하지만 815권의 대출 이력은 분명 의미가 있는 숫자다. 남들은 눈치 못 챘겠지만, 나는 변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나는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었고, 책을 멈추는 시간에는 나 역시 멈추었다. 육아서를 지나 그림책을 지나, 내 돈 주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은 책까지 아낌없이 빌려서 읽었다. 도서관에 드나들지 않았다면, 마케팅에 현혹된 책만 읽어내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고르는 안목이 없으니, 베스트셀러나 광고에 의존하여 읽었을 것이다. 결코 만날 수 없었을 좋은 글과 작가를 원 없이 만나고 있다.
815권이라는 숫자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앉은자리에서 300페이지 이상의 책도 거뜬히 읽어낼 수 있는 근육을 키웠다. 좋은 책을 귀신같이 알아보는 안목과 다양한 분야의 책을 동시다발로 읽을 수 있는 멀티적 읽기 스킬도 얻었다. 읽기 싫은 책도 무조건 다 읽으려는 아집도 버렸다. 세상은 넓고 내가 읽을 책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세상을 다 안다고 치기를 부리던 어리석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 것도 책. 배우려는 낮은 자세를 갖추며 세상을 살아가리라 마음먹게 한 것도 책. 글을 읽으며, 글을 쓰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도운 것도 책이다. 책을 읽으면 매일 새로운 문장을 만난다. 매일 새로운 문장을 만나면 새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쉽사리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단언컨대, 책은 사람을 변화게 한다.
내게 부자의 조건은 돈의 구애 없이, 서점에 들러 읽고 싶은 책을 3권 정도 살 수 있으면 충분하다. 돈이 궁색한 시절 내가 기준 삼은 부자의 조건이다. 책이 삶을 살아가는데 뭐라고, 구구절절 유난을 떠나 싶으시죠? 책으로 인해 충분히 부자가 된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니 한 번 속는 셈 치고 믿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