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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순 Nov 22. 2023

죽음의 질과 연명의료 3

중환자실, 노인들의 임종장소가 되어가다

2002년 전체 중환자실 입원자 중 7.3%가 80세 이상이었다, 그런데, 2013년에는 23.1%로 증가했다. 중환자실 입원 빈도는 10년간 2배 가까이 증가했는데, 20~79세는 감소한 데 비해 80세 이상 입원율이 크게 늘어서 그렇다. 첨단의료기기와 기술이 총동원되는 중환자실이 이제 노인들이 삶을 마감하는 임종의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집에서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예전에는 병원에 있다가도 임종이 가까워졌다고 판단하면, 환자를 집으로 모셔가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는 집에까지 안전하게 환자를 모셔가는 일이 의사들이 하는 중요한 업무의 하나였다고 한다. 집에 있다가도 임종이 가까워지면 병원으로 달려가는 지금과는 대조적이다. 

2018년 미국의 조사에 따르면, 중환자실에 입원한 평균 연령 67세의 환자들 중 적절한 임종 상담을 받고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들이 마냥 중환자실 치료를 지속한 환자보다 사망에 이르는 기간이 짧았다. 그러나 6개월 이상 장기 생존율은 두 집단이 같았다. 어차피 생존할 사람은 연명의료와 무관하게 생존한다는 의미이다. 가족들의 만족도도 연명치료를 중단한 집단이 더 높았다. 환자가 겪는 고통이 적고,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고, 임종을 앞두고 겪는 심리적 어려움들을 의료진과 나눌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의료에 의지하기에 앞서서 환자의 정신적·육체적 상태가 이 강력한 의료조치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우선 판단해야 한다. 병원은 일단 죽음의 고비를 넘기는 것이 최대의 과제이므로,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20대의 건강한 젊은이에게는 100m 질주, 권투, 등산 등 격한 운동이 적절할 수 있지만, 80대의 약한 노인에게는 몸을 망가뜨리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강력한 의료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소아과가 따로 있듯이 노인의 몸과 마음을 통합적으로 돌볼 수 있는 노인의료가 절실한 이유이다. 

중환자실 치료는 여러 문제들이 따르는데, 가장 큰 문제는 감염이다. 의료진의 과실이 아니더라도 중환자실에는 항생제에 저항성이 높은 극강의 병원균이 우글거린다. 한국은 중환자실 인력난도 심각해서, 중환자실 전담 전문의 1인당 병상수가 40병상이 훨씬 넘고 간호사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환자들은 침대에서 대소변을 보고, 형편이 열악한 병원에서는 이에 대한 관리도 잘 안 된다.  

또 흔한 문제는 섬망인데, 헛소리를 하고 헛것을 보는 등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의 60~80%가 섬망을 경험한다, 낯설고 극단적인 환경에 누워서 쉼 없이 울리는 기계음을 듣고 옆 환자의 나쁜 경과를 보면서 생기는 자연스런 증상이다. 노인들의 섬망 증상은 굳이 중환자실이 아니라 일반 병실에 입원하더라도 종종 생기는 증상이다. 

인공호흡기는 중환자실에서 거의 필수적인 기기이다. 단순 산소공급기와 달리 인공호흡기를 단 상태에서는 자발호흡을 어떤 형태로든 죽여 놓지 않으면, 제정신으로는 버티기가 힘들다. 그래서 자발적인 호흡중추까지 마비되도록 진정제를 투여해서 환자를 깊은 무의식으로 떨어뜨려야 한다. 대부분의 인공호흡기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인공호흡기는 약한 폐를 파열시킬 위험도 커서 이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의료 기술이 동원되고, 이를 위해 다양한 줄들을 몸에 달아야 한다.  

무사히 중환자실을 나오는 환자의 40~80%는 인지장애를 겪는다. 고령자나 오랫동안 중환자실 치료를 받은 사람, 섬망이 있었던 환자라면 인지장애 위험이 높아진다. 중환자실 치료의 경험은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을 일으킬 정도로 큰 충격을 남기기도 한다. 

의료가 많은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가능하게 해주지만, 당연하게도 죽음을 영원히 피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그것을 인정하는 의료가 아마도 호스피스 완화의료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호스피스 시설도 많지 않고, 호스피스를 치료의 포기, 죽으러 가는 곳과 같은 뜻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비율이 매우 낮은 편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삶을 긍정함과 동시에 죽음이 정상적인 과정이라는 점을 인지하도록 돕고, 죽음을 서두르지도 방해하지도 않는다, 

호스피스나 노인의료와 같은 의료제도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당사자와 가족들이 그 빈틈을 메워나갈 수밖에 없다. 임종을 앞둔 마지막이 덜 외롭기 위해서는 주위에서 단지 그를 치료 대상으로만 취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듯하다.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내맡긴 채로 그저 누워있는 노인들의 모습은 죽음보다 더 가슴 아플 때가 있다.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자신의 죽음을 포함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이 본인에게도 훨씬 좋다고 한다. 차마 ‘죽음’이라는 단어를 그 앞에서 말하기가 어려울 수 있지만, 많은 환자들은 죽음을 포함한 자신의 운명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는 살아있기에 그렇게 함께 나누고 싶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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