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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Apr 13. 2019

일기

1.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와는 초등학교 시절 이후 왕래가 하나 없어, 사실 친구인지도 의문인 사이다. 이름으로 남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와 이십 몇 년 전 나누었던 대화는 아직도 생생하다.


 '어깨 좀 펴고 살아, 어?'


 악의 없는 말이었다. 나 역시 움츠린 채 다니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라,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그때 생각을 하며 어깨를 의식적으로 피려고 노력해왔다. 그렇게 내 어깨를 걱정하던 녀석은 몇 달 전 마포대교 밑에서 발견되었다한다. 자취를 감춘지 한 달 만에. 무엇이 힘들었을까, 세상의 무엇이 그의 어깨를 펴지 못하게 했을까. 알지는 못할, 차디찬 한강으로 그를 밀어넣은 세상의 매정함이 밉다.


2. 그때에, 이제 남은 건 이별 뿐이라고 그렇게 운을 떼었던 것 같다, 네가. 변할 자신이 없다고, 더 잘할 수 없다고 그렇게 또 말했다. 그런 잔혹한 말들 사이에서 생(生)을 포기한 사람의 뒤집어진 뒷모습을 보았다. 철이 녹아 흐르는 듯한, 범접할 수 없는 강물 위에 떠있는. 그리고 이내 괜한 소리가 들렸다. 풍덩. 너는 오랜 연애에 지쳐 다른 사람을 바라고 있는 걸지도, 아니면 적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파문으로 일었다.

 서운하였다. 그리고 넌 눈물을 쏟아내었는데. 그건 사람을 보내는, 사랑을 포기하는 눈물이 아니었다. 또 그 눈물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나로 하여금 아직도 네가 나를 사랑하는 지도 모른다고 느끼기에 과연 충분하였다. 답례인지 모르게 내 눈에서도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흐느꼈다.

 한편으로 분하였다. 억울하였다. 왜, 왜 우리가 이렇게 가슴 아파야하는지 연애가 서툰, 혹은 긴 사랑이 서툰 네가 원망스러웠다. 서툴러서, 처음이어서. 이런 가벼운 이유로 오래된,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불방망이 같은 게 가슴을 두들기는 듯 하였다.

 그렇지만 진퇴양난이었다. 만날 수도 이별할 수도 없었다. 악착 같이 곁에 남아 눈치 없는 연인으로 사랑하는 이에게 남을 수도,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알면서 헤어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저히 이 세상에 남은 방법 중엔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없는 것 같았다.


3. 생을 포기하게 하는 건 세상의 매정함이 전부라 생각했는데, 이외에도 세상엔 힘든 일이 많다는 걸 알았다. . 그러나 시간은 매정해서 어떤 선택이든 만들어낸다. 시간이라는 간수(看守)에 쫓기다 다리 밑으로 뛰어내렸다. 풍덩. 내 의지가 아니었다고, 합리화해봐도 물이 차다. 몸이 식는다. 봄이 되서야 뭍으로 나온 친구가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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