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하여
진정한 지옥은 내가 이 별에 왔는데
약속한 사람이 끝내 오지 않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그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류근, 시집 <상처적 체질>에서 시인의 말 中
영화 <퍼스트맨>은, 최초의 우주인으로 불리는 닐 암스트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닐 암스트롱은 처음으로 달에 발을 내딛음으로써 '최초의 우주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닐 암스트롱이 최초가 되기까지, 많은 희생이 있었다. 숭고하다는 단어로 표현하고 잊기에는, 무고했던. 그들은 탑승한 우주비행선에서 폭파사고로 생을 달리하기도 또, 훈련 중에도 사고로 검은 연기 속의 재 가루로 흩어지기도 하였다.
그런 생각이 든다. 숭고한 희생이랍시고 어쩔 수밖에 없다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핑계로, 허무하게 아버지를 잃은 자녀는, 남편을 잃은 아내는 얼마나, 또 얼마나.
닐의 아내인 자넷은, 우주로 떠난다는 닐을 어떻게 보낼 수 있었을까. 폭파, 실종, 화재 같은 죽음이 가득한 그 항해에. <퍼스트맨>의 자넷과 닐을 보면서 시인 류근의 작품을 여는 구절이 떠올랐다. 닐이 지구를 떠난다면 어찌어찌하여 자넷을 설득해서 우주로 향한다면, 그건 자넷에게 그리고 닐에게도 진정한 지옥이다. 언젠가 약속한 이가 돌아올 수 있을진 몰라도. 적어도, 아니 어쩌면 끝내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엄혹한 지옥!
과연 내가 자넷이라면 보낼 수 있었을까. 없다. 절대로! 신비로운 출산의 순간, 병원을 깨부술 듯한 임부(妊婦)의 비명이 옅어질 때 비로소 새 생명, 우리 아이와 같이 찬란한 보상이 뒤따른다고 한다. 그러나 찌를 듯한 비명 한 번 들어본 적 없음에도 나는, 어떠한 보상이라도 내 생애에 '약속한 사람'을 고통의 세계로 혹은 미지의 세계로 보낼 수 없다고 확신해왔다. 출산이 내가 모르는 작은 경우에 큰 상실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두려워하므로. 길을 걷다가 우연히 심장마비로 죽을 확률이 미미하더라도 누구나에게 있는 거라면, '약속한 사람'을 길마저 걷게 하고 싶지 않았던 나였으므로.
또, 내가 닐이라면 떠날 수 있었을까.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저기 저 달에 있었던가. 달,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곳이다. 그럼 닐은, 미지(未知)를 이유로 확신을 포기한 걸까. 아니면 약속한 사람은 사랑은 사실, 어쩌면 확신이 아니었던 걸까. 미지가 확신보다도 확고한 무엇이던가. 우주만큼이나 어지럽다.
아니면 실수이거나.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다. 실수를 부르는 것은 뭐든 사소하게 여기는 안일함이라고, 멋모를 때에는 뿌옇게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탓에 실수를 한다'는 식으로. 실수로 약속시간을 깜빡한 친구에게, 네가 날 하찮게 여겨서 그래, 하고 푸념을 하기도 하고. 그때는 그게 섭섭하기도 했다.
이제 와서, 오히려 사람은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벌일지도 몰라, 이렇게 받아들이고 소스라친다. 약속시간에 만나고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공원을 걷고 또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일에, 사소한 이깟 일에 사람은 실수하지 않는다. 실수는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다. 삶이 무르익어 너그럽게 수확을 기다릴 즈음의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아름다운 장소 넉넉한 순간에, 예기치 못한 태풍처럼 갑자기 나타나 그러나 소중한 무언가를 앗아가는 것이다. 아!, 단(短)탄식, 그리고 BLACK OUT. 후회할 기회도 없이. 끝.
그러나 닐은 달에서 돌아왔고, 닐과 자넷의 지옥은 막을 내렸다. 우연이나 행운은 가끔 실수를 구제하나 보다.
그리고 첫 번째 남자(First man), 닐은 다신 지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척박한 달을 알고 말았나. 첫 발자국에 실수는 누구나 치를 수 있는 법이고 또 상실은 좋은 가르침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