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적 상황을 존엄과 긍휼로 대하기
‘죽음의 질’ 지수가 처음 발표된 2010년에도, 뒤이어 2015년에도 1위를 차지한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이 소위 ‘죽기 좋은 나라’가 된 데에는 ‘죽음의 얼굴을 바꾼 여성’이라 불리우는 의사 시슬리 손더스(1918~2005)가 있었다. 간호사였던 그녀는 분주하고 붐비는 병원 한복판에서 말기 환자들이 두려움과 지독한 외로움에 사로잡혀 죽어가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 기독교인이었던 그녀는 환자들의 삶에 대한 깊은 동정심을 갖게 되었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살필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런 목표를 가지고 서른세 살에 의대에 들어갔다.
그리고, 1967년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를 세웠다. 1980년대에는 영국 전역으로 호스피스 설립 운동이 번졌다. 그녀는 현대의학을 호스피스에 접목시킴으로써 현대적 의미의 호스피스, 즉 호스피스·완화의료 개념을 확립하였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의료와 돌봄이 결합될 때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온전하게 보살필 수 있다는 생각을 반영하는 말이다.
호스피스는 원래 중세 유럽에서 여행 순례자에게 숙박을 제공했던 작은 교회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머물던 여행자가 병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되는 경우, 그곳에서 치료와 간호를 받았고 죽음을 맞기도 했다. 중세 시대에는 교회가 죽어가는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 7덕목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후에는 여행자나 임종환자 등을 돌보는 시설 전반을 호스피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완화의료는 말기암, 신체기능저하, 만성질환 등 사실상 치료가 불가능한 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의료 행위이다. 완화의 핵심은 ‘고통 경감’인데,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경제적 고통 등을 포함한다. 이는 단지 첨단 의료 기술만으로는 불가능한 신체적·사회적·영적 돌봄과 임종 돌봄, 사별가족 돌봄 등으로 이루어진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에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성직자, 지역활동가, 자원봉사자 등 환자의 어려움을 전체적으로 돌보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다.
여기에는 마치 어떤 죽음이든 막아낼 수 있거나 막아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공격적 의료를 멈추지 않는 기존의 의료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강력하고 비싼 첨단 기술 앞에서 두렵고 외롭고 소외된 삶의 마지막 길을 걷는 환자들의 삶을 지켜내고자 하는 의지가 들어있다.
손더스는 고통이 생기면 사후적으로 처방하는 게 아니라 '예방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방법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녀는 미리 조심스럽게 투약량을 결정했고, 일정한 간격을 두고 환자가 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고통이 재발되지 않는 방법들을 연구했다. 또한 환자 자신이 투약량을 조절하는 것을 시험했는데, 그 결과 말기 환자들이 약물을 과다하게 복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녀는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에 있는 환자들의 95%가 정말 온전한 정신으로 고통에서 자유를 누려 왔음을 뿌듯해 한다. 다량의 진정제를 투여해서 비몽사몽 누워있는 상태로 환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는 방문자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까페테리아, 병실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영국식 정원과 꽃밭, 연못, 가족들이 편안히 함께 할 수 있는 넓은 병실, 벽에 걸린 예술 작품, 종종 열리는 연주회 등에서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환자들 역시 살아도 죽은 삶이 아니라 살다가 죽음을 맞는다. 호스피스는 이처럼 인간의 가장 절망적 상황을 존엄과 긍휼로 다루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누군가가 목격담을 전하기도 했다.
처음 호스피스를 방문한 환자에게는 ‘성크리스토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와 ‘앞으로의 일 준비하기: 당신이 알아야 할 사실들’이란 안내 책자가 주어진다, 그리고 환자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죽음 그 이후’라는 소책자가 주어진다. 이렇게 죽음을 말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 수 있도록 돕는다.
또 환자가 어디서 죽고 싶은지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서 죽음을 집에서 맞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준비도 되어있다. 호스피스를 찾는 환자 중 70%는 집에서 임종을 맞는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호스피스의 모든 서비스는 무료이다. 운영자금의 약 42%는 영국 국영의료서비스(NHS)로부터 지원받고, 나머지는 기부를 통해 충당한다. 기부 마라톤 대회, 카드 판매, 중고물품 판매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한다. 그리고 임종을 맞는 이들이 재산이나 집을 호스피스 앞으로 남겨서 들어오는 기부금도 있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민의 기본적 삶과 죽음을 책임지고자 하는 국가, 애정과 전문성으로 존엄한 삶과 죽음을 돕는 전문가, 한 사람의 죽음은 우리가 함께 도울 일이라는 생각으로 기꺼이 기부와 봉사를 하는 시민들 덕에 영국은 죽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말기 암환자의 95%가 호스피스를 이용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영국의 호스피스는 대표적인 ‘국민시설’인 셈이다.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의사 윤영호의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라는 책이 있다. 그 부제는 ‘살면서 괴로운 나라 죽을 때 비참한 나라’이다. 사는 게 너무나 괴로웠는데, 죽을 때 갑자기 존엄해지기란 힘든 일이다.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길래 존엄한 삶과 죽음이 이토록 간절하고도 요원한지를 자문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