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전담 어린이집. 솔직히 나는 이런 곳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어린이집은 그냥 다 똑같은 곳인 줄 알았다. 그냥 같은 나이의 아이들을 묶어서 '햇님반', '별님반' 등의 이름을 붙여주고 교육하는 곳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막상 내가 아이를 낳고 장애아이를 키우다보니 세상은 내가 알지 못했던 영역이 참 많다는 것을 하루하루 느낀다.
아이가 발달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대개 다섯살 무렵부터는 일반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버티기가 어려워진다. 그때부터는 사실상 보육보다는 교육에 초점을 맞추어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엄마들 또한 트렌드에 맞추어 조금 더 일찍, 보다 더 많은 것을 아이가 배우고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러한 물결에 내 아이가 탑승하기가 어렵다고 느낀다면, 엄마는 검색창에 '통합어린이집, '전담어린이집' 국공립 대기'등의 단어를 넣고 다른 방향의 길을 찾아간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마치 수동 업데이트가 필요한 구형 네비게이션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단이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린이집을 퇴소하게 되면서 아이가 갈 곳을 알아보던 중 '장애전담어린이집'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마침 내가 살던 지역에는 민간으로 운영되는 전담어린이집이 있었다. 집에서는 차로 약 20분 정도 되는 거리였다. 장애아이들만 모여서 생활하는 곳, 특수교사와 치료사 선생님들이 상주하고, 약 3대1의 비율로 아이들을 케어해주는 곳. 심지어 하루일과에 치료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고, 사설 센터에 비해 가격도 훨씬 저렴했다. 애도 봐주고 교육도 해주고, 심지어 여기서 치료도 받을수 있다고?빙고! 여기다. 나는 서둘러 나의 유레카를 남편에게 알렸다. "오빠! 비단이도 여기 보내자!빨리 봐봐!"
남편은 꼼꼼히 내가 보여주는 내용을 살폈다. 그리고는 다 좋은데...하며 조심스러운 우려를 비췄다. 안 그래도 발달이 늦은 아이를, 비슷한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에 보내면 혹시나 더 퇴행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였다. 또래 아이들에게는 '모델링'이 되어주는 서로의 존재가 몹시 중요하다는 것은 우리도 절실히 느끼는 부분이었기에 그 부분이 걱정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비단이에게는 지금,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고 아이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많은 선생님들의 울타리가 훨씬 더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함께 상담을 받았고, 원장님은 아이를 10분 정도 살펴보신 후 "비단이는 여기에 와야 하는 아이가 맞습니다."라고 깔끔한 결론을 내려주셨다. 정말 운 좋게도, 마침 결원이 한 자리 있어 비단이는 바로 입소할 수 있었다. 지역 내에 유일하게 하나 있는 전담어린이집에, 학기 중에 이렇게 바로 입소할 수 있는 것은 천운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런 것이 인연인가 싶었다.
아이가 등원하던 첫 날, 아이를 교실에 보내고 부원장님과 면담시간을 가졌다. 부원장님은 비단이의 성장 과정과 현재 상태, 지난 어린이집에서의 생활과 현재의 능력치 등에 대해 꼼꼼히 묻고 메모를 했다. 그리고 면담 마지막에 내 눈을 보며, 이런 말을 하셨다.
"어머니, 잘 아시듯 여기는 장애전담 어린이집입니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모여있고, 각각 다 다른 개성을 지닌 친구들이 생활하는 곳이에요. 이 아이들이 특별한 게 아니라, 소중한 아이로 자라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머니께서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오셨을지 잘 압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마음 단단히 먹으시고, 앞으로 아이를 위해서 뭘 해줄 수 있을지를 우리가 고민해야 해요."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동안 우리 비단이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였고, 친구들을 상처입히고 선생님의 말을 따르지 않는 문제아였다. 특별히 사고를 치고, 특출나게 부족한 아이. 그러나 정작 비단이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버텼을지,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잘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고민해주지 않았음을 나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부족해서 느린 아이에게 왜 이렇게밖에 못하냐고 매일같이 탓하고 호통을 쳤다. 그런 나의 행동을 나는 아이가 잘 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합리화하고 있었다. 정작 나의 아이는, 저렇게 작고 연약한 나의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엄마가 내는 화를 고스란히 받고 미움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는데,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기는 커녕 아이를 더 절망속으로 몰아세운 것은 아니었을까.
선생님의 말씀이 맞다. 비단이가 가야 할 길이 남들과 조금 다른 노선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그 안에서 비단이가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바닥에 있는 돌을 치울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돌을 걷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배에 힘을 꾹 주었다.
"선생님, 우리 비단이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아이가 아이 자체로 존중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이시라면, 정말 잘 오셨습니다. 함께 노력해봅시다. 비단이,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아이네요."
타조의 커다란 날개는 날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균형을 잡아 더 멀리 뛸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우리 비단이에게도 더 멀리, 더 힘차게 뛸 수 있는 힘이 분명히 숨어 있을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나는 오늘부터 아이의 손을 더 힘주어 잡아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