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문제일까?
영국의 연구기관에서 개발한 ‘죽음의 질 지수’라는 것이 있다. 임종을 앞둔 환자에 대한 완화의료와 의료환경, 전문인력, 서비스 이용 가능성, 돌봄의 질, 완화의료에 대한 인식 등을 평가하는 지표이다. 2015년에 조사한 80개 국가 중 1위는 100점 만점에 93.9점을 받은 영국이었고, 한국은 73.7점으로 18위였다. 5년 전에는 40개국 중 32위였다니 빠른 속도로 좋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앞으로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왜 18위인지를 따져보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한국이 죽음의 질이 낮은 이유로는 임종에 가까운 환자 대부분이 완화의료보다는 연명의료를 받는다는 점, 죽음에 대한 대화 등 준비가 적다는 점, 죽음에 대한 교육이 부족한 점 등을 꼽고 있다. 18위도 그나마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이 앞으로 완화의료 정책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기대 때문에 높게 나온 순위였다.
이 이유를 보다보니 우리 사회는 삶 속에 ‘죽음’이라는 것이 들어와 있지 못한, 죽음을 회피하고 외면하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독’한 상태가 되면 병원으로 급하게 옮겨지고, 살리기 위해 병원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게 하는 것. 이것이 우리 대부분이 죽음을 대하는 최선이자 거의 자동화된 과정이다. 그리고, 그렇게 ‘연명’의 시간이 이어지게 된다.
병원에서 삶을 마치는 것도 모자라 중환자실, 그것도 서울대학교병원을 포함한 ‘빅4’병원의 중환자실 정도는 되는 곳에서 삶을 마쳐야 제대로 보냈다는 인식이 생긴 건지도 모른다고 『죽음을 배우는 시간』의 저자이자 의사인 김현아 씨는 말한다. 『대통령의 염장이』의 저자이자 수천 명의 시신을 닦아드리며 살아온 유재철 씨는 연명치료란 살아있는 사람 마음 편하자고 죽음 앞둔 사람의 발목을 붙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선택의 기로에서 내 삶을 결정하며 살기보다는 사회가 정해준 대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니 죽음을 앞두고도 병원의 처분에 삶을 맡기는 것이 일반화되어버린 듯하다. 그러나 이제 조금씩 연명치료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나고 있고, 대체 어떻게 죽어야 할지에 대해 곳곳에서 질문과 고민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연명의료란 무엇일까?
살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 죽음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사실일까?
연명의료란, 임종이 가까웠거나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를 낫게 해줄 수는 없지만, 목숨 연장을 위해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착용·혈액투석·항암제 투여 등을 하는 의료를 말한다.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같은 의료기기는 60년대부터 발전해서 급성질환으로 생명이 위독한 환자들을 구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런 기술들이 임종기 환자에게 널리 적용되면서 의미 있는 삶의 연장보다는 고통의 기간을 늘리고 있다는 문제제기 앞에 서게 되었다.
우리 상황에서 노인들이 위독해졌을 때 찾는 곳은 대부분 병원 응급실이다. 거기에서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를 받게 되는데, 응급환자에게 행해지는 격렬한 처치들을 받을 만한 상황인지 가족들이 우선 판단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환자를 오랫동안 보아온 의사에게 도움을 청할 수가 없다. 병명에 따라 여러 과를 전전하느라 환자를 전체적으로 장기적으로 봐온 의사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파편화되고 전문화된 현대 의료의 가장 큰 맹점이라고 김현아 씨는 말한다.
현재로서는 가족들이 이런 상황에 대비한 대화를 사전에 충분히 나눠야 한다. 집에서 가족들이 모여 임종의 시간을 함께 보낼지 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병원 안가고 집에서 죽는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있을 수 있고 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조건상 녹녹치 않지만, 그 선택지를 열어놓은 상태에서 우리의 죽음을 생각해볼 때 좀 더 ‘좋은’ 죽음의 길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연명의료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행해지는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착용, 중환자실 입원 등의 실제 내용이 어떤지에 대해서 앞으로 차근히 살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