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 내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

'정동'으로 읽는 동시대미술

by 와이아트



일주일 안에 친해지는 현대미술 (토요일)




요즘 미술관에 가면 전시 안내문에서 ‘정동(情動, Affect)’이라는 단어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정동’은 느낌, 경험, 표현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으로, 감정과도 비슷하지만 더 원초적이고 신체적인 층위에 가까운 말이다. 동시대미술에서는 이 개념을 통해 작품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 토요일의 주제로 삼아보려 한다.


2f9c2dcd17411708b3e95ddac56e061d.jpeg Liu Wei, Devourment, 2019. (출처: 리만 머핀)


동시대미술에서 ‘정동’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한 해석을 넘어, 예술이 감각과 감정, 사회적 경험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읽어내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미술 감상은 ‘무엇을 보았는가’라는 시각 중심의 해석에 치중해왔다면, 정동은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분위기, 감각적 진동, 신체적 반응에 주목한다. 이는 오늘날 다원화된 예술 환경 속에서 회화, 설치, 영상, 퍼포먼스가 모두 관객의 ‘느낌’을 중심으로 경험되도록 만드는 중요한 개념적 틀이다.


다시 말해, 정동은 작품이 지닌 의미를 넘어 그 의미가 우리 몸과 감각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이해하게 하며, 관객과 예술을 연결하는 새로운 언어가 되어주기 때문에 동시대미술을 읽는 데 필수적인 키워드라 할 수 있다.



정동이란 무엇인가?


정동이란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즉각적인 ‘감각적 반응’을 뜻한다. 이를테면 갑작스러운 음악 소리에 몸이 움찔한다거나, 강렬한 색채의 그림 앞에서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나 몰입을 경험하는 순간이 정동의 작용이다.


흔히 감정(emotion)과 혼동되지만, 감정이 ‘슬픔, 기쁨’처럼 언어로 규정되는 상태라면 정동은 말로 다 표현되기 전의 원초적이고 생생한 에너지에 가깝다. 그래서 동시대미술에서 정동은 작품이 주는 메시지보다 먼저, 관객이 신체와 감각으로 체험하는 즉각적인 울림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개념으로 쓰인다.


5e5e5df7edc7983596d29574b879439b.jpeg Liu Wei, The Wasteland (Sculpture I), 2019. (출처: 리만 머핀)


‘정동’과 인접한 단어로 ‘감정’이나 ‘정서’를 들 수 있다. 감정이나 정서가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정인 개념이라면, 이와 비교해 ‘정동’은 일종의 에너지 차원에서 움직이는 힘이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정동(情動)의 한자가 ‘움직인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처럼, 정동은 문자 그대로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움직임이다. 인지적으로 감각되지 않는, 즉 지각된 ‘감정’만으로는 포섭되지 않는 순간들을 정동이라 볼 수 있다. 정동은 무언가에 포섭되거나 머무르지 않고 변이의 궤적 그 자체를 보여준다.


정동은 영어로 ‘Affect’이다. 이 단어는 잘 알다시피 ‘영향을 주다’로 번역할 수 있다. 정동이 작동한다는 것은 타자의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동시에 타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정동은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을 뜻한다. 신체가 대상에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아들이는 상호관계적 변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474bd5897aee3082b817ea21d7f444b9.jpeg Liu Wei, Purple Air No. 4, 2011. (출처: 리만 머핀)


정동은 ‘보이지 않는 실재’이기도 하다. 정동은 느낌과 생각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실체적으로 감각될 수는 없으나, 실제로 존재하는 힘이다. 물리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존재의 내부에서 작동하기에 ‘내재적’이며, ‘가상적’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정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 ‘정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정동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정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좀더 유의미할 수 있다.


정동은 감각을 흔드는 것에 머무르지 않으며, 우리를 다른 상태로 이동시키는 힘을 지닌다. 예를 들어 작품 앞에서 느끼는 미묘한 긴장, 설명하기 어려운 설렘, 혹은 불편함은 관객이 의식적으로 해석하기 전에 이미 몸과 감각에 스며들어 변화를 일으킨다.


정동은 이렇게 새로운 사고와 행동을 촉발하는 잠재력을 지니며, 작품과 관객 사이에 유통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장을 형성한다. 다시 말해, 정동은 예술을 통해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026NEW.-Quintet-Astonished-new-ur.jpg.png 빌 비올라, <놀라움의 5중주>, 2000.


이제 ‘정동’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낼 수 있는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빌 비올라의 비디오 아트 작품인 <놀라움의 5중주>는 정동의 변화를 겪는 다섯 인물의 상반신이 등장한다. 비올라의 작품을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슬로우 모션(Slow motion)’ 기법이 연상된다. 이 작품은 실제 1분가량 촬영되었지만, 작품은 16분에 이른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인물들의 미묘한 얼굴 표정의 변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정동을 경험하게 만든다. 비올라에게 오감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에 통합되는 것이었는데, 경험하는 무엇인가를 제작하기를 원한 비올라의 작업이 돋보인다. 작가가 추구한 것은 단순한 감정 묘사가 아니라, 감각과 정신이 뒤섞이며 생성되는 정동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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