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취향의 영향을 크게 받는 분야다. 예술계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끝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동양화 역시 마찬가지다. 익숙하지 않은 매체와 문법 때문에 거리감이 먼저 생기기도 하고, 반대로 그 낯섦 때문에 더 깊이 빠져들기도 한다.오늘은 현대 동양화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남천 송수남(南天 宋秀南, 1938~2013)의 작품을 통해 취향을 발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남천 송수남은 평생에 걸쳐 ‘한국성’에 천착했던 화가이다. ‘수묵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그는 ‘한국성’을 ‘현대’에 맞게 표현하는 미술가였다. ‘수묵화 운동’의 선구자이자 한국화의 현대화 가능성을 제기했던 작가이다.
* 잠깐! 동양화 vs. 한국화
: ‘동양화’는 한국화, 중국화, 일본화 등 동북아시아의 문화권에서 나온 그림들을 일컫는 말이다. ‘서양화’와 대비적인 용어로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동양화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이 명칭이 일제의 용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1980년대 들어 ‘한국화’라는 명칭이 통용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당시에도 ‘동양화’ 대신 ‘한국화’ 용어로 대체하는 데 대한 찬반 논의가 분분했으며, 최병식은 1986년 ‘한국화’라는 명칭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대신 ‘채묵화’ 용어 사용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화’ 명칭이 완전히 정착되지 못한 채 여전히 ‘동양화’와 혼용해 쓰는 오늘날의 상황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성’은 1960~1970년대 문화 분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개념이다. 한국의 정체성을 찾아 전통을 계승하고 한민족의 독자적인 특징을 발견해야 한다는 시대적 이념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동양화단에서는 당연히 더욱 ‘한국성’이 논의되었다.
동양화단에서 ‘한국성’은 일본색과 대척점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식민 잔재를 청산하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했던 시대적 과제 속에서 민족적 정체성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송수남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에 관심을 가졌고, 1956년 홍익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한다. 당시에는 ‘서양화’를 전공했는데, 군 제대 후 복학할 무렵 ‘동양화’로 전공을 바꿔 편입한다. 그는 이 즈음 ‘내 고향 산천과 정서를 표현하는 데 서양화가 과연 적합한가’라는 회의를 품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어린 시절에 할아버지 사랑방에서 본 수묵화 치는 분들과 그윽한 먹 향기에 대한 기억이 한몫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남천(南天)’이라는 그의 호 또한 고향의 하늘이라는 의미에서 온 것이다.
그는 복학한 해인 1962년 제1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동양화부에 입선하면서 화단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알린다. 그의 1960년대 초반 작품을 보면 수묵의 과감한 발묵 효과를 통해 얻은 우연한 형태들로 화면 공간 전체가 구성되는 방식이다. 서양화의 추상표현주의 같은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 잠깐! 발묵(潑墨)이란?
: 동양화에서 발묵은 먹을 뿌리거나 번지게 하여 그림을 그리는 기법이다. 붓이나 다른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먹의 농담과 번짐을 이용하여 형태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수묵화의 대표적인 용묵법 중 하나이다.
1970년대 들어 송수남의 작업은 전통적인 산수화의 세계를 현대적으로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단지 선인(先人)들의 기법과 정신을 익히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자체적으로 응용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변화를 취해보는 식이었다.
기존에 화면 전체를 지배했던 수묵의 번짐과 얼룩은 대폭 줄어들고, 그 사이로 섬세한 준법(皴法)과 구도로 세를 이룬 모습이다. <산수> 작품을 보면, 산봉우리와 줄기들이 섬세하게 그려진 관념산수화의 모습이 드러난다.
* 잠깐! 준법(皴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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