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덜 깬 탓일까
잠을 덜 잔 탓일까
늘 해오던 수학 문제들 사이에 대뜸 네가 떠올랐고
나는 떠오른 너를 허우적거려 잡아보려 했어
잡아왔다고 생각한 너였는데 오늘따라 낯설었고
다시 잡아야만 했어
문득 생각해보니 잡지 않은 것이 너를 더 사랑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느꼈어
온전히 가장 사랑했던 모습으로 너를 내 안에 남기려면
더 이상 너를, 앞으로 너를 내 안에 담지 않아야 된다고
나라는 존재에 너를 가두지 않고 너라는 존재에 혼연히 나를 잃지 않게
언젠가 네가 말했었지. 가장 아름다운 우리의 결말은 이별이라고. 소스라치듯 듣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아니라 했어. 곰곰이 생각해보니 너무 맞는 말이어서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말을 아무도 듣지 않는 어두운 방에 가두었어. 혹시라도 뛰쳐나올라 항상 무서워서 뜬 눈으로 지새운 밤도 많았을 거야. 오늘 다른 생각을 엿보다 문득 그게 뛰쳐나왔고 뛰쳐나간 그 말을 잡을 힘조차 없었어. 그냥 쳐다만 보고 있었어 날뛰라고 날뛰라고.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비참해서 나는 나를 내버렸어. 마지막 발악이라면 그 미친 말은 소리 없는 아우성일 뿐이라고 새기고 새기는 일이었는데. 도무지 마음은 마음처럼 되는 것과는 다른 행성의 이야기였어. 이제 달라지는 네 모습에 내 모습은 조금 낯설 것도 같아. 차라리 행복한 미소만 마음에 담을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