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의 종착지

뭐가 될 줄 알고

by 와이 주

‘나에겐, 세상에 태어났으나 출생신고를 못한 자식들이 있다. 아픈 손가락들이다.’


지금부터 저의 욕망이 낳은 저의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때는 거슬러 5년 전입니다. 함께 독서모임을 하던 지인이 도서관에서 그림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통해 그림책을 만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녀가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제 눈에는 눈부신 재능으로 보였습니다. 때마다 미술관을 고집스럽게 다니는 저에게 그림은 항상 동경의 대상입니다. 그림책 덕후의 시선으로 그녀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부러움이 컸습니다.


그녀가 다음 해에도 모집을 할 것이니 도전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림을 못 그리는 내가 감히?라는 생각과 달리, 다음 해에 도전을 하게 됩니다. 일단, 책의 형태로 나만의 그림책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김칫국을 들이키며 ‘엄마들을 위한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일단 파는 삽질이니만큼 열심히 파-보기로 합니다. 제 인생 모토가 때론 뻔뻔하게, 그것도 안 먹히면 배 째거든요.


참가한 모든 분이 그림책을 내느냐? 그렇진 않았습니다. 이게 쉽게 볼 것이 아닌 게 스토리보드를 짜고, 그림책 특성상 기본 32페이지가 되다 보니 적어도 16장 이상의 원화를 그려야 합니다. 4월 즈음 시작하면 책으로 완성되기까지 10개월 이상 걸립니다. 1년여를 그림책 만드는데 올인합니다. 저같이 그림 실력이 형편없는 사람이 도전했으니 어림도 없는 일이었죠. 무슨 똥 배짱이었는지… 그 당시 그림은 형편없이 그렸지만 스토리보드와 원화 네다섯 장까지는 그렸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림책 판타지에 빠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딸아이와 산책을 나갔다가 비탈길에서 킥보드를 타고 내려오다 크게 다쳤습니다. 그날 이후 그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동안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 자책하는 엄마 모드로 급변하여 우울했고, 소도시에서 대도시를 오가며 병원을 다녀야 했습니다. 한 달여 이상을 아이의 치료에 매달리다 보니 호흡이 끊기고, 자존감도 바닥을 쳤습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집중해보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상황이 그랬던 것이 아니라, 제 능력치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애먼 상황 탓으로 돌렸을 뿐입니다.


처음 도전했던 그림책 만들기에 실패하니, 다음 해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마음속에 실패했다는 찝찝함이 발목을 잡았지만, 애써 모르는 척했습니다. 함께 작업을 하던 엄마들의 완성된 그림책을 보면서 마음이 쓰라렸지만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나의 의지와는 달리 능력치가 부족하다고, 접수 중임을 알면서 외면하고 있었는데, 접수 마지막 날 친하지는 않았지만 같이 참여했던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작년에 그려 놓았던 그림도 있지 않냐? 신청해보라고 독려하는 전화였습니다. 별 것도 아닌 일이었다고 치부했지만 실패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전화가 불씨가 되어 찝찝한 기분이라도 해소될 수 있다면 다시 해봐야겠다고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도전하게 되는 그림책은 달라야 했습니다. 전 연도에 그리던 그림을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실패의 원인을 찾고, 제가 그릴 수 있는 수준의 그림실력으로 글을 입혀보기로 합니다. 눈높이를 낮춰 나의 그림 실력만큼 그림책을 완성하기로 하였습니다. 전술이 안되면 전략이라도 잘 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자는 장군의 마음과 같이.


