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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순 Oct 10. 2023

"바로 여기요. 이곳이 최고로군요!"

여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무엇입니까?

캠핑카에서 맥주잔을 부딪치며 시작된 여행 첫날, 잠자리에 들면서 라미는 자유를 완전히 상실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파에 매트리스를 펴고 자는데, 팀이 몸을 들썩일 때마다 잠이 깨며 이 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점점 없어졌다. 어머니와 함께 하면서 자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며 해왔던 많은 일들을 이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두려워졌다. 

라미는 아는 지인들이 몇 명 찾아오는 자신의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렸다. 독자들은 그들의 여행을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느긋하게 즐기라는 답글들을 보내왔다. 이 글들을 읽으며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낼 힘이 생겨났다.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강풍으로 발이 묶이는 상황을 겪으며,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전전긍긍하는 대신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계획했다. 의욕이 앞서 어머니의 버킷리스트를 받으려고 했으나, 어머니는 원하는 만큼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에 실망하기도 했으나, 덕분에 의외의 기회들이 찾아왔다. 그래서 이들은 짜놓은 계획을 하나씩 지워가는 여행이 아닌 순간을 즐기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행하는 동안, 작고 소극적인 어머니에게서 밝은 웃음과 유머스러운 모습을 발견했다. 실없는 행동을 하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순간을 즐기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머니의 웃음은 주변을 전염시키는 힘이 있었다. 라미의 친구가 만들어준 수제 맥주를 마시며, “요양원에 들어갔더라면 결코 이런 걸 맛볼 수 없었을 텐데. 정말 좋구나!”라며 행복해했다. 평생 동안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보살펴온 여성이 이제 생의 마지막 목전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라미는 어머니와 여행하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살아생전 열기구를 너무 타보고 싶어했지만 못타봤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아들은 너무 놀랐다. 짐작도 못해본 일이었다. 

페이스북에 올린 이들의 여행기는 지인들 몇 명이 ‘좋아요’를 누르는 것에서 시작해서 전세계적으로 수십 만의 사람들이 읽고 감동하고 응원하는 글이 되었다. 어머니는 뉴스에 출연하기도 했고, 신문기사에 오르기도 했다. 세계적인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가 응원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여러 여행지에서 환대받는 유명인이 되었다. 결혼 이후 여행다운 여행이라곤 해본 적 없는 어머니는, 여행길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축하를 받으며 생애 마지막이 된 91번째 생일파티를 맞았다. 야구를 관람하는 자리에서는 미스 노마의 이야기를 읽고 구단주의 가족이 함께 가족여행을 떠나게 되었다는 감사의 말을 듣기도 했다. 

언론과 주변의 이런 관심이 예상 외로 뜨거워지자 아들 부부는 그런 관심에 휘둘릴까봐 두려워지기도 했다. 외부에 알리는 것을 이제 그만두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지지와 감사의 글을 나누면서 느끼는 공감과 감동이 그 두려움을 밀어냈다. 어머니는 평생 그런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 텐데도 어색함 없이 즐기는 듯 했다. 충분히 인정받았어야 할 90 평생의 가치를 마지막 1년 동안 원 없이 인정받는 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마지막 시간에는 호흡곤란, 부종 등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찾아왔다. 아마도 호스피스 제도가 우리보다 앞서있는 듯한데, 이동주택으로 의사와 간호사 등이 찾아와서 돌봐주었다. 이들의 돌봄, 아들 부부의 노래와 사랑의 속삭임 속에 미스 노마의 여행과 삶이 마무리되었다. 

여행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무엇이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미스 노마는 “바로 여기요. 이곳이 최고로군요!”라는 답을 했었다. 죽음이라는 마무리의 시간, 같은 질문이 던져졌다면 말을 할 수는 없었겠지만 마음 속으로 같은 대답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그렇게 아들 부부가 어머니를 보내고 나서 유품을 정리하다보니 일기장이 있었다. 지난 겨울에는 어머니와 여행하느라 가지 못했지만 겨울이면 늘 찾았던 멕시코로 떠나며, 일기장은 여행지에 도착해서 읽어보기로 하고 펼치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함께 한 친구들과 어머니의 일기를 함께 읽었다. 일기장에는 암의 고통이나 갑작스런 유명세 등 큼지막한 이야기는 없었고, 그날그날의 작은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렇게 소소한 이야기들을 읽고 들으며, 미스 노마를 함께 추억했다. 

이 책은 너무도 흔한 말이라 감흥도 사라져버린 ‘자유’로운 삶이란 어떻게 가능한지, 내 어머니와 어떤 삶을 살다가 삶의 마무리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을지,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등 여러 생각의 낚시들을 던져주었다. 내 어머니에게는 어떤 숨겨진 끼와 욕망들이 잠들어 있을지도 궁금해졌다.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가 끝나니까 ..... 우리는 자유로이 살아가기 위해서 태어난 걸’ 이상은의 노래 <삶은 여행>의 가사가 떠오른다. ‘나다운 삶’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로서의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고 싶어진다. 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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