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순 Jul 28. 2023

노후준비로 의료사협 조합원이 되었습니다

소박한 로또의 꿈을 꾸다

“어르신들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살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시다가 생을 마감하는 부분까지 돕겠다는 게 우리의 목표에요.” 

‘이런 단체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기사를 읽었다. 경남산청의료사협 사무국장 황재홍 씨의 말이다. 내가 살던 집에서 안전하게 살다 죽는 것, 꿈이라기엔 너무 소박한 듯도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매우 큰 로또의 꿈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의 저자이자 왕진의사인 양창모 씨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가족의 보살핌 속에 죽지 못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친구들과 얘기하다보면, 노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죽음으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곤 한다. 나이가 들어가고 아버지의 노환과 죽음을 접하고 어머니와 같이 살아가면서, 예전에는 손이 닿지 않을 먼 곳에 있던 ‘죽음’이 성큼 다가와 내 손을 잡는 듯하다. 

우리 사회는 개개인이 나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늙어가는 중이다.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가 900만을 넘어서 전체 인구 중 17.5%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5년에는 그 비율이 20%를 넘어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살다 죽어갈지가 많은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다. 

한편에서는 ‘장수마을’을 찾아서 장수의 비결을 묻고, ‘전국장수자랑’이라는 TV 코너도 생겨서 어르신들을 찾아가 명아주 지팡이를 선물하는 등 ‘늙음’을 축복받는다. 그러나, 세금 낼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세금 받을 노인들만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를 반복해서 듣다보면, 짐스러워진 노인들을 어쩌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이제는 죽어야 하는데 죽지도 않아”라는 노인들의 한숨 섞인 하소연이 그들이 처한 상황을 말해주는 듯하다. 

전쟁 후 베이비붐 세대에 주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도성장’이라는 경제적 성과를 이루어낸 이들이 이제 ‘노인’이라는 명찰을 달게 되었다. 젊은 시절, 저임금과 힘든 노동을 감당하며 열심히 일한 그들이 이제 조금은 편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매해 3천명 넘는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회, 프랑스의 10배, 미국의 2배가 되는 노인 빈곤율을 자랑하는 사회가 우리 사회이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매우 익숙하지만, 이것은 현실이라기보다는 실낱같은 희망 또는 절규가 아닐까 싶다. 우리 사회는 노인들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다행히도 아주 조금씩 민간과 공공 영역에서 장애인, 노인 등 약자들을 위한 움직임들이 생겨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집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국가에서 진행하고 있는 방문 진료 시범사업도 그런 제도 중 하나이다. 19년 12월부터 3년 단위로 시범사업이 시작되었고, 현재 3년 연장된 상태이다. 필요할 때 전화해도 연결이 잘 안 되기도 하고 참여병원도 적고 진료를 받은 환자도 소수이지만, 해마다 참여환자가 늘고 있다. 방문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제도가 시범사업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인 제도로 정착된다면, 내 집을 찾는 주치의가 죽음의 순간까지 나를 돌봐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양창모 씨는 왕진주체가 민간의료가 아니라 공공의료로 바뀌어야 하고, 이를 위한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한다. 시간이 곧 돈인 의료시장에 돈 안 되는 왕진을 맡기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 마을 보건소마다 어르신들의 상황을 잘 아는 왕진 의사가 있다면, 참 마음 든든하겠다. 

그리고, 주민들 스스로가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지역의 의료와 돌봄을 책임지는 의료사협(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곳에서도 방문의료와 간호를 중요한 활동의 하나로 삼고 있다. 

제주에서도 의료사협이 준비 중이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어가는 데 의료사협이 중요한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

제주에서도 의료사협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접하고,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설립 인원 500명, 출자금 1억원이 돼야 조합 설립이 가능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유기농업과 먹거리를 위해 일해 온 한살림이 주도해서 준비 중이라니 기본적인 믿음이 생겼다. 앞으로 병원이 만들어져서 진료를 받을 수 있기까지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할 텐데,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내가 의료사협에 가입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건강하고 안전한 노후를 위해서이다. 병원을 가능한 적게 다니고 살다가 병원 신세 안 지고 집에서 죽고 싶은 나에게 믿을 수 있는 병원과 주치의는 꼭 필요한 존재인 것 같다. 조합원 가족 혜택도 있다니 어머니와 나의 주치의가 생기는 그날을 기다린다. 

이전 02화 살던 집에서 자연스럽게 죽어가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