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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순 Oct 20. 2023

죽을 준비, 되셨나요?

결국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

80대의 할머니가 계셨다. 남편은 40에 먼저 떠났고, 죽기 전 분홍 치마저고리를 할머니에게 선물했다. 할머니는 그 옷을 제일 중요한 날에만 정성스레 꺼내 입었다. 나이가 들어 쇠약해지고 지병이 악화되어가자 할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곡기를 끊으셨다. 같이 사는 아들 부부가 조금만 드시라고 간청해도, 정신 있을 때 떠나겠다며 고요히 누워계셨다. 

볕 좋은 어느 날, 할머니는 스스로 목욕하고, 아끼던 저고리를 꺼내 입으셨다. 그리고 볕이 드는 소파에 앉아 아들의 출근길 인사를 느린 손짓으로 받고나서 누우셨다. 며느리가 설거지와 청소를 마치고보니 할머니는 이미 세상을 뜨신 상태였다. 할머니는 그렇게 스스로를 염습하시고 떠나셨다. 보통 염습 때는 입과 항문에서 이물질이 새어나오기 마련인데, 그 어떤 것도 나오지 않았다. 유족에게 분홍 치마저고리의 의미를 미리 들었더라면 삼베 수의로 갈아입혀 드리지 않았을 텐데, 나중에서야 전해 들었다. 유언이라든가 글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할머니는 본인의 장례식을 이렇게 준비하셨다. 

수많은 죽음을 경험해온 사람은 어떤 죽음을 원할까? ‘대통령의 염장이’ 유재철 씨는 힘이 다 빠지기 전에 주변을 정돈하고, 인간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생전 이별식을 하고, 숨쉬기 힘들어지면 이 할머니처럼 목욕재계하고 좋아하는 옷 입고, 마지막 호흡을 느끼면서 떠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임종 후 가족들이 작은 애도식을 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생전 장례식’에 대해서는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는 책에서 처음 접했다. 모리 교수는 루게릭 말기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죽음이 코앞에 닥쳤다는 충격적 사실 앞에서 그는 자신의 죽음을 인생 최후의 프로젝트로 삼고,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승화시키기로 다짐한다. 방송 출연, 제자인 미치 앨봄과의 화요 토론, 그리고 행사의 주인공이 기획하고 참여하는 ‘생전 장례식’ 등 그의 시한부 인생은 역동적이었다. 그는 ‘죽어간다’라는 단어가 ‘쓸모없다’라는 단어와 결코 같은 뜻이 아니라는 것을, 죽는 그 순간까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자 했다. 

2017년,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작은 광고 하나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80세의 건설기계 분야 대기업 전 사장이 ‘10월 초 암이 발견돼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밝히며, ‘연명 효과가 조금 있겠지만 부작용 가능성도 있는 방사선이나 항암제 치료는 받고 싶지 않다’며 ‘아직 건강할 때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신문에 실린 생전 장례식 광고

모임은 본인이 직접 기획하고 준비했다. 신문 광고의 문구, 날짜, 형식도 직접 정했다. 식장은 지인들과 추억이 담긴 사진으로 꾸며졌다. 중앙 스크린엔 주인공의 삶의 순간들이 펼쳐졌다. 그의 고향 전통춤 공연도 펼쳐졌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테이블을 돌면서 한 사람 한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그의 후배라는 한 남성은 “자신의 인생을 인간관계를 통해 하나하나 확인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그는 생전 장례식을 치르고 6개월 후 사망했다. 

2018년에는 한국에서도 85세의 전립선암 환자 김병국 씨가 호스피스 병원에서 생전장례식을 치렀다. 그의 초대의 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고인이 되어 치르는 장례가 아닌 임종 전 가족, 지인과 함께 이별 인사를 나누는 살아서 치루는 장례식을 하려고 합니다.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 입고 오세요. 같이 춤추고 노래 불러요. 능동적인 마침표를 찍고 싶습니다. 

<귀천>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아직까지 우리에겐 낯설고 생소한 뉴스들이 전해지면서 생전 장례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370명을 대상으로 ‘생전 장례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9.7%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장례식이 꼭 슬픈 분위기일 필요는 없기 때문에(44.9%)’가 가장 많았고, ‘많은 사람과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27%)’, ‘현재 장례식들은 허례허식이 많아서(18%)’, ‘사람이 죽은 다음에 치르는 장례는 의미가 없어서(7%)’, ‘남은 이들도 이별을 준비할 수 있어서(3.1%)’ 순으로 나타났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실학자였던 박지원은 움직이기 힘들 만큼 늙고 아프게 되자 먹던 약을 물리고 술상 차려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다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산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해나가는 일일 텐데, 죽음이라는 것도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고 맞을지를 선택하는 ‘삶’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자의 선택과 결정을 끝까지 존중하고 돕는 것, 그것이 조금 더 살아갈 자들에게 주어진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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