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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Aug 08. 2016

새로운 것은 빛난다. 모든 새로운 것은 바랜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

 늘 그렇듯 살고 있다. 항상 가던 수영장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팔을 휘젓고 나와서 출근을 한다. 늘 하던 대로 윗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답을 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는다. 눈 앞에는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진들이 자석에 매달려있다. 감정 많던 때처럼 그때는 좋았었지 하며 이제는 추억조차 하지 않는다. 사진. 사진이지 뭐 라며 생각의 흐름은 어떤 연속의 기회조차 얻을 수 없이 툭. 자연스럽게 웃었던 미소는 지어본 적이 없다는 듯 정색한 얼굴로 모니터를 본다. 눈은 깜빡거리는지 마는지, 숨은 쉬는 사람인지 모를 만큼 내 모습에선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면 느끼고 싶은 게 없는 걸까. 그러다 힐끗 네 사진이 매달린 자석쯤의 너를 본다. 그래, 그땐 좋았지. 끈겼던 생각의 흐름도 너라면 조금 다르다. 그것도 조금만. 이내 흐르는 생각을 주워 담는 게 힘들지를 아는지 생각을 흘려버리기를 포기한다. 그땐 좋았는데, 지금은.


 뭐든 좋은 추억을 생각하면 그때만큼은 지금이 영 아니라고 생각해지기 쉬워지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사랑을 찾는 것도 그 탓인가. 며칠 전 <우리도 사랑일까>라는 영화를 봤다. 주인공 마고도 어쩐지 나랑 비슷해 보였다. 먹고 자고 수영장에서 팔을 휘젓고, 먹고 자고 수영장에서 팔을 휘젓고. 차라리 가끔은 수영장의 물을 휘젓기보다 세상의 모든 권태를 다 휘저어버리고 싶다. 휘휘 책상 위의 서류들부터 귀찮은 사람들, 너, 나, 누구든지, 다, 모조리. 휘젓다 휘젓다 문득 지루한 삶에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 느껴지지만, 결말을 다 아는 영화처럼 대충 스크롤만 옮기고 꺼버리듯 포기한다. 어차피 새로운 것도 이미 아는 영화 내용처럼 나중 가면 다 지겨울 거라고, 시작한 노력이 더 힘이 들 거라고. 내가 그토록 갖고 싶던 물건들도 내가 갖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겨운데. 그 점에서 마고의 친구 제럴딘과 할머니들의 대화는 살짝 섬뜩하기도 하다.

"요샌 내가 왜 다리 털을 미나 싶어. 어차피 우리 남편은 모를 텐데. 누구 좋으라고 귀찮게 이 짓을 하고 있지? 10년쯤 지나면 내가 다리를 밀건 말건 더 이상 누가 상관하겠어. 물론 난 아직도 남편이 좋아. 반짝 좋다가 10년 뒤엔 별로인 것보단 그게 나은 건가. 잘 모르겠어."


 " 가끔 새로운 거에 혹해. 새 것들은 반짝이니까."


  "새 것도 헌 게 된다오."


  맞아요, 새 것도 바래요. 헌 것도 원래 새 것이었죠.

 그때와 지금을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운 추억이 숨 쉬던 그때만큼은 좋지않다라기보다는 우리는 이제 그때와는 다르다. 자석 하나에 힘겹게 매달린 사진 속의 너도 다 안다는 듯 끄덕이는 얼굴이다. 하지만, 안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도통 모르겠다. 매번 새 옷을 사고는 금방 질린다며 안 입는 걸 아는 네가 매번 새로운 옷을 사러 나가는 것과 비슷한 건가. 요새는 다른 새로운 걸 찾고 싶다는데 그게 자유라나. 누구든 아는 대로 사는 건 역시 어려운 건가 보다. 아빠가 입에 달고 살던 “내가 시키는 대로 했으면 너는 뭐라도 되었겠다”라는 지겨운 단골 멘트도 그 예겠지. 나도 아빠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었으니까. 마고 역시 5년 된 남편 루를 사랑했고, 그 루를 사랑하는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 알면서 대니얼을 품에 안았지만.

남편 루와 마고
대니얼과 마고


 마고는 행복했을까. 모르겠다. 새로운 것은 결국은 헌 것이 된다는 데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으면, 인생을 가득가득 빛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내게는 사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보다 바랜 것에 더 정이 가는 것 같다. 구입한 지 4년이 다 돼서 느려졌다 빨라졌다 하는, 누런 사과의 맥북도 고맙기만 하다. 10년 가까이 내 손에 정감 있게 감기는 샤프도 고맙다. 특히, 누구보다 내 옆에서 바래가는 가족들, 엄마.