스토리 보드를 그 누구보다 먼저 그렸습니다. 제 전략은 도형이었습니다. 도형들이 주인공이었고, 도형을 이미지화하여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대로라면 한 달 안에 그림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너무 전략을 편하게 짠 것을 눈치챈 선생님은 제가 짠 스토리가 좋으니 동물을 캐릭터화 해보는 것을 권했습니다. 사람보다는 동물을 그리는 것이 훨씬 수월할 수 있다고 독려했습니다. 그래서 곰, 토끼, 고양이, 강아지를 물망에 올려놓았고 고민하던 중, 딸아이가 토끼에 꽂혀 있었고, 어차피 딸아이와 저의 이야기라 토끼를 간택했습니다. 그날부터 토끼만 주야장천 그렸습니다. 도서관 그림책 서가에 딸아이를 데리고 다니기도 하고, 혼자서도 그림책 서가에 살다시피 했습니다. 토끼를 캐릭터 화한 그림책은 물론이고, 바닥에 앉아 그림책 서가를 엉덩이로 밀고 다니며 그림책에 빠져 살았습니다. 저만의 토끼 캐릭터를 만들어 보겠다고 토끼를 얼마나 따라 그렸는지 모릅니다. 상상 속의 그림과 현실의 괴리를 좁혀보고자 했지만, 될 턱이 없었지요. 하지만 뻔뻔한 삽질러답게 포기하지 않고 그림책을 완성했습니다. 제법 전략을 잘 짠 덕에 그 해 [매일 듣고 싶은 말]이라는 그림책을 책이라는 물성으로 탄생시켰습니다. 일 년 여를 통틀어 그림책을 만드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제게 있어 그림책은 정답지 같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이 없었다면 육아 우울증을 극복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지 모릅니다. 저와 아이의 정서를 함께 보듬어 주었습니다. 비록, 저의 처음 그림책은 ISBN을 부여받지 못한 채 도서관 전시와 서가에서만 숨을 죽인 채 살아있습니다. 저의 첫 번째 아픈 손가락입니다.

‘이 엄마가 곧 세상 밖으로 너를 꺼내 줄게, 때를 기다려 다오’


첫 번째 그림책의 희열은 두 번째 그림책을 만드는 동력을 덤으로 주었습니다. 다음 해에 도전한 두 번째 그림책은 사람을 그려내는 기염을 토해 냅니다. 제목이 [아이스크림은 달콤하지만 녹는다]라는 그림책입니다. 저의 두 번째 아픈 손가락입니다. 한 동안 행복이란? 고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는 왜 살까?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인지, 행복하니까 사는 건지 헷갈렸습니다. 인생이 엿같다고 생각할 때도 분명 있었고, 태어났으니 사는 거지라고 체념 하 듯 살았던 때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맛으로 인생 살아내는 거지” 할 때도 있었단 말이죠. 서은국 저.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통해 행복을 정의 내리는 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에는 만족하다가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면 달콤했던 순간이 사라져 버리듯 행복은 늘 그렇게 금방 사라진다는 겁니다. 이렇게 쉽게 행복의 정의를 비유해버리다니. 그의 아이디어를 빌어 행복을 아이스크림에 비유하여 그림책을 완성하였습니다. 여전히 그림책을 만드는 시간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간이었습니다.


두 번째 그림책을 만들면서 제가 도전했던 일이 또 있었습니다. 동화 2편을 쓰기도 했습니다. 2020년 동서문학상 공모전에 동화 2편을 써서 냈습니다. 그림책과 관련한 스토리를 구상하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떠올렸는데, 최종적으로 [아이스크림은 달콤하지만 녹는다]가 결정되면서 구상하던 다른 이야기를 동화로 엮게 되었습니다. 제목만 살짝 공개하자면 [일호의 답장], [나는 참나무가 될 거예요]라는 동화입니다. 아이디어 노트에만 머물러 있기 아까울 것 같아서 어떻게든 이야기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처음 써 본 동화였습니다. 쓸 때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와, 이거 당선되는 거 아니야?’ 제가 좀 뻔뻔하잖습니까. 그 상상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턱걸이 상을 받습니다. “맥심상”이라고 시상 명단에 이름을 앉히는 성과는 냈습니다. 그 동화 2편이 제게는 세 번째, 네 번째아픈 손가락입니다.


“야~ 덜아, 언젠가는 출생신고할 날이 오지 않겠나? 쫌만 기다려보자이~”


제게 있어 글쓰기는 어쩌면 제가 하는 삽질 중에서 가장 오래 파고 있는 것이며, 가장 길게 파게 될 것 같습니다. 글과 책에 머뭇거리고, 기웃거리고, 서성이고, 망설이고, 용기를 내야 하고, 불안을 잠재우고, 죽는 날까지 파고 있을 삽질을 상상하면 글을 쓰는 일이 종착지가 아닐까 합니다.

제가 글을 쓰려면 처음의 미숙함과 실패를 받아들여야 하고, 과정을 견뎌야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쓸 수 있습니다. 어설피 알고 쓰는 글이 싫어서, 배우고 익히는 삽질을 주저하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어설피 경험해 보고 쓰는 글은 솔직히 부끄럽습니다. 혹여 그 부끄러움 마저도 솔직해질 수 있을 때 쓰겠습니다.

제가 하는 모든 삽질이 뭐가 될지 알 수 없지만, 계속 이어질 겁니다.



……


이 글의 에필로그로 [매일 듣고 싶은 말] 영상 남기고 갑니다. 총. 총. 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