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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Jan 06. 2019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3

결론 - 소회

Van Gogh, <The Church at Auvers>, 1890


3. 결론 - 소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처음 접했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대략 10년 전이다. 등하교 길의 지하철 안에서 밀치는 사람들의 등과 어깨 사이로 어렵사리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이 책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유를 인파의 무게 탓 그리고 거친 지하철 선로가 만든 멀미 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남들처럼 그때엔 어렸어서 그리고 삶에 익숙지 않아서라는 흔한 어른들의 핑계로 나도 대신하고 싶다. 그래도 남은 것이 있다면, '에로스'와 '아가페'라는 말이었다. 사랑의 실패로 허덕이던 나에게 사랑의 종류를 구분하고 또 그 방법을 연마하자는 이 책이 놀라웠다. 이후로 나는 책이 가르친 바를 사랑에서, 삶에서 최대한 실천하며 살리라 결심했었다.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아름다운 궁궐의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하였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기만 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것이다.
-장자, 至樂


 쉬운 사랑은 없었다. 뿌리가 이미 썩어서 말라버린 나무에 물을 주는 것 같은 참담함을 상대에게 안겨준 적도 있었고, 꽃밭에 있으면서도 사방이 꽃인 줄도 모르고 밖으로 내닫기만 한 적도 있었고,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 혼자 허우적대면서도 더불어한 사랑이라고 착각한 적도 있었고, 상대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그 사람을 대했던 적도 있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이다. 사랑을 상실한 고통으로 세상이 멸망해도 이보다는 나을 거라고, 아니 차라리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되새김질로 괴로워했다. 그때엔 그게 죽음보다도 짙은 어둠이었다.


Van Gogh, <At Eternity's Gate>, 1890


 다시 이 책을 펼쳤다. 넘겨지는 종이 사이로 밀려오는 내용에서, 다시 쓴 맛을 보았다. 지금의 나는 10년 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사건이 남긴 허망한 현장의 정취가 다 그러하듯, 나아진 것 하나 없는 참혹함 앞에서 나는 스스로 무력하게만 느껴졌다.


Van Gogh, <Wheat field in the rain>, 1889


 그러나, 비슷해 보이는 무덤이어도 봉분 속에 품은 사연이 다르듯이, 예전처럼 혼자 있음에도 나는 그때와는 많이 다르다고 스스로 위로하련다. 서툰 아이의 손이 조물대다가 무너뜨린 모래성 같은 그런 사랑이 아니었으므로, 그래도 빗물에 번져 흐려지는 풍경에도 그 시간 그 장소에 번지지 않는 사랑이었으므로.





 내일이 오고 있다. 다시 지독한 장맛비가 쏟아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대차게 비를 맞고 흠뻑 독한 감기에 젖을지도 모른다고도. 무구한 여름 감기.

 그렇더라도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아. 이왕 사는 거, 비 오는 날에는 비를 흠뻑 맞고 또 젖어서 기침 두어 번 하는 거도 나쁘지 않은 일이니까. 혼자면 어떻고 또 둘이면 어떠하랴. 여름 소나기도 장맛비도 따가운 햇살도, 결국엔 풍부한 내 삶을 한껏 느끼면서 사는 일인데!

 그리고 또 모를 일이다. 가을의 풍성한 품에 넉넉히 안길 날 올지.


Van Gogh, <Wheatfield with Cypresses>, 1889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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