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의 원인과 결과
가끔 꺼내는 열정이 있습니다. 바로 소잉 열정입니다. 바느질에 빠져 본 사람은 어떤 열정인지 아실까요? 사실, 글도 잘 안 써지고 하여 접어두었던 열정을 잠깐만 꺼내, 소품 한두 개정도 만들며 창작의 불을 지펴보려 했습니다. ‘드르륵드르륵’ 미싱이 지나간 자리만 집중하다 보면 세상 모든 생각, 걱정, 고민이 잊힙니다. 작은 것이라도 직선 박기 하나로 작품이 뚝딱 만들어지면 생경한 느낌과 뿌듯함이 동시에 밀려오기도 하거든요. 그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꺼내는 열정인 것 같아요.
이제, 정말 글을 써야겠어요. 그런데 자꾸 아이패드를 감싸고 있던 파우치가 눈에 거슬립니다. 예전에 만들어 사용 중이었는데 대충 만들었던지 내내 눈에 걸렸거든요. 그게 딱 오늘 더 집요하게 거슬리는 건 기분 탓일까요? 내친김에 만들기로 했어요. 잠시 쉬어간다고 생각하고 파우치를 만들었어요. 아이패드를 자로 재고 모양과 크기를 잡고, 원단을 신중하게 골라야 합니다. 원단을 고를 때 가장 신중한 이유는 만든 이의 감성이 그대로 묻어나는 포인트가 되기 때문이죠.
바느질 선은 좀 비틀어져도, 모양이 별로라도 원단의 조합이 그럴싸하면 봐줄 만한 작품이 되거든요. 미싱을 하는 분들에게는 병이 있어요. “원단 집착 병”이라고. 이 병은 명품에 반응하는 것보다 예쁜 원단에 반응하는 아드레날린이 심각한 병이랍니다. 저도 걸린 병이라 최대한 자제하며 살고 있어요. 한때는 저 역시 명품에 집착까지는 아니어도 소소하게 욕망을 드러내며 사기도 했었어요. 지금은 제가 만든 가방을 더 뽐내고 살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힘드신가요? 명품과 비교한다는 것이.
미싱을 배우기 전과 후의 제 모습입니다. 파우치가 완성했으니 다시 글을 써야겠지요?
p.s : 아껴두었던 원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원피스형 에이프런을 만들었다지요. 에이프런을 만들고 나서 소잉을 멈추었느냐? 아닙니다. 카드지갑을 7개 더 만들고, 딸아이의 여름-여름 한 바지와 다가올 추석에 입힐 생활 한복을 만들고 있습니다. 잠깐 꺼낸 열정치고는 과합니다. 점심을 거르고, 끝방(미싱이 있는 방)에 갇혀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미싱을 배우러 다니게 된 이유가 있었다. 영국 리버티 원단(은은한 꽃무늬 원단)으로 만든 철릭 한복을 본 순간 가슴이 뛰었다. 딸아이에게 영국 리버티 원단으로 만든 철릭 한복을 입히겠다고 한복과 관련된 소셜을 쥐 잡듯 찾아 뒤졌다.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은 가격이 사악하여 포기했고, 적당해 보이는 것은 성에 차지 않았다. 어떤 것은 이래서 싫고, 어떤 것은 저래서 싫고, ‘차라리 내가 만들겠다.’라고 중얼거리다가, 결국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바뀌었다.
바느질이라고는 고등학교 가정 수업시간에 배운 게 전부였고, 바느질을 해 본 기억조차 전무했다. 일단, 옷을 만들려면 미싱을 배워야 되겠다 싶어 무작정 가까운 소잉 교실을 찾아갔다. 미싱을 다룰 줄만 알면 한복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백지상태에서나 가능한 객기였다.
단계가 있었다. 초급, 중급, 고급과정이 있는데 고급단계에서나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길이 멀어 보여 포기할까 하다 한복에 대한 셀렘이 가시지 않아해 보기로 했다.
