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일기 : 臺灣 故事 5

by 제이킴

同學


대만에서 생활한 지 2달이 되어가는데 학과 동기와 1년 선배가 대만으로 중국어 연수를 하러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타이베이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수소문하여 연결이 되었던 것이다.

중문과에서는 같은 학년이거나 같은 학원 등 같이 공부한 사람들을 同學이라고 부르는데 지금부터 이 두 사람을 동학이라고 부른다.

동학들이 오는 시간에 맞춰서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는데 내가 2달 전 도착할 때와 흡사한 분위기를 동학들한테서 보았다. 내가 당시 경험했던 타국에 대한 긴장감과 생각보다 후덥지근한 더위의 곤혹감이 그들에게서 느껴졌다. 사실 뭐든지 하루를 먼저 경험하면 하루 분의 내공이 쌓이는 법이다.

같이 저녁을 먹고 미리 봐 둔 숙소에 도착하자 동학들의 표정에 만족감과 안도감이 드리워졌다.

그래서 거처가 중요한 것이다. 동학들 말로는 대만은 더운 곳이라서 내가 없었더라면 텐트를 준비해 와서 지내려고 했다고 한다. 내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대만에 올 수 있었듯이 동학들에게 도움이 이어지고 동학들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을 것인데 도움과 배려는 이렇게 선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자질과 좋은 성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이들의 숙소는 사전 준비한 대로 2명이 지내기에 적합한 구조였고 위치도 사범대학교 부근에 있어서 학원과 알바 이동에 편리한 구도였다.

아울러 학교 부근이어서 학생용 미니 뷔페에서 다양한 메뉴를 골라 먹는 재미가 있었고 쌀도 이모작으로 풍족한 지역이라서 여러모로 식대가 한국보다 저렴한 것도 장점이었다. 무엇보다 대만 대표 맥주인 타이완 맥주 값이 한국 맥주의 60~70% 수준이었다. 그러니 한국에서 배불리 먹지 못하던 맥주를 타이베이에서 허리띠를 풀어놓고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 4명이 만나면 캔 맥주 기준으로 두당 10캔씩은 먹어야 직성이 풀리던 시대였고 무엇보다 젊은 시절이었으니 고기가 물 만난 듯 즐거운 음주가 가능했다. 캔으로 마시다 보면 빈캔이 산을 이룬다.

맥주 안주는 그리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당시 웬만한 동학들은 식당 알바를 하면서 식당 부재료나 주재료의 공급의 가능했기에 부족한 단백질 보충도 할 겸 혹시 있을지 모르는 향수를 달랜다고 핑계를 잡아서 주말이면 맥주 회동을 하곤 했다.

나중에 교환학생으로 상륙한 고교 동창이 합류를 하면서 우리의 맥주 인생은 꽃을 피우게 된다.

당시 타이베이에는 2개월 체류 가능한 학생 비자가 있었는데 비자발급이 유효한 학원을 등록하면 2개월씩 2회가 연장되어 최장 6개월을 체류할 수 있었다.

만일 6개월 이상 체류하려면 출국 후 재입국해야 다시 최장 6개월을 추가로 연장할 수 있었다.

중문과 학생의 경우 대만에서 중국어 공부도 가능하고 이에 따른 알바도 가능해서 특히 남학생들의 경우 오전에는 중국어 학원에 다니고 오후에는 식당 알바가 대세이던 시기이기도 하다.

동학들은 2명이 함께 생활을 해서 그런지 적응도 빨랐고 나보다 씩씩했다.

아마도 타이베이에 있는 동안은 서로 의지하고 평생 기억될 추억들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알싸한 맛의 타이완 맥주를 시원한 세븐일레븐에서 잔뜩 사다가 길었던 타이베이의 여름 날을 그렇게 식히곤 했었다.


교환학생


당시 우리 학과에는 1년에 3명씩 대만 자매결연 대학교와 진행하는 중국어 연수 프로그램이 있었다.

학과에서 중국어와 기타 조건에 부합되면 선발되어 1년간 대만 중흥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중국어 학습과 현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내가 대만에 도착했을 때는 3기 교환학생단의 후반기와 겹치던 시기였다.

3기 중 동년배 동학은 학년상 후배지만 나이가 같아서 친구 사이로 지냈는데 하루는 내가 일하던 스테키 전문점에 놀러 왔길래 필리핀 주방장 아저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기본 메뉴 양의 곱빼기를 철판에 담아낸 적이 있었는데 결국 혈기와 식욕도 왕성했을 동학이 다 먹지 못하고 남기고 갔었다.

또 하루는 그 동학과 정치대에서 유학 중이던 그의 형을 만나 함께 대만의 시국과 변화하는 민주화 흐름에 대한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기억도 새롭다.

당시 대만은 장개석 아들인 장경국이 친정하던 시절로 아버지 장개석의 후원으로 장씨 일가의 장기집권이 이어지던 시절이었고 장개석의 성향을 잘 아는 대만인들과 대륙에서 건너온 노병들은 현재에 만족하며 민주화에 대한 열망들을 대놓고 이야기를 못 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을 해보니 장기 집권이 가능했던 당시의 실력자들은 싫든 좋든 후계자 구도에 2세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싱가포르, 북한, 대만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이다. 장기 집권으로 생긴 민중의 불만을 잠재우려면 혈육보다 더 든든한 후원자는 없기 마련이다.

보통 기수 별 교환학생들을 구성할 때 동성으로만 편성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이유는 인문대 특성상 남/여학생의 비율이 반반 수준이니 성별 구성비가 반영된 사례로 매우 합리적인 처사로 판단된다.

그 해 9월이 되자 고교 절친 중 한 명이 포함된 4기가 도착했다.

