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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순 Oct 18. 2023

죽음을 대하는 삶의 품격

"예'를 행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다. 산파가 산도를 열어 이 세상으로 잘 이끌어주는 사람이듯 나는 세상 인연 매듭지어 저세상으로 잘 보내드리는 사람이다. 

사람은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져간다. 엄마가 사랑으로 지은 배냇저고리를 처음 입혀주듯 나는 정성으로 목욕시켜 마지막 수의를 입혀드린다. 

『대통령의 염장이』의 앞 부분에 쓰인 글이다. 책을 읽으며, ‘이 분의 삶은 순간순간이 기도의 시간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지금까지 자신과 인연 맺은 영가(죽은이의 넋)님들과 누구인지는 모르나 앞으로 만나게 될 고인을 위하여 향을 피우고 기도드린다. 고인의 삶을 평가하는 대신 정성을 다해 보내드리는 것에 마음을 다하는 삶을 30여년 살아오고 있다. 죽음을 대하는 삶의 품격이 전해져왔다.

저자는 수천 번 넘도록 염습(고인을 마지막으로 목욕시키고 깨끗한 옷을 입혀 관에 모시는 일)을 해왔지만, 편안한 표정의 고인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편안한 표정으로 돌아가신 경우는 자신의 죽음을 일찍 예감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또 살아있는 동안 자기 죽음을 스스로 준비한 사람.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생을 미리 정리하고 미련을 두지 않는 사람일 것이라고 한다. 반대로 얼굴에 고통의 흔적이 역력한 경우에는 영가가 주변 맴도는 것 같아 얼굴을 더 세심히 만져드린다. 이제 편히 가시라고 기도드리면서 얼굴을 부드럽게 마사지해 긴장된 근육을 풀고 로션을 발라드린다. 

큰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젊은 스님이 계셨는데, 처음으로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난감하게 느껴질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목욕은 포기하고 천천히 펴드리면서 맨살이 전혀 안 보이게 승복을 갖춰 입혀드렸다. 다 입혔을 때 속으로 ‘스님! 승복을 잘 입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배우 여운계 씨의 염을 진행하던 중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메시지를 받고 놀란 마음으로 누가 부르지도 않은 길을 달려갔다. 가는 길에 행안부에서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얼굴은 깨끗한 상태임을 확인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일을 시작하던 초기에는 여자 상근직원을 둘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때도 고인이 여자인 경우 항상 여자 자원봉사자들이 염습을 주관하도록 했다. 지금까지 저자는 여자 고인의 염습을 주관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라고 그는 생각한다. 

사고사로 죽은 외국인 시신을 고국으로 송환할 때는 엠바밍(방부처리)를 한다. 이에 대한 엄격한 국제 규정이 있다. 가장 힘든 경우는 외국인 불법 체류자의 사고사 시신을 엠바밍하는 경우이다. 주로 가족은 없고 고용주는 나타나지 않고, 시신이 한두 달 안치실에 방치된 채 부패하기도 한다. 

혼자 죽은 채 오랫동안 방치된 시신을 염할 때 장례지도사가 가장 어려움 토로하는 것은 냄새이다. 삶이 외로웠던 만큼 죽음 이후에도 쓸쓸한 경우가 많아서 저자는 그들에게 한 번 더 손길과 마음이 간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묻는다. 시신을 만지면 무섭지 않느냐고. 저자는 어렸을 때 집안 어른이 돌아가시면 가족들이 손수 염습하는 걸 보고 자랐고, 시신에 대한 두려움은 원래부터 없었다. 36세 때 처음 염습을 배우러 갔던 날, 여자 염사의 주관에 따라 할머니의 염을 했다. 할머니의 차가운 살결이 손에 닿을 때마다 왠지 애틋했고, 자신의 할머니 모습이 생각나서 친근한 마음까지 들었다. 

나는 이런 삶의 환경 자체가 진정한 교육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 전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 이것은 교과서 암기 같은 것으로 체득될 수 없는 삶의 태도이자 마음이다. 병적인 교육열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삶과 죽음을 배우는 진정한 교육은 그 열기에 시들어 버렸다. 

죽음과 시신이 기피와 혐오의 대상이 되다보니 장례업 종사자들 또한 혐오와 하대의 시선을 종종 받게 된다. 시신을 만진다는 이유로 장례지도사와 악수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인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장의사가 결혼식장에 왔다고 부정 탄다는 말도 들어봤다. 주로 여자 장례지도사들의 경우, 염할 때는 그저 고맙다고 하다가 조문객이 많아 음식 나르는 일을 거들면, 시신 만진 손으로 음식을 만지면 어떡하냐고 대놓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종종 만난다. 

그래도 최근에는 ‘천한 직업’에서 ‘전문직’으로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기는 하다. 정성을 다해 염습과 장례를 마치고나면, 사람들이 저자를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그렇게 보람찰 수 없다고 한다. 저자는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아닌, ‘예’를 행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한다. 우리 사회에 이런 분이 있다는 사실에 나까지 뿌듯해진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삶을 살아갈 용기의 원천은 호의, 아름다움, 진실이라고 했다. 과학자답지 않게도. 기도하는 삶. 정성을 들이는 삶이 아마도 호의와 아름다움과 진실을 가능케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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