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일주일 안에 친해지는 현대미술 (목요일)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방문하면 대부분 ‘요즘 미술’을 전시한다. 작품 대부분이 현대미술 혹은 동시대미술에 속하는 것인데, 요즘 미술은 대체로 난해한 작품이 많다보니 점점 작품 감상에 대한 장벽이 높아지는 것 같다.
현대미술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미술이 맨눈의 시각체계와 흡사한 대상을 보여주었다. 배경지식 없이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미술이 등장한 이후에는 추상미술, 개념미술 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며 설명 없이 단번에 작품을 파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이 책에서는 현대미술의 시작점을 ‘인상주의’에서부터 추적하고 있지만, 오늘은 이 기점에서 조금 더 최근으로 시간을 옮겨 현대미술 중에서도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넘어가는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모더니즘의 ‘순수한 형식’이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치며 어떻게 흔들리는지,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질문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몇 가지 장면으로 알아보자.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단 한 번의 설명으로는 전부 파악하기는 어려운 만큼, 여러 작가를 통해 입체적으로 이해해볼 수 있다. 미국 모더니즘 미술의 끝단에 위치한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 1936-2024)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사실 ’모더니즘 미술‘이라는 용어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영어로 모던(Modern)은 한국어로 근대 혹은 현대로 번역되는데, 우리가 근대와 현대 시기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상당히 다른 만큼, 용어 자체가 혼란스럽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은 영어 표기가 현대(Modern)와 동시대(Contemporary) 모두를 지칭하고 있어서 딱 떨어지는 시기 구분은 아니다.
그래서 우선은 서양과 동양에서 지칭하는 모더니즘은 구분해서 쓸 필요가 있다. ‘한국’을 특정해서 표기하지 않는 이상 일반적으로 서양, 그 중에서도 미국의 모더니즘 미술을 지칭한다고 보면 된다.
앞서 미국의 모더니즘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을 소개하였다. 폴록은 ‘추상표현주의’라고 하는 사조를 이끈 작가인데, 추상표현주의는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까지 미국의 미술계에서 주목받은 미술의 한 동향으로, 미국 회화사상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었던 회화의 한 양식을 일컫는다.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은 외부 세계를 묘사하는 대신에 개인의 추상적인 주관과 감수성을 독창적으로 표현했다. 화가의 움직임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붓의 격렬한 움직임과 거대한 스케일의 캔버스가 특징이다. 독창성, 자율성, 개인의 표현을 중시하던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은 예술가가 낭만적이고 소외된 천재라는 인식을 만들어냈다.
1950년대에 추상표현주의가 지배적인 미술 양식으로 자리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이를 지지하였던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와 헤럴드 로젠버그 (Harold Rosenberg) 같은 비평가들의 이론들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1950년대 말에 이르면 추상표현주의는 국제적으로도 미국을 대표하는 미술로 소개되며 각광받았더. 그러나 몇몇 영향력 있는 미술관 관계자들과 수집가들은 새로운 미술을 모색하고 있었다.
프랭크 스텔라도 처음에는 추상표현주의를 연구하는 것에서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스텔라는 1950년 앤도버에 위치한 사립명문학교인 필립스 아카데미에 입학해 처음으로 미술교육을 접했다. 당시 스텔라는 미술을 좋아하기는 했으나 단지 취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 화가를 꿈꾸지는 않았었다고 한다. 4년 후 스텔라는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해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미술사 수업을 청강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뉴욕의 미술관을 방문하고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하면서 추상표현주의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스텔라는 1958년 재스퍼 존스(Jasper Johns)의 개인전에서 <깃발>과 <과녁> 등을 접하고 영감을 받게 된다. 반복되는 줄무늬로 이루어져 있으며, 배경과 이미지 간 차이가 없는 실물 같은 그림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모더니즘 미술의 대표적인 비평가인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재스퍼 존스의 이 그림을 타락했다고 비난한 만큼, 이에 영향을 받은 스텔라 또한 이미 모더니즘 미술이 아닌 새로운 미술에 대한 잠재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겠다.
