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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Sep 16. 2023

장애는 불가능이 아닌 불편함이다

  아이가 아프면서, 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싫었다. 특히, 어린이집의 엄마들과 마주치는 것이 불편하고 두려웠다. 그래서 비단이가 새 어린이집에 둥지를 틀었을 때도 으레 참석했어야 할 OT날도 일을 핑계로 불참했다.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처럼, '내 아이는 이러이러한 장애가 있고, 그렇다보니 이런 구석이 있답니다.' 라는 이야기를 빙 둘러앉아 나누는 것이, 아직은 편안하지가 않았다. 나에게 아이의 장애는 사람들과 함께 편히 나누기엔 너무 무거운 주제였다.

  하지만 사람이 매번 피할 수는 없었다. 어린이날이 다가왔고, 비단이의 어린이집에서는 '엄마와 함께하는 즐거운 마당놀이'라는 야심찬 기획을 준비했다. 마침 코로나가 주춤하여 그동안 묵혀왔던 어린이집 행사들이 가열차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어린이집 마당을 한 바퀴 돌며 물풍선을 터뜨리고 그림을 그리고, 간식도 먹고, 연도 날리고 부채도 만드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었다. 물풍선에 그림그리기? 맙소사. 나는 빠져나갈 구멍을 애타게 찾았지만, 내가 가지 않으면 우리 비단이는 그날 등원을 할 수 없었다. 엉뚱한 머리 굴리지 말라는 듯한 남편의 눈초리가 뒤통수에 꽂혔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침내 행사날이 밝았고, 혹시나 비가 와주지 않을까 잠시 꾀가 났지만 날씨는 기가 막히게 좋았다. 어린이집 대문에는 정성껏 만들어진 플랜카드와 풍선이 흔들거렸고, 둔탁한 스피커에서는 아기상어가 흥겹게 노래를 하고 있었다. 익숙한 멜로디에 비단이가 내 손을 잡고 자꾸 꼼지락거렸다. 나는 공들인 화장과 머리가 망가질까봐 걸음이 자꾸 늦었고, 연신 힐끔대며 거울을 보았다.

  쭈뼛거리며 아이의 반을 찾았다. "어! 오셨다! 어머니! 여기에요 여기!" 나를 발견한 담임선생님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손을 흔들며 비단이를 불렀다. 비단이가 입장하자, 선생님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어린이날 축하해 비단아!" 비단이는 시끄러운 소리에 당황했지만, 자기를 향한 환호가 싫지만은 않았는지 약간 뽐이 난 얼굴로 걸어 들어갔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내내 처음 보는 비단이의 우쭐한 입꼬리와 으쓱한 어깨였다. 괜시리 신 음료를 마신 것처럼 코끝이 찡했다.

  30명 정도 되는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과 30명의 학부모, 그리고 선생님들까지 모두 모이자 좁은 어린이집 마당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아이가 입소한지 몇 달이 되었지만 이렇게 아이들을 한꺼번에 마주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어쩐지 빤히 보면 실례일 것 같은 생각에 나는 조심스러운 눈길로 아이들과 엄마들을 보았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밝았고, 엄마들은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었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이 모여있다보니, 머리는 대부분 질끈 묶었거나 모자를 썼다. 핸드백 대신 힙쌕과 배낭을 메고 활동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그 속에 있자니, 아침부터 머리가 망가질새라 신경쓰고 있던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손목에 감긴 머리끈을 꺼내 재빠른 동작으로 머리를 틀어올렸다. 상투를 틀자 당장이라도 전투에 나서야 할 것 같은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나는 비단이의 보호자이자 엄마로 이 자리에 온 것이다. 이전 어린이집에서처럼 기죽지도, 비굴해지지도 말자. 나부터 가슴 펴자.'    

  각 반 선생님들이 모두 투입되고 한바탕 방송을 하고서야 드디어 모두가 한 자리에 모였다. "오늘만큼은 어머니들도 모두 6살이다 생각하고 참여해주세요."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고 엄마들은 가만히 허리를 숙이고 신발끈을 조였다. 나도 가방끈을 고쳐쥐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단단히 넣었다.

  "탕!"

  총소리와 함께 행사가 시작하자마자, 아이들은 정말이지 콩알탄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주변을 살피며 눈치를 보던 비단이도 질새라 거대 트램폴린이 설치된 방방놀이터로 순식간에 튀어나갔다. 나는 잠시 정신을 놓았다가 혼비백산하여 비단이를 따라 뛰었다. 바야흐로 즐거운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비단이는 감각추구가 있어서 점프하며 세차게 튀어오르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더 정확히는, 어른이 양쪽 겨드랑이 밑을 잡아 번쩍 띄워주면 널뛰기하듯 높이 튀어오르는 것을 좋아한다. 그 옛날 명절 때 친척집에 가면 제일 싱싱한 삼촌이나 체격좋은 큰아빠가 해줄 법한 바로 그 놀이. 비단이는 체격이 좋고 무게도 제법 나가는 편이라 집에서도 유일하게 아빠만이 해줄 있는 놀이다. 비단이는 아주 익숙하다는 듯이 방방놀이터에 자리잡고 있던 선생님들을 향해 뛰었고, 한 선생님의 손을 잡아끌었다. 한눈에도 가장 체격이 좋아보이는 젊은 남자선생님이었다. 오늘의 파트너로 간택된 것이다.  

