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이아트 Dec 16. 2022

데이터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데이터 사회에서 우리의 행동은 디지털로 기록되고, 이 모든 기록은 계산의 대상이 된다. 계산이 가능해짐으로써 미래 행동 또한 예측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자동화가 가능해지며, 이는 전 지구적 통제로 이어진다.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러(Bernard Stiegler)는 이를 두고 ‘알고리즘 통치성’이라 불렀다. 데이터가 개인의 생각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함으로써 인간의 비판 능력과 분별력이 알고리즘에 위임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데이터는 우리를 균질하게 만들고 자동화를 촉진시킨다. 


매체 이론가이자 시각 예술가인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1966-)은 이러한 ‘알고리즘 통치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데이터 사회를 비판적으로 해석한다. 데이터화된 이미지들이 어떻게 생성되고 어디로 순환하는지에 주목해온 슈타이얼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히토 슈타이얼 – 데이터의 바다》에서도 디지털 기술을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본 작품들을 소개한다. 


슈타이얼이 보기에 인터넷상의 이미지들은 본래의 크기, 포맷, 명도, 채도 등을 유지하면서 고화질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복제와 이동을 거치며 데이터가 손실되고 점차 낮은 해상도를 지닌 이미지로 순환한다. 그는 이러한 디지털 이미지를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라고 부르며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공유되는 과정을 포착한다.


빈곤한 이미지는 동시대 스크린의 추방된 존재이며 시청각적 제작의 잔해이자 디지털 경제의 해변으로 밀려온 쓰레기다.


주목할 점은 슈타이얼이 ‘빈곤한 이미지’를 예술의 비판적 역할을 재생시키기 위한 도구이자 가능성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디지털 환경에서의 빈곤한 이미지를 온라인 계급 사회 내의 ‘룸펜 프롤레타리아’로 설명한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가 처음 사용한 ‘룸펜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용직 노동자를 의미하는데, 슈타이얼은 ‘해상도’를 가치의 척도로 두는 온라인 세계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밀려난 ‘빈곤한 이미지’를 자본집약적인 이미지들과 대비시킨다. 


슈타이얼이 보기에 광고나 할리우드 영화 같은 거대 자본의 이미지 생산 체계에서 벗어난 ‘빈곤한 이미지’는 디지털 노동자들의 연대를 형성하며 서로를 연결하고 정치적으로 기능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즉, 그는 다수가 볼 수 있고 다수가 만들 수 있는 이미지인 ‘빈곤한 이미지’를 대안적이고 혁명적인 장치로 파악한 것이다. 


슈타이얼의 대표작이라고도 볼 수 있는 <태양의 공장(The Factory of the Sun)>은 빈곤한 이미지의 생성과 순환을 살피면서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를 둘러싼 이해관계를 다각도로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다. <태양의 공장>은 모션 캡처 스튜디오 노동자들의 강제 노역이 인공 태양으로 변화한다는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 모션 캡처는 게임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을 제작할 때 사용되는 기법 중 하나로, 사람이 센서를 장착하고 움직임을 표현하면 그 움직임을 데이터로 변환해 영상으로 재현하는 기술이다. 현실의 움직임을 데이터화한다는 점 자체로 이미지의 생성과 순환 과정을 내포한다. 


히토 슈타이얼, <태양의 공장>, 2015. (출처: MOCA(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태양의 공장>은 현실 세계에서의 육체노동이 데이터 노동으로 치환되는 데이터 사회의 세계상을 담고 있다. 영상에서는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 이것은 현실이다”라는 대사가 반복되는데, 이러한 대사는 데이터 사회에서의 정치, 경제, 노동, 환경이 이제 더 이상 가상이 아닌 현실로서 존재하게 되었음을 은유한다. 이 작품은 비디오 게임이라는 가상현실을 형식적으로 차용하면서도 뉴스, 비디오, 메시지, 텍스트 등의 현실 이미지를 삽입함으로써 우리에게 무엇이 실재인지 묻는다. 


슈타이얼은 자신의 또 다른 작품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 .MOV 파일>을 통해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해상도’와 ‘픽셀’ 같은 이미지의 구성 요소들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데이터 사회의 작동 방식에 대해 질문한다. 이 작품의 제목은 1969년부터 1974년까지 BBC에서 방영된 코미디 시리즈 <몬티 파이튼 비행 서커스(Monty Python’s Flying Circus)>의 에피소드에서 따온 것이다. 이 영상은 순서에 따라 무언가를 알려주는 튜토리얼 형식으로 구성되고, ‘보이지 않기 위한 방법(how not to be seen)’을 교육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히토 슈타이얼, <안 보여주기: 빌어먹게 유익하고 교육적인 .MOV 파일>, 2013. (출처: MoMA)


<안 보여주기>에서 설명하는 보이지 않기 위한 전략은 첫째, 잘 보이는 장면에서 숨기, 둘째, 픽셀보다 더 작은 방식으로 줄이기, 셋째, 특정 커뮤니티에 살기, 넷째, 무등록자 되기 등이 있다. 슈타이얼은 이를 통해 정치적 알고리즘에 의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구분되는 상황을 비판하고, 디지털 위계질서에서 눈에 띄지 않는 ‘빈곤한 이미지’를 옹호한다. 