나는 새로운 교환학생단에 고교 동창이 포함되어 있음을 사전에 연락을 받아 알고 있었고 반가움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해 하반기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추억들을 이 교환학생 동창과 타이중에 유학을 온 다른 동창과 함께 정점을 찍는다.

당시 타이중에 유학을 온 고교 동창은 대학교 선배와 함께 주거를 했었다.

이국만리 유학을 와서 공부를 한다고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을 때 마침 내가 그리고 더 마침 다른 동창이 합류하여 그의 주말이 그리 심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선배가 풀어주는 회포와 동창이 풀어주는 회포는 다르지 않겠는가?

그렇게 타이중에 자주 다니면서 이른바 南行은 시작되었고 훗날 다른 동학들과 대만 일주 자전거 여행을 떠나게 되는 계획의 출발점이 되어 준다.



同學


在台湾生活已经2个月了,接到了学科同学和1年前辈来台湾进行汉语研修的通知。 听到我在台北的消息后,我四处打听,联系上了。

中文系将同年级或同补习班等一起学习的人称为"同学",从现在开始将这两个人称为"同学"。

我按照同学们来的时间去机场接他们,在同学们身上看到了和我两个月前到达时的相似氛围。 我从他们身上感受到了我当时经历的对他国的紧张感和比想象中闷热的困惑。 事实上,无论是什么,只要先体验一天,就会积累一天的内功。

一起吃晚饭,到达事先看好的宿舍后,同学的表情充满了满足感和安心感。

因此,住处才是最重要的。 据同学们说,台湾是炎热的地方,如果没有我,我就想准备帐篷过日子。 就像我在某人的帮助下来到台湾一样,同学的帮助接连不断,同学的帮助也会给其他人带来帮助,但帮助和关怀具有能够形成良性循环的资质和良好的品格。

幸运的是,他们的宿舍按照事先准备好的结构适合两人居住,位置也在师范大学附近,便于学院和兼职。

同时,由于是学校附近,所以在学生用迷你自助餐中选择多种菜品吃很有意思,而且大米也是第二季丰饶的地区,因此从各方面来看,餐费比韩国便宜也是一大优点。 最重要的是,台湾代表性啤酒台湾啤酒的价格仅为韩国啤酒的60%至70%。 因此,在韩国吃不饱的啤酒,在台北可以解开腰带尽情享用。 现在的记忆是,如果4个人见面,以罐装啤酒为准,每两要喝10罐才能解馋,而且还是年轻的时候,所以可以像鱼得水一样愉快地饮酒。 用易拉罐喝的话,空罐会变成山。

啤酒下酒菜没有准备多少,当时一般的同学在餐厅打工时,因为可以提供餐厅辅料或主材料的供应,所以为了补充不足的蛋白质,以消除可能存在的乡愁为借口,每到周末就会举行啤酒会晤。

后来,作为交换生登陆的高中同学加入后,我们的啤酒人生开始绽放。

当时台北有可以滞留2个月的学生签证,如果登记签证有效的学院,每2个月延长2次,最长可以滞留6个月。

如果想滞留6个月以上,出国后必须再次入境,才能再次延长最长6个月。

中文系学生可以在台湾学习中文,也可以做相应的兼职,特别是男生,上午去中文补习班,下午去餐厅打工是大势所趋的时期。

同学们可能是因为2人一起生活,适应得很快,比我更有朝气。

也许在台北期间,会互相依靠,制造出终生难忘的回忆。

我经常在凉爽的7-Eleven购买至今还记得的辣味台湾啤酒,然后让漫长的台北夏日冷却下来。


交换生


当时,我们系每年有3名与台湾姊妹大学进行的汉语研修项目。

系中符合中文和其他条件者,被选中在台湾中兴大学宿舍生活一年,是学习中文和学习当地文化的好机会。

我到达台湾时正值第三期交换学生团的后半期。

第3期中同辈同学虽然是年级上的后辈,但是年龄相同,所以是朋友关系,有一天来我工作的牛排专卖店玩,得到菲律宾厨师的谅解后,把基本菜单量的双份装在铁板上,结果血气和食欲旺盛的同学还没吃完就走了。

另外,有一天,我见到了在东学和政治大学留学的他的哥哥,一起以"台湾时局和变化的民主化趋势"为主题进行了讨论,这让我记忆犹新。

当时台湾是蒋介石的儿子蒋经国亲政的时期,在父亲蒋介石的赞助下,蒋氏一家长期执政的时期,了解蒋介石倾向的台湾人和从大陆来的老兵们对现在感到满意,无法公开谈论对民主化的渴望。

现在回想起来,当时可以长期执政的实力者们,不管是否愿意,接班人结构中都会出现第二代,这要看新加坡、北韩、台湾的话,会有所理解。 要想平息因长期执政而产生的民众的不满,没有比亲人更坚实的后盾。

一般在组成各期交换学生时,似乎没有只编制为同性的情况,但原因是人文大学的特性上男/女学生的比率各占一半,因此可以判断为反映性别构成比的事例,是非常合理的处理方式。

到了当年9月,包括高中好友之一在内的第4期到达了。

我事先接到通知,得知新的交换学生团中包括高中同学,高兴地等待着。 该校交换生同学和来台留学的其他同学一起,将当年下半年华丽地装点回忆。

当时来台中留学的高中同学和大学前辈一起居住。

当李国满里来留学学习精神吃力时,刚好我还有更恰巧有其他同学加入,他的周末应该不是很无聊。 不管怎么说,学长发泄的怀抱和同学发泄的怀抱不就是不一样吗?

就这样,他经常去台中,开始了所谓的南行,成为日后与其他同学一起去台湾环岛自行车旅行的出发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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