 때로는 사람이 다 나 같으면 얼마나 살기 편할까라고 이기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다면 더 좋을 텐데. 너에게 나는 헌 것이 돼가나 보다. 시간이 나를 헌 것으로 만들었는지 새로운 네 환경이 나를 헌 것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는 아니라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너를 보면 나 대신 네 인생을 빛낼 무언가를 갑자기 들일 것만 같기도 하다. 처음엔 그 생각이 정말로 서글퍼서, 헌 옷처럼 수거함에 내던져지는 게 싫었다가도 사람이 달라지는 게 당연한 것도 같다. 나도 우리 처음 그때보다 지금 이만큼이나 달라졌으니. 이제는 네 메시지가 안 와도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고(들지 않으려 노력하고) 잦던 전화가 없어도 그런가 보다 하니까(그런가 보다 하려고 하니까). 그래도 지하철역에서 네 집까지 걸어갈 시간 정도라도 내가 너와 전화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그러기보다는 얄밉다. 얄밉고 싶지도 않지만 무관심은 사랑의 반대말이 맞나 보다. 좀처럼 네게 무관심하기는 쉽지가 않다.


 인생을 가득가득 빛나게 하기 위해서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다면, 행복한 인생이 될까. 조금 바쁘겠지만 말이다. 모르겠다. 적어도 그것은 내 취향은 아니다. 종종 내 옆에서 그런 식으로 인생을 ‘빛내는’ 사람은 있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건 새로운 것으로 가득가득 채워 빛내는 것이라기보단 편의점에서 인스턴트식품을 한 아름 사서 하나씩 하나씩 뜯어먹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극적인 맛을 즐기는 것이 인생을 빛내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지 않을까 몸을 썩히면서. 그런 점에서 이제는 극 중 선지자 같기도 한 제럴딘은 루를 떠난 마고에게 일침을 남기기도 한다.

  맘 가는 대로 살면 다 잘 될 거 같지? 재밌긴 하겠지 신나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인생엔 당연히 빈틈이 있게 마련이야. 그걸 미친놈처럼 일일이 다 메울 순 없어.

 음, 그러면 인생의 빈틈에서 공허함을 견디어 내야만 하는 걸까. 그 빈틈을 일일이 메우기를 포기하면서 빈틈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 공허함이 좀 나아질까. 눈 뜨면 수영장에 가서 의미 없이 팔을 휘젓고 출근하고 억지 미소를 몇 번 짓다 퇴근해서 영화를 보다 재밌다 재미없다 생각하고 그리고 다음 날 눈을 뜨고 수영장 가는 인생을 당연하다 포기하면 좀 나아지는 걸까. 내 생각은 다르다. 그건 인생의 빈틈이 아니라 다른 맛이라고. 어렸을 때는 갓김치를 먹으면서 왜 어른들은 신김치를 좋아하는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상큼한 갓김치를 평생 좋아할 줄 알았는데 어느덧 나이가 하나둘씩 들면서 신김치도 입에 잘 맞는지 곧 잘 먹는다. 얼핏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맛을 아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이 맛 저 맛, 그 맛을 알아준다는 것. 인생의 빈틈이라고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그 ‘맛’인 거다. 첫인상에 심장이 쿵쾅쿵쾅 날 미치게 했던 그 사람이 지금은 만나도 설레지 않는다고 해서 두 사람의 빈틈일까. 아니다. 이제는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우리 사이가 우리 사랑의 맛이 된 것이다. 그 맛이 역겨우면 어쩔 수 없지만,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았다면 맛있다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마고와 남편 루의 마지막 대화는 눈물겹다. 서로의 사랑의 크기를 욕설로 바꾸어 말하는 장난을 했었던 그들의 마지막 이별인사는 정말로.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맛있다 할 수 없었던.

  “새로 산 멜론 볼러로 자기 눈알을 도려내고파.”
 “응, 나도.”


 그제는 술 먹고 시계를 잊어버리고는 마침 잘됐다 싶기도 했다. 유행이 지나서 바꾸려고 했던 참인데. 종종 보면 스마트폰을 바꿀 때가 되었다고 말하는 애들이 다음 주쯤 와서는 모르고 스마트폰을 변기통에 떨어뜨렸다고 한다. 뭐 나도 시계를 그렇게 보낸 건가. 금세 털고는 평소에 갖고 싶던 시계를 사서는 손목에 둘렀다. 오 예쁜데 하고는 몇 번 슬쩍슬쩍 보다 새로운 녀석과 어색해지고는 유행 지난 그 녀석의 정겨운 표정이 그립다. 틈날 때마다 손목을 들어 확인했던 녀석의 표정이. 루와 헤어지고 대니얼과 살기로 한 마고 역시 그랬을 거다. 루와 했던 행동을 그대로 대니얼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것도 너무나도 우울한 표정으로. 또,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던 장소에서 혼자서 추억하는 것을 보면.


 하아, 내일은 수영장에서 쓸데없이 팔을 휘젓더라도 또 그 맛이 있지라고 생각해볼까. 빈틈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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