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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올 Jan 16. 2017

보이지 않는 손을 잡아줘

이기심을 넘어서 이기심까지

 기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니 나는 어느새 월요일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보았다. 불규칙하게 늘어선 건물 사이에, 그림자를 걷으려다만 달이 얼굴을 보였다 감췄다 깜빡였다. 건물과 닿을 듯 달은 낮게 밤하늘을 날고 있었고 달이 떨어질까 조마조마하기도 하였다. 음, 달이 지구로 떨어진다면 종말일까. 종말을 생각하니 나는 '좋은 삶'을 살아온 것일까 궁금하였다. 그래서 나는 지난 날을 돌아보았다. 내가 모은 시간들의 부스러기를 하나하나 헤아려보았다. 크고 작은 부스러기 중 닳고 닳아 보이지도 않은 것도 있지만 너무 커서 이건 부스러기로 보이지 않는 것도 있었다. 심지어 그런건 날카롭기까지 했다. 저런 것이 내 안 어딘가에 턱 박혀있어 아팠겠구나. 숨을 막을 정도의 부스러기. 나는 불쌍한 사람이었다고 동정해본다.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의 캐롤을 뒤로, 깡통을 내보이는 거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풉, 나는 퍽이나 이기적인 사람이구나, 떠오른 신파극을 머리속에서 지우기로 한다. 마음을 베는 부스러기 하나 없는 사람이 없을까. 이 세상의 모든 '나'들은 모두 날카로운 부스러기를 자신의 어딘가에 박고 살아간다. 어떤 이는 눈알의 검은자와 흰자의 경계 어딘가에 꽂힌 부스러기 때문에 어떤 꼴을 볼때마다 따끔거릴지도 모르고, 어떤 이는 산소가 드나드는 폐 어딘가에 박혀 숨쉬듯이 괴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내 부스러기는 나에게만 커다랗고 네 부스러기는 너에게만 커다랄 뿐이다.


 넌 이기적이야.

 어릴 적, 말다툼이 일어나면 누군가 하나는 먼저 '넌 이기적이야'라는 말을 뱉었다. 그럼 반작용으로 '너도 이기적이야'라고 하겠지만 다툼의 양상은 크게 변함이 없다. 차이는 좁히지 못하고 둘 다 이기적인 사람으로 남는다. 다툼의 이유가 어찌하였든, 결말은 하나. 우린 모두 이기적이다.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얼마나 당연한 일인지는 200년전부터도 아담스미스를 통해 유명한 사실이었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하는 것은 푸줏간, 술집, 빵집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해에 대한 배려다. 우리가 호소하는 것은 그들의 인류애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애심에 대해서이며, 우리가 그들에게 말하는 것은 결코 우리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에 의해서다."

 - <국부론>


 어쩌면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내용이다. 우리 모두는 이기적이다. 아담스미스는 더 나아가서는,


 "만약 누군가가 내일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한다면, 아마도 오늘밤 쉽사리 잠들지 못할 것이다. 반면 수억 명에 달하는 사람이 죽은 사고가 났다고 생각해보자. 하지만 그 사고를 직접 보지 않는 한, 그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코를 골며 잠들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망 사건보다 자신의 작은 불운에 더 고통스러워 한다."

 - <도덕감정론>


 수억 명에 달하는 사람이 죽는 사고보다 내 새끼손가락이 잘리는 것이 더 슬프다. 그러한가. 대충 생각해보면 당연히 수억 명의 목숨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해보자. 지구 어딘가, 네가 모를 어느 곳에, 네가 모를 누군가 한명이 죽을 위기에 처해있다. 하지만 내 새끼손가락을 한 시간 뒤에 자르면 그가 살 수 있다고 한다. 자를텐가. 글쎄, 정말 잘릴 위기를 만들어줘야 와닿을지 모르겠다. 작두를 가져다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확실한 대답은 할 수 없다. 모르긴 몰라도, 나라면 당연히 자르지 않는다. 그럼 두명의 목숨이 걸릴 경우엔? 안잘라. 세명은 어때. 안잘라. 네명은? 안잘라하다가 특정한 몇명 이상의 사람이 죽을 위기에 놓였다고해서 손가락을 자를 의지가 생길리 없다. 1,000명의 목숨이 걸릴 경우, 자신의 새끼 손가락을 자를 사람이 999명의 목숨이 걸릴 경우 자르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남의 목숨 따위에 관심이 없다. 안그래도 각박한 세상에 마음을 찢어놓는 돌직구가 밉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최근 들어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생각해보니, '남의 목숨'에 대해 내 새끼손가락과 상의하게 되었다.