초급은 바느질의 기본과 미싱 기계를 다루는 것에서 시작하여 직선 박기, 곡선 박기, 바이어스 감싸기 같은 것을 배워 간단한 생활 소품을 만들었다. 미싱 기계를 다루는 것도 처음은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바느질이 깔끔하게 되지 않았다. 당혹스러웠다. 한복이 웬 말이냐. 현타가 왔다. 나는 한복을 만들어야 하는데, 고작 기본도 나아가지 못하다니.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하면 나는 소싱 교실로 출근하고, 아이가 하원할 즈음 소잉 교실에서 나왔다. 함께 수강한 분들을 제치고 초급을 마쳤다. 어찌어찌하여 휴지 케이스, 파우치, 냄비 받침 같은 소품이 만들어졌는데 의외성의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왠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것이라는 가치를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초급에서 배운 기술로 중급에서는 발매트, 실내 슬리퍼, 에코백, 앞치마를 배웠다. 돈만 주고 샀던 물품이 제법 쓸만하게 만들어진 것이 신기했다. 발매트는 우리 집 화장일 발판으로, 에코백은 나의 데일리 아이템으로, 실내 슬리퍼는 거실에서 신고 다녔다. 앞치마는 요리할 때, 청소할 때 필수품으로 착용했다. 소잉 교실 선생님과 수강생들은 나를 신기해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하다시피 하니 실력과 속도가 일취월장이었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초급 혹은 중급을 하다가 취미로서 적성을 고려하여 그만두거나, 시간의 제약에 의해 그만두기도 했다. 홀로 고급과정의 작품을 이수했다. 백팩, 원피스, 베갯잇, 쿠션 커버, 트레이닝 복, 베기 바지 같은 것을 만들었다. 그때 만들었던 작품들은 실제로 사용도 했고, 입기도 했다. 고급과정을 거치면서 한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고급과정이 끝나가는데 정작 미싱이 없었다. 남편은 미심쩍어했다. “배우다 말겠지.” “그거 배워서 뭘 하게?” “미싱 사놓고 처박아 놓겠지.” “어디다 놓고 쓸 거냐?” 긍정적인 말은 하나도 없었다. 미싱을 사자니 금액이 만만찮았다. 저가의 미싱을 사려니 힘이 약해 소품밖에 못 만들 것 같았다. 한 번 사면 오래 쓸 것이라 적정선을 정해 놓고 준공업용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것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나는 미싱을 사려는 밑밥, 남편은 쓸모없는 것이 될 거라는 밑밥을 던지며, 미싱을 두고 밀당을 했다.
결국 나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고 느꼈는지 미싱을 사는 것에 그는 동의했지만, 분명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결국 자리만 차지하고 말 거야.!”라고 악담을 했다.
남편은 책과 책상으로 가득한 끝 방을 정리했고, 그의 책상을 나에게 양보해 주었다. “그래 얼마나 쓰나 보자.”라고 하며. 그렇게 고마운 마음 반, 얄미운 마음 반으로 미싱을 들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한복을 만들어야 했다. 바느질도 못 하던 내가 세상에서 유일한 한복을 만들어 입히겠다고 소잉 교실을 아니고, 우겨서 미싱을 샀다.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 되었다. 나는 한복 비스무리라도 만들어내야 했다.
소잉 교실에서는 선생님이 있어서 척척 막힘이 없었는데, 혼자 책을 보고, 패턴만 가지고 한복을 만들자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목표가 너무 컸다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일주일 동안 집에 틀어박혀 철릭 한복을 만들었다. 옷은 연결 부분이 있어 작은 오차에도 모양이 틀어진다. 재단도 중요하고, 바느질도 섬세해야 했다. 속성으로 모든 과정을 거쳤기에 실력이 탄탄치 못했음을 인정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다. 반드시 추석에 내가 만든 철릭 한복을 입히리라는 일념 하나로 정진했다.
조금씩 모양새가 갖춰져 갖고, 은은한 하늘색의 리버티 원단이 한복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날갯짓을 했다. 그렇게 딸아이는 엄마가 만든 최초의 한복을 입을 수 있었다. 어린이집 행사에도 입었으며, 추석에는 철릭 한복을 입고 어른들에게 인사도 했다. 아이가 입은 한복을 본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싱의 원인과 결과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짧고도 굵은 소잉의 계절이었다.
지금까지 아이를 위해 한복을 세 벌 만들었다. 요즘 만들고 있는 생활 한복은 네 번째 만들게 되는 한복이다. 아이의 성장에 맞춰 한복을 만들고 있다. 정성을 깃든 만큼 생각이 많은 한복이라, 욕심내는 이가 있어도 차마 물려주지 못하고 고이 간직하고 있다. 훗날 한복에 얽힌 이야기가 어떤 의미로 발현될지 기대가 된다.
잠깐, 궁금하실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 남편은 제가 소잉을 배우겠다고 했을 때도, 미싱 기계를 사겠다고 했을 때도 지지는커녕 핀잔을 주었습니다. 괘씸했지요. 지금은 고개를 숙인 상태입니다. 그 누구보다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다리가 짧아서 거의 모든 바지를 수선집에 맡겼는데, 그 모든 바지를 제가 수선해주고 있거든요. 저는 그의 바지를 수선해 줄 때마다 잊지 않고 말합니다. “수선비 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