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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순 Oct 17. 2023

우리는 어떤 유족일까요?

'좋은 이별'을 위한 우리의 자세

유시민 씨의 말을 인용하면 ‘그대라는 존재는 우주가 만든 기적’이라는데, 그 우주의 기적이 이 세상과 이별을 고하는 의식이 장례식일 것이다. 광대한 우주의 시공 속에 한 순간 한 지점을 함께 빛냈던 기적을 조금 먼저 보내는 의식, 그 의미에 비해 현실의 장례식은 참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동안 갔던 장례식들을 떠올려보면, 절하고 밥먹고 얘기 좀 하다 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고인에 대해서는 아주 잠깐 돌아가신 상황 정도를 듣곤 했다.

4년 전쯤 치른 아버지의 장례식도 다르지 않았다. 육지에서 내려와 주어진 대로 시키는 대로 손님들을 맞으며 보냈다. 생각해보면 장례기간에는 아버지를 떠올리는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돌아가시기 전의 몇 년 전과 장례를 다 마치고 나서야 더 많이 아버지를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읽게 된 책 중 하나가 『대통령의 염장이』이다. 저자 유재철 씨는 장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나라의 장례식에서는 좀 낯선 ’애도식‘을 진행했다. 발인 전날 저녁, 장모님이 살아온 약력을 읊고, 시낭송을 하고, 판소리와 대금 공연 등이 이어졌다. 30여 분간 잔잔한 슬픔, 유머, 위로, 추억이 함께 하는 따뜻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가족을 떠나보내는 유족들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첫째는 장례지도사가 이끄는 대로 따르는 부류이고, 둘째는 전통 예법 운운하며 갖가지 형식을 하나하나 따지는 부류, 셋째는 의미 있고 색다른 이벤트를 준비하는 부류이다. 아마도 첫째 부류가 대다수 유족의 모습일 것 같다. 삶의 많은 부분에서 전문가에게 돈을 주고 맡기는 것이 편하고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고인의 인생은 모두 다른데, 고인을 모시는 방식은 다들 비슷하다고 저자는 안타까워한다. 책에는 고인을 추모하며 기억과 아픔과 따뜻함을 나누는 예외적인 모습들도 그려진다.

<티베트 사자의 서>라는 티벳 불교의 경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혼이 빠져나가는 데 몇 시간 걸린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이 경전의 내용에 공감하는 어느 경영학 교수가 저자에게 연로한 어머니를 자연의 섭리대로 보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8시간 동안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가족들과 기도드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형식적 조문은 받고 싶지 않아서 가족과 친척 등 어머니와 가까웠던 사람들만 모여서 고인을 절로 모시고 염해드렸다. 사찰에서는 큰 소리를 낼 수 없으므로 조용히 이야기 나누는 애도식을 진행했고, 일반 장례식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심 어린 애도의 분위기 속에서 함께 울고 웃고를 반복했다. 장례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어머님이 정말 편안하게 가셨을 것이라는 데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한 스님이 돌아가셔서 운구차가 암자에서 출발하자 차량 스피커에서는 동백아가씨, 섬마을 선생님 등 이미자의 노래가 울려나왔다. 신도들은 울먹이며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스님은 돌아가시기 전 신도들에게 절대 울지 말고 염불도 외지 말고, 대신 당신이 좋아했던 이미자 노래를 불러달라는 유지를 남겼다. 평소 스님이 후원하시던 풍물패가 선두에서 신명나게 북 치고 장구 치며 운구 행렬을 이끌었다. 다비장에 이르니 스님들은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목탁 치며 염불을 외웠다. 괴상한 불협화음 속 느껴지는 스님에 대한 그리움, 감사, 애틋함은 그 어떤 기획으로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고인과 함께 나누었던 삶의 이야기들이 분명 있을 텐데도 고인을 보내는 길에 고인은 잘 보이질 않는다. 어느 병원에 마련된 임종방에서는 환자의 가족들에게 환자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아는 가족이 별로 없다고 한다. 너무 익숙하지만 실제 아는 것은 별로 없는 관계, 그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실상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함’과 ‘앎’은 같은 게 아닌가보다.

그리고, 함께 나누고 싶은 애틋함과 아픔과 추억이 가슴 속에 차있더라도 이것을 드러낼 방법을 모른 채 그저 주어진 절차대로 살아가는 데 익숙한지도 모르겠다. 아프면 의사에게, 죽으면 장례업자에게 돈으로 해결하거나 처리하는 데 익숙해져서,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에는 점점 무능해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돈은 우리 삶을 가능케 해주는 필수적인 요소지만, 당연하게도 전부는 아니다. 돈으로 해결하거나 대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우리의 삶을 존엄하게 하는 핵심일 거라 생각한다. 함께 했던 삶을 떠나보내는 의식의 핵심에도 돈이 아닌 것들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유족들은 자신들이 사랑했던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염습이라는 장례문화도 생겨났다. 저자는 염습과정을 유족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게 하는데, 유족들은 참관하라는 말에 처음에는 당황하기도 한다. 서툴더라도 유족들이 염습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고인과 유족을 위해 의미 있는 절차라고 한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더라도 이별의 주체는 고인과 유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탄생을 지켜보며 기뻐하고,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길이다. 우리는 그렇게 태어났고 또 그렇게 죽어갈 것이다. 우리와 함께 해온 삶과 이별하며 어떻게 보내드릴 것인지, 그리고 내가 이 세상과 어떻게 이별하고 싶은지를 생각하고 정리해놓는 것, 존엄한 생의 마무리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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