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는 일상의 삽질
https://m.blog.naver.com/juliebe1 나는 10년째 블로그를 쓰고 있다.
10년 N블로그의 과거,
나는 블로그에 기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수만 장의 사진을 저장 중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순간의 찰나에 대한 집착은 더 견고해졌다. 스마트 폰의 기능은 송. 수신의 목적보다 사진을 사수하는 데 있다. 9년 연애, 11년 결혼을 유지한 남편과의 추억은 이미 행방을 잃은 지 오래다. 추억의 한 장면을 영원할 것처럼, 포즈에 신중을 기하고, 가장 예쁜 배경을 물색하며 찍었던 순간들은 사라졌다. 디지털카메라가 흥하던 시절의 연애라 컴퓨터에 모든 사진을 저장했었다. 남편과의 연애 시절 사진과 결혼식 사진과 신혼여행 사진은 출력을 미루며 컴퓨터 하드에 저장되어 있었다. 컴퓨터에 치명적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전문가의 수리가 필요하던 날, 사진은 사라졌다.
컴퓨터 수리 기사에게 부디 사진만이라도 건지고 싶다고 하였다. 그는 말했다. “앞으로 중요한 건 따로 백업을 해 놓으십시오.” 결국, 수많은 추억의 찰나는 순식간에 리셋되었다.
나는 결혼식 사진과 신혼여행 사진이 없다. 그나마 싸이월드에 남겨진 사진이 전부다. 그 싸이월드마저 사라지려는 위기 속에 부활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사진은 찰나를 기억하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부여하는 것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진이 사라지면서 우리들의 이야기도 같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10년의 이야기가 찰나에 사라진 경험이 있는 나는 아이의 이야기만큼은, 사진만큼은 지켜내고 싶었다. 아이의 첫돌이 되기 전 도전한 일이 있었다. 모 기업에서 100일 동안 아이의 성장일기를 하루도 빼지 않고 쓰면 책 한 권 만들어주는 이벤트를 했다. 곰이 사람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만 먹고 100일을 버티듯, 100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기를 썼다. 아이를 위한 100일 동안의 이야기는 책이 되었다. 그 뿌듯함이 씨앗이 되어 아이는 절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를 N블로그에 쓰기 시작했었다.
10주년 N블로그의 현재,
올해로 나는 N블로거로서 10주년을 맞았다. 이제 아이는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을 읽는 나이가 되었다. 아이는 읽고 또 읽는다.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이때 정말 이랬어?”라고. 기록된 사진과 이야기는 고스란히 박제된 채 말해준다. “응, 그때 그랬어.”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하며 놀고, 어디를 가고, 누구와 함께 하고, 무엇을 느꼈을 것 같은 것들을 담고 있다. 오직, 아이라는 독자를 위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이것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파워블로거도 아니고,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서로 이웃이 많아 소통하는 이웃이 있는 것도 아니다. 블로그를 키우거나, 배너를 달지도 않는다. 그저 틈나면 아이의 이야기와 우리의 이야기를 쓴다. 아이의 성장 기록을 내가 썼는데도 생경한 순간들과 마주한다. 아이의 성장을 기록하지만, 엄마로서의 미숙한 나의 성장을 발견하기도 한다. 기저귀 떼던 아이를 기다려주지 못해 다그쳐서 한없이 미안해하던 못난 엄마, 킥보드 타고 나갔다 아이가 크게 다쳐 얼굴에 상처가 남겨진 날, 새로운 경험을 배우게 하고 싶었던 욕심이 과해 성급한 욕망으로 어긋났던 일, 아이를 키우며 그림책 덕후가 된 이야기, 시절마다 먹었던 음식 이야기, 슬프기도 기쁘기도 아프기도 행복하기도 한 이야기들을 읽으며 엄마로 성장한 나를 읽게 된다.
10년 N블로그의 미래,
남편은 나의 블로그를 엿본다. 나는 그가 나의 블로그 글을 엿보는 것을 안다. 자기 이야기도, 아이 이야기도 그리고 나의 이야기도 읽는다. 그의 이야기 중에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부족했던 순간들의 험담도 가감 없이 적혀 있다. 읽은 티 내지 않고 그는 서서히 변화를 보여줬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장 큰 소득이라면 그의 긍정적 변화와 태도이다. 우리 삶이 고스란히 담긴 그릇을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블로그에서 그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읽지만, 미래의 자기 모습이 어떻게 쓰이고 그려질지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식탁에 잘 차려진 음식을 찍고 기록하는 나를 알기에 손을 대지 않고 기다린다. 우리의 여행이 어땠는지 찾아서 읽고, 평소 함께 하지 못했던 아이와 엄마의 일상을 찾아서 읽기도 한다. 그런 과정 속에 그는 조금 더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좋은 사람으로 기록되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애써 나를 알아봐 달라고 떼쓰지 않는다. 그가 나의 블로그에서 나를 읽어내려 하는 사람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앞으로 갱년기와 사춘기의 격돌이 멀지 않았고, 아이의 신체 변화는 파도를 탈 것이고, 코로나로 막혔던 다양한 여행 이야기도 남겨질 것이고, 여전히 먹고, 보고, 느끼고, 슬프고, 아프고, 헤어지고, 성장하는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라는 사람은 연결되어 살아낸다. 아이가 자라는 내내, 어른이 되었을 때도, 힘이 들고 아픈 날에도, 기쁜 날에도, 그리운 날에도, 꺼내 읽기를 나는 기도한다. 얼마나 사랑받고,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값진 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기록하는 블로그도 끝이 있다. 쓸 수 있는 기력과 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일 것이다. 나의 블로그에는 내가 아이에게 주고 싶은 유산이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허투러 하루를, 우리들의 일상을 흘려보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남겨줄 유산이기 때문이다. 나의 10주년 N블로그의 미래가 벌써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