  점프,점프! 비단이는 까르르 웃으며 선생님과 함께 트램폴린을 뛰었다. 비단이의 웃음소리를 듣고 하나 둘 방방놀이터에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젊은 선생님들이어도, 여섯살 일곱살 아이들의 체력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함께 뛰던 한 선생님이 방전되어 쓰러지면, 옆에 있던 다른 선생님으로 재빠르게 교체되었다. 방전된 선생님은 얼음물을 들이키며 급속 충전을 했다. 그렇게 한시간쯤 뛰고 나니, 선생님들은 모두가 지쳐 쓰러졌다. 쓰러진 선생님들의 등과 배 위로 아이들이 올라탔다. 아이고, 곡소리가 울려퍼졌지만 아이들은 더욱 깔깔 웃었다. 즐거운 어린이날이었다.  

  한 선생님의 배에 올라탔던 비단이가 선생님의 손길로 비행기처럼 튀어오르자, 신이 난 남자아이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다시금 곡소리가 났고 엄마들이 박수를 쳤다. 반별로 한 코너씩 돌며 질서있게 이동하라는 부원장님의 애타는 외침은 공중에서 흩어진지 오래였다. 아이들은 잔뜩 흥이 났고 엄마들은 이리저리 총알처럼 도망가는 아이들을 잡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햇살이 장렬히 비치던 그날, 우리는 다같이 모락모락 김이 났다.그래도 즐거웠다. 어디서 우리 비단이같은 친구들이 이렇게 마음껏 소리치고 환호받고 이해받을 수 있으랴. 새삼 감사했다. 그렇게 비단이를 맡아주시는 선생님들 덕에 잠시 한숨 돌리던 차에, 여태껏 보지 못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아이들이 뛰노는 마당 한 켠에는 그늘을 만들어주기 위해 설치된 작은 그늘막과 돗자리가 있었다. 그곳에도 아이들이 있었다. 힘들어서 쉬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은 비단이처럼 뛰노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이었다. 아, 우리 원은 몸이 아픈 친구들도 있는 곳이지. 잠시 분위기에 취해 나도 잊고 있었다. 그곳에는 콧줄을 한 아직 너무나 어린 아이도 있었고, 걸음을 걷기 힘들어보이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큰 소리가 분위기와 소음이 힘든지 탈진한 채 귀를 막고 안정을 취하는 친구도 보였다.

 그런데, 그 속에는 내가 지금껏 보지 못한 풍경이 있었다. 엄마들은 모두 익숙하고 차분한 얼굴로 아이들을 살피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몸으로 뛰어놀 수 없는 아이는 준비된 간식을 먹으며 친구들이 뛸 때마다 엄마와 함께 힘껏 박수를 쳤다. 어린 아기를 안은 엄마는 바쁜 선생님들을 대신해 벼룩시장에 앉아 아이와 함께 물건을 파는 시늉을 하며 깔깔 웃었다. 탈진한 아이를 눕힌 엄마는 아이스커피를 들이키며 잠시 빈 손을 활용해 반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참으로 박수가 절로 나오는 멋진 풍경이었다. 나는 점점 몸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스며들었다. 조금씩, 내가 스스로 세워둔 마음의 벽이 허물어짐을 느꼈다.

  경품 행사를 끝으로 성황리에 행사가 끝났다. 행사 도중 갑작스레 춤을 추며 등장한 친구 덕에 모두가 배를 잡고 웃었고, 모두의 합의로 급하게 신설된 인기상을 수상했다. 다른 아이들도 질세라 참가상으로 준비된 과자박스를 야무지게 챙겼다. 코로나 이후 첫 행사는 성공적이었고,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모두가 즐거웠다.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 마지막에 들은 폐회사가 기억에 남는다. "장애는 불가능이 아니라 불편함일 뿐입니다. 문제는 장애라는 불편함을 불가능으로 내모는 우리의 인식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제든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 우리 아이의 장애는 단지 쉽게 해낼 수 없는 불편함일 뿐이다. 살면서 넘어졌다고 해서 모두가 즉시 벌떡 일어날 필요는 없다. 조금 나중에 일어날 수도 있고, 잠깐 그대로 누워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도 분명 완주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의 즐거움은, 불확실성에 있다는 말을 믿는다. 나는 오늘도 앞에 놓인 삶에 집중하며 살랑이는 바람에 몸을 맡기려 한다. 땀냄새가 풍겼지만, 마음이 따뜻했다.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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