데이터 사회에서는 비단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람, 자본, 사물, 정보 모두 끊임없이 이동한다. 슈타이얼은 모든 것이 떠돌아다니는 동시대의 이러한 현상을 ‘순환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그가 2014년에 제작한 <유동성 주식회사(Liquidity Inc.)>는 ‘유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순환주의가 데이터 사회에 깊숙이 침투되어 있는 모습을 그린다. 이 작품은 금융, 자본, 데이터, 사람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현상을 ‘물’의 이미지로 표현한다. 작품도 파란색의 빛을 띠는 공간에 설치되어 있고, 관람자는 물 위에서처럼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영상을 감상하도록 되어 있다.  


히토 슈타이얼, <유동성 주식회사>, 2014. (출처: MoMA)


<유동성 주식회사>에는 금융투자 자문가로 일하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격투기 선수 및 격투기 해설가로 일하게 된 제이콥 우드(Jacob Wood)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공격과 방어가 이루어지는 격투기 시합이 금융시장의 유동성과 같다고 설명한다. 작품의 전반을 관통하는 ‘물’의 이미지는 현금, 유동성, 금리조정, 상품의 순환, 공장의 해외 설비, 인터넷 기반 정보 이동 등을 은유한다. 작품에는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絵)인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거대한 파도(Great Wave)>가 배경으로 등장하고, 이내 곧 파도에 의해 스크린 전체가 침수당할 지경에 이른다. 금융시장에 대한 비판은 슈타이얼이 자주 취하는 주제 중 하나인데, 기업이 데이터 클라우드를 사유화한 동시대 우리 삶의 단면을 포착한다. 


정치적이며 사회논평적인 작업을 주로 해온 슈타이얼은 전쟁과 군국주의를 동시대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는 “미술관은 전쟁터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미술관이 전쟁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밝혀낸다. 그는 <면세 미술(Duty Free Art)>(2015)이나 <경호원들(Guards)>(2012)과 같은 작품을 통해 미술관을 둘러싼 제도와 자본의 분배, 권력의 시선을 이야기하고, 성전으로서의 미술관이 아닌 사회적 장소로서 미술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발언한다. 


영화와 철학을 전공한 슈타이얼은 설치 작품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도 현실을 기록하고 재해석한다. 그는 동시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대한 독자적인 시선을 가지고 오늘날 예술이 제작되고 소비되는 원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여럿 제작했다. 


히토 슈타이얼, <11월>, 2004. (출처: MoMA)


그의 다큐멘터리 중 <11월>(2004)은 10대 시절의 친구인 안드레아 볼프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볼프의 이미지는 영화, 방송, 인쇄물, 인터넷을 통해 저항의 상징으로 재생산된다. 흐릿하게 처리된 저항의 이미지들은 세계 각국을 순회하는 ‘이동하는 이미지’가 되어 사라져간 경험과 기억, 목소리를 되새긴다. 


실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하고 다큐멘터리에 관한 글을 여럿 쓰기도 했던 슈타이얼은 ‘다큐멘터리가 진실을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한다. 그는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에 의문을 표하면서 다큐멘터리 이미지가 보여주는 내용이 완벽한 진실일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졌다고 진단한다. 그는 동시대 다큐멘터리가 겪고 있는 위기를 ‘다큐멘터리 불확실성(Documentary Uncertainty)’이라고 정의내리며 불확실하고 흐릿한 다큐멘터리 이미지가 힘을 지니게 되는 현상을 아울러 표현한다. 


이러한 의심은 부끄러워하면서 감춰야 할 결함이 아니라 동시대 다큐멘터리 이미지의 본질이다.


현실세계를 묘사하는 다큐멘터리 장르가 디지털 환경에 접어들면서 다큐멘터리 이미지가 가지는 진실성에 대한 의심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의심이 대상이 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며, 의심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다큐멘터리가 맞닥뜨리는 현실은 ‘포스트-진실(post-truth)’에 가까워졌다는 것이 슈타이얼의 분석이다.


‘포스트-진실’은 쉽게 말해, “정서적이고 개인적인 믿음에의 호소가 객관적 사실보다 여론을 형성하는데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의미한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던 ‘포스트-진실’은 하나의 진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불확실한 진실이 그 자리를 메우는 작금의 현상을 나타낸다. 


‘포스트-진실’이라는 용어가 보편화되기 이전부터 다큐멘터리 이미지에 대한 진실성을 탐구했던 슈타이얼은 전 지구적인 차원으로 확장된 데이터 사회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진실이 권력의 유지와 확산에 기여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를 통해 현실을 기록하고 진실을 구성하는 다큐멘터리 이미지를 권력의 문제로 끄집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큐멘터리 이미지를 통해 데이터 사회와 전 지구적 감시 주권 정치의 흐름들을 가시화함으로써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 폭넓은 사유와 성찰의 기회를 마련한다. 


데이터 사회에서 이미지는 즉각적으로 생산되고 전달되며 순환하는 흐름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이분법에 따라 구성되는 데이터화된 디지털 이미지는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로 기능한다. 슈타이얼은 이미지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속에서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지, 비물질적인 층위로 확장된 디지털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우리는 예술의 언어로써 마주하게 된 슈타이얼의 작품을 통해 현재 우리가 처한 사회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되살피는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




본 글은 '인터랩(INTERLAB)'에 발행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계를 통해 인간의 욕망에 물음을 던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