1.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누구는 휴가를 쓰고 타지역인 그곳에 갔다. 나는 휴가를 차마 쓰지 못했다. 휴가를 쓰고 간 그 누구와 부의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구와 금액에 대한 줄다리기를 하다가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결정을 내렸다.


2. 사무실엔 말을 잘 듣지 않는 직장부하가 있다. 그는 다른 부서 사람들과의 대화에선 세상 누구보다 밝지만 사무실 사람과 대화를 나눌땐 표정 하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선배의 업무적 지시에 종종 거부감을 표정으로 드러내거나, 아주 가끔은 오히려 화를 낸다. 그는 누구에게도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 그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또한, 그는 그의 삶 동안 연인을 만나본 적이 없으며, 돈을 쓰는 것에 병적으로 인색하다.


 3. 한 일행이 술집에 앉았다. 술집의 의자가 미끄러워, 여자 일행이 앉자마자 얼굴을 테이블에 찌었다. 눈 주위의 난 상처는 상당한 출혈을 보였으며 얼굴의 반쪽은 피로 덮혔다.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피 덮힌 얼굴을 테이블 위로 보였고, 이내 일행들은 병원을 가야한다는 이유로 술집에 주문 취소를 요청하고 술집을 나갔다. 술집 직원은 일행이 떠난 빈자리를 정리하면서 사과없는 일행의 야속함에 대해 욕을 했다.


 위의 일련의 사건들은 내게서 새끼손가락을 흔쾌히 앗아가는 듯한 기분을 들게하였다. 새끼손가락을 돌려받고 싶은 마음에 그것들을 반추해보니 내 마음은 그러하였다.


1'.  가까운 사람의 거대한 슬픔에 대한 조의를 숫자로 밖에 재단할 수 밖에 현실이 안타깝다. 그렇다고 해서 휴가를 쓰고 한 걸음에 달려갈 정도의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내 자신에 대해 실망하였다. 못간 나에게, 합리화는 내게 많은 이유를 찾아다 주었다. 부끄러웠다



2'. 부하는 우울증 혹은 그와 비슷한 것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 그러나 업무관련성과 그와의 인연을 생각하면, 내가 그의 인생의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저 직장 상사 밖엔 못 된다. 우리 사이는 길게봐야 1년일지도 모른다.


3'. 아무리 안면이 없는 사람이라도, 사람의 안위보다 가게의 손실을 염려한 술집 직원들이 야속하였다. 못해도 피범벅인 그녀에 대한 걱정 한 마디라고 섞여있으면 그곳은 단순히 돈버는 공장이 아닌 기쁨을 파는 가게일 수 있을텐데.


 수억 명의 목숨도 두렵지 않은 나였다. 하지만 최근의 사건들은, 가까운 사람은 물론이고 아주 상관 없는 사람에서까지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아담스미스의 책을 펼치고는 물음표만 남겼다. 과연 정말 인간은 이기적인 것일까. 책을 덮고 연필을 들었다. 끄적이고 끄적이고 계속 끄적였다. 이기적인 걸까. 아닌가. 왜 아니지. 그러다 툭. 샤프심이 뿌러졌다. 샤프의 머리통을 눌러 샤프심을 뱉게 하려는데, 문득.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난 이기적이었다. 결국, 나는 친구 아버지에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나는 부하 직원을 안아주지 않았다. 나는 피흘리는 그녀에게 휴지하나 건네지 않았다. 이기적, 이었다. 나는 다시 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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