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한가한 금요일에 술을 마시면 아내는 열이면 열 베이스를 잡았다. 그게 미스 때 잡았던 베이스를 날마다 닦는 이유였다. 식탁에 막걸리 한 잔 놓고 아내는, 베이스를 울려대길 좋아했다. 둥둥둥 울리는 소리에 나는 대부분 울적해지곤 했다. 사진으로만 남은 둘째애부터, 돌아가신 아버지. 베이스 소리는 지금의 나를 의자에 앉혀놓고 어렸을 적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를 찾아다녔다. 아내는 내 울적한 심사는 제쳐두고, 본인의 울적함에 흠뻑 빠져서 연주하곤 했다. 가끔가다 추천곡을 묻곤 했지만, 내 의사와는 거의 상관없는 곡들이 연주되었다. 굳이 나는 아내의 슬픈 연주를 말리진 않았다. 말릴 이유가 없었다. 산다는 것은 원래 울적한 일이라고, 이게 살면서 확실히 알게 된 단 한 가지였으니까. 눈 감아도 변하지 않는 사실인 거니까. 둥둥둥 소리에 덩달아 장구나 드럼을 치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아내는 펜대나 잡으라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그날도 핀잔을 들었다.
그날따라, 아내는 퓨전국악하던 그때 그 시절 음악을 연주했다. 벚꽃 잎이 다져서 지저분한 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던 시절, 그 전단지 위에 그 음악들. 그래서인지 듣다 보면 격해지는 심사에, 북편이나 채편 아니 드럼 스틱이라도 들게 해달라고 떼를 썼다. 그러나 아내는 온몸으로 반대했다. 막걸리가 달궈놓은 벌건 눈으로, 튀어나갈 듯 쏘아대는 베이스 음으로. 나는 굳이 다툼을 만들고 싶진 않아 조용히 듣기만 했다. 막걸리를 같이 마시면서 연주까지 같이 거들었다면 좋았겠지만, 협주자의 마음에 호응할 수 없어 어찌할 바 없었다. 조용히 막걸리만 홀짝였다.
이번엔 아내는 소주를 부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 물었지만 별 날은 아니라고 했다. 시간이 늦어지고 아내는, 다시 막걸리를 부었다. 소주, 막걸리, 소주, 막걸리. 어느덧 아내의 베이스는 연주를 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아내가 마신 술이 음을 만들면, 내가 마신 술이 알아서 예술로 들었다.
툭, 베이스 선이 하나 끊어졌다. 그래, 이만하면 그만 자자. 내일도 있잖아.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베이스를 내려놓았다.
"할 말이 있어." 나는 아내의 말을 듣기로 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어?" 평소에 건조한 목소리의 아내는 온데간데 없었다. 나는 굳이 따져 묻지 않았다.
"음악 하는 게 뭐가 그리 죈데, 내가 뭘 잘못해서 우리애 그렇게 보냈냐고. 하필, 내가 일하고 있을 때. 그런 일이 터진 게 무슨 내 죄냐고. 누군 남들 일하고 있는 시간에 놀고, 놀 시간에 일하고 싶어서 이러냐고. 그래봐야 아무 필요도 없는 남의 새끼들 앞에서 줄 튕기는 거나 가르치고. 내 애도 이젠 없는데. 지금도 애들이 내 앞에서 촐랑대면 자꾸 둘째 생각나고. 난 무슨 죄가 그리 많아서 그런 일까지 내가 당해야하는 건데. 엉엉엉엉."
좀처럼 울지 않는 아내는 울기 시작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 다 나한테만 그러냐고. 넌 또 뭐가 그렇게 잘나서, 펜대 놀리면서 사람 깔보는데. 작가 나부랭이한다고 설치다가 쥐뿔도 못 건진게. 충고만 죽어라 해대고. 네 만 잘났지 아주. 음악이 죄냐고 죄. 음악하면 뭐 모르냐. 내가 병신이냐고. 아주 이젠 펜 잡는다고 사람 띄워주니까 봬는게 없지. 항상 가르치려고만 들고. 내가 너보다 뭐가 부족한데. 이 씨발새끼야. 엉엉엉엉. 왜 나한테만. 왜 나만. 왜 나만."
그게 내가 아는 아내의 마지막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