스텔라는 존스의 재스퍼 존스의 작품들이 현대미술이 가지고 있는 풀리지 않는 딜레마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은 추상표현주의의 형식적 특징을 일부 받아들이면서도 새로운 전환을 꾀하는 데에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잭슨 폴록의 그림에서처럼 추상표현주의는 ‘평면성’을 추구하는데, 존스의 이 작품은 그 어떤 추상표현주의 작품보다도 평면적인 표면과 전면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다만, 그림들이 지닌 양식적, 기법적인 특징에서 미술가의 감정, 창작의 과정, 자아의 표현을 찾을 수는 없었다. 양식적으로는 주변의 진부한 사물에서 모티프를 가져왔기 때문에 개성 있는 순수 창작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기법적으로는 엔코스틱(encasutic) 기법으로 물감을 짧은 붓질로 여러 번 천천히 덧칠하였기에 ‘액션(action)’을 나타내는 빠르고 역동적인 필법과는 구별되었다. 존스의 작품은 추상표현주의의 규범이 지배하던 뉴욕 미술계에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신호탄이 되었다.
스텔라는 1959년 당시 23살의 나이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기획한 《16인의 미국인 전시》에 초대돼 4점의 흑색 회화를 선보이면서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이 전시에는 제스퍼 존스, 로버트 라우셴버그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1958~1960년에 제작된 스텔라의 흑색 회화는 2.5인치 폭의 페인트 붓을 사용하여 그려진 것이다. 흑색 에나멜 물감을 사용했고, 그려진 줄무늬와 거의 같은 두께감의 캔버스 틀이 적용됐다. 특히 반복되는 줄무늬들은 검정 바탕에 흰 줄무늬를 칠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림을 찍은 사진에서 이런 효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그래서 당시 화단에서는 이 작품을 일컬어 “흰색의 얇은 줄무늬(White pin-stripe)”라 불리기도 했다.
스텔라의 흑색 회화는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가 확립된 양식으로 여겨진 1950년대 말 등장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과감한 시도로 여겨졌다. 흩뿌리기 기법으로 제작된 폴록의 작품을 스텔라의 그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스텔라의 작품이 처음 전시되었을 때 혹평이 나온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상당히 재미있지만 그림은 아니다.”
- 로버트 마더웰(Robert Motherwell)
그럼에도 점차 스텔라의 작품은 인정을 받기 시작하는데, 미국의 큐레이터 윌리엄 루빈(William Rubin)은 “미술관에서 방대한 스텔라의 흑색회화들을 바라볼 때, 나는 이 그림들의 오싹하고 신비로운 존재감에 매혹되었다”라고 했고, 미술비평가 루시 리파드(Lucy Lippard)는 “가장 높은 의미에서 예술에 대한 예술”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스텔라의 흑색 회화는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뉜다. 1959년을 기점으로 한 경향은 주로 그림 틀과 평행하는 ‘직선’ 패턴을 이루고 있고(15점), 또 다른 경향은 사선의 줄무늬로 구성된 ‘다이아몬드’ 패턴(8점)을 보인다.
먼저 캔버스와 평행하는 직선 패턴을 이루고 있는 그림 중 하나인 <모로 성>은 최초의 흑백 회화로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줄무늬 패턴이 그림 배경을 완전히 덮지 않는 유일한 그림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양 축으로 대칭되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왜곡된 지그재그 구성의 복잡한 형태를 띤다. 그림 양측에는 안쪽에 있는 가는 띠의 4배가량 되는 굵은 수직 띠가 있으며, 이것은 좌우 양측의 패턴을 마무리짓고 있다. 마치 ‘미로’처럼 보이는 이 패턴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전체 패턴을 3차원으로 보이게 한다.
<모로 성>에 나타나는 선들은 자로 잰 것처럼 반듯하지 않으며, 그림의 상하 2개의 모서리로만 뻗어나간다. 스텔라는 보통 줄무늬를 그릴 때 우선 밑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에 연필로 줄무늬를 표시한 다음 그 사이로 페인트 붓을 통해 줄무늬를 그려나갔으며, 덧칠을 하지 않았다. 또한 줄무늬는 2.5인치 폭 붓을 사용했기데 거의 규격화되어 있다.
