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기 위해 vs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젠장, 목이 부었다. 목이 부었다는 신호는 곧 두통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몸을 보살피는 정성에 비례하여 짧으면 3-4일, 길면 일주일 이상 붓기와 공생해야 한다. 아픈 몸을 견디는 것만큼이나 힘든 것이 있다. 커피를 끊어야 한다.
커피가 체질에 상극이라고 한의원 진료 때마다 듣는다. 이미 내 몸은 그것을 안다. 하루 커피를 버텨내는 총량이 있다. 믹스 커피 한 개와 투샷의 아메리카노 한 잔이다. 그 이상을 마시면 온 몸이 반응을 한다. 손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아프고, 잠을 못 잔다.
어쩌면 하루 커피 총량이라는 것도 그동안 나름의 조율로 일궈 낸 몸의 결과이다. 커피를 마셔대며 몸이 반응하는 경우의 수를 실험해보고 나서야 얻은 최상의 조건이다.
아침 시간을 할애하는 루틴 중에 커피를 마시기 위한 준비과정이 있다. 나는 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는 금융기관에서 9년 동안 일을 했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컴퓨터 전원을 켜고, 부팅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고객을 위해 준비된 자판기에서 믹스 커피 한잔을 뽑는다. 자리로 돌아와 메일함을 연다. 메일함에서 전 날까지도 소화가 되지 않은 메일과 이른 아침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각종 데이터들을 내려받는다. 한 손에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다른 한 손은 바쁜 마우스를 움직이며 눈을 굴렸다. 하루도 거르지 않았던 루틴이었다. 어떤 날은 커피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버린 적도 많았다. 메일을 소화하려는 바쁜 손과 눈이 커피를 순간 잊게 만든 날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출근한 몸은 바로 퇴근을 해도 무방할 만큼 피곤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커피는 나의 몸에게 출근했으니 정신 차리라고 일깨워주는 동시에 찰나의 여유를 준다. 짧은 찰나에 아주 많은 계획이 세워진다. 일과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그 찰나에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아침나절에 커피 한 잔을 소화했으니, 남은 하루 중에 투 샷의 아메리카노 한 잔이 남아 있다. (단, 퇴근 후에는 절대 안 된다. 쉽게 잠들지 못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날에는 점심시간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신다. 자주 들르는 카페에서 테이크 아웃을 하기도 하지만, 오롯이 커피 타임을 만들기 위해 편의점에서 간단한 점심을 해결하고 시간을 아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날도 많았다. 커피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치밀하게 시간을 배분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은 매일 반복됐다. 나의 몸뚱이는 카페인에 취약하고, 커피가 체질상 상극이라 컨디션이 저조한 날이면 한동안 커피를 끊어야 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때만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계절 중 습도를 머금은 여름을 가장 싫어한다. 그럼에도 여름이 좋은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어서다. 편도가 약해 겨울에는 먹고 싶어도 참는다. 참다가 먹고 싶어서 ‘에라- 모르겠다.’하고 마신 후에는 어김없이 편도가 붓고, 몸살을 앓았다. 겨우 아이스 한 잔에 손해가 막심하다. 아픈 건 둘째치고 일주일 이상 커피를 끊어야 하는 것이 더 치명적이다. 커피를 끊는 동안에는 모든 루틴이 깨졌다. 정신은 몽롱했으며, 컨디션이 바닥이니 실수가 없어야 하는 업무 특성상 예민함이 극에 달했다. 그렇다고 커피를 마실 수는 없었다. 커피는 내 몸이 감기 중이거나, 편도가 부었을 때 더 상극임을 극명하게 드러냈고, 몸의 회복을 더디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아는 여름에만 즐긴다.
여름이 오기 전 어느 날, 나는 아아를 먹겠다고 조급한 날이 있었다. 하여 몸을 뜨겁게 달구기 위해 운동을 했다. 몸을 뜨겁게 달궈 놓고 아아를 마셨다. 나에게는 건강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기 위해 운동하는 게 더 맞는 말이다.
직장은 퇴사했지만 그때의 루틴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아침에는 어김없이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신다. 바쁜 금융인의 아침과는 달리 커피의 따뜻함, 향, 맛을 느낄 여유가 넉넉하다. 부러 과거를 소환하면서 현재의 시간을 감사해하며 즐긴다. 점심에는 투 샷의 아메리카노를 오롯이 즐기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 또한 여전하다. 최상의 커피 타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취향의 커피(케냐 AA를 주로 고집하는 편)를 마셔야 하고, 장소는 어디라도 좋다. 가끔 애정 하는 사람과 함께 즐기는 커피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루 중 커피를 마시기 위해 세우는 나의 계획은 행복해지려는 가장 적극적인 의지이다. 사실 커피의 맛과 향을 즐기기도 하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궁극의 이유는 멈춤의 시간을 통해 사색하게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빠도 챙겨 마시려고 애썼던 건, 커피를 핑계 삼아 쉬고 싶었던 나의 육체와 정신이 아녔을까 싶다.
커피 마시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운동을 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