그림에선 잘 보이지 않지만, 이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은 빨간색 바탕칠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캔버스에 빨간색 띠로 그렸다가 나중에 흑색 띠로 수정해서 다시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텔라는 이것에 대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당시 자신은 빨간색과 흑색의 결합에 관심이 있었으며, 이 그림을 본래는 흑색과 빨간색 띠가 교차하는 모습으로 구상했을 것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스텔라의 ‘다이아몬드’ 패턴 회화도 계속해서 살펴보자. ‘직선’ 패턴에서도 이미 다이아몬드 형태가 나타나고 있지만, <턱시도 공원> 같은 작품을 보면 보다 직접적으로 중앙의 마름모꼴이 두드러지는 모습이 나타난다. 두 마름모꼴이 수직으로 늘어서 있는 이 작품은 대각선 축을 중심으로 하여 대칭을 이루는 형태이다. 줄무늬들은 사각 그림틀에 평행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사선 축에 평행을 이루어 다이아몬드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평행하는 줄무늬의 반복은 그림틀을 넘어 보다 더 큰 다이아몬드 형태를 연상시키고 있다.
스텔라는 흑색 회화에서 ’평면성‘을 지향하기는 했지만, 의도와 상관 없이 그의 작품에서는 ‘사물성’이 나타나게 된다. 사물성은 모더니즘 미술이 가장 지양하려던 특성이다.
스텔라의 회화에 나타난 이러한 사물성은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작가인 도널드 저드는 2차원 회화의 한계는 3차원의 실제 공간에서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저드는 스텔라의 작품에 주목한 것이다. 스텔라의 작업은 캔버스의 형태를 그림 안에 줄무늬로 반복함으로써 일루전을 거의 혹은 완전히 제거하였고, 두꺼운 지지대의 사용과 이로 인해 발생되는 그림자는 회화를 하나의 형태를 가진 ‘3차원적 사물’로 보게 한다는 것이다.
스텔라의 흑색 회화가 의도치 않게 사물성을 갖게 된 이유는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스텔라는 페인트 통에서 바로 꺼낸 흑색 에나맬과 잘 팔리지 않는 재고 물감을 구입해 그림을 그렸는데, 이러한 물감들은 캔버스에 강하게 스며들면서 에나멜 특유의 자연스러운 반짝임을 얻게 된다. 금속성의 도료는 더욱 물질적인 표면을 만들어내며, 이러한 특성은 사물성을 부각시키는 효과로 이어졌다.
두 번째는 안쪽으로 향해가는 줄무늬의 특징이다. 흑색 회화는 오로지 반복되는 줄무늬만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회화 표면을 평면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밑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에 연필로 줄무늬를 표시하고, 그 사이로 2.5인치의 집 페인트 붓을 이용해 거의 규격화된 줄무늬를 만들어냈는데, 그 줄무늬는 중앙에서 바깥쪽으로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자리부터 안쪽으로 향해 들어오는 특징을 지닌다. 이러한 방식은 줄무늬의 ’그려진 형태‘와 ’지지체의 실제의 형태‘를 일치시킴으로써 하나의 사물로서의 작품의 성격을 보다 돋보이게 하는 요소로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깊은 캔버스 틀의 효과이다. 스텔라는 표면을 좀 더 회화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캔버스의 틀에 적당한 두께를 더함으로써 표면을 더욱 강조한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깊은 캔버스 틀은 아이러니하게도 스텔라의 의도와는 다르게 벽면에 드리운 그림자가 오히려 그림을 하나의 사물로 보이게 하는 효과를 가져왔고, 이것은 캔버스 자체의 사물성까지도 고려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스텔라의 작품 대부분은 통상의 예보다 더 돌출되어 있기 때문에 두께가 있어 보인다. 이 돌출과 공간효과의 부재, 주변부와 줄무늬들 간의 긴밀한 관계는 이 그림들을 마치 사물처럼 보이게 한다.”
- 도널드 저드
특히 1960년대부터 사용한 ‘쉐이프드 캔버스‘는 이러한 사물성을 더욱 극대화하게 된다. 쉐이프드 캔버스는 줄무늬 패턴에 방해가 되는 귀퉁이나 모서리를 제거한 것으로, 캔버스 표면 위에 놓인 패턴과 캔버스 형태 자체가 시각적으로 동등한 중요성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캔버스는 3차원의 물체로서 특히 모서리 부분에서 사물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스텔라는 캔버스 안의 줄무늬 패턴의 모양과 캔버스의 형태를 정확히 일치시켜 캔버스에서 방해가 되는 귀퉁이나 모서리를 제거함으로써 캔버스 표면 위에 놓인 줄무늬 패턴과 캔버스 형태 자체가 시각적으로 동등한 중요성을 갖게 했다. 이는 회화의 전제조건인 캔버스를 회화의 중심 형태로 부각시킨 행위로써 두꺼운 캔버스 틀과 결합되어 더욱 사물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