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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순 Oct 10. 2023

"같이 가는 게 좋겠구나"

90세 미스 노마의 여행이 시작되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자궁암 진단, 그리고 그들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2015년 8월부터 2016년 9월까지 90세의 어머니와 아들 부부가 32개주 75개 도시, 2만1천여 km의 여정을 함께 했다. 키 152cm, 몸무게 45kg의 자그마한 90세 할머니가 이 책의 주인공 미스 노마이고, 그녀의 아들 팀과 며느리 라미 부부는 이 책의 공동저자이다. 

“난 아흔 살이나 먹었어요. 이제 길을 떠날 참이라오. 더 이상 병원 진료실에는 1분도 있고 싶지 않아요.” 자궁암 진단을 내리며 너무도 당연히 수술, 방사선, 항암치료를 안내하는 의사에게 어머니가 답했다. 의사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의대 학생들도 놀란 표정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남은 시간을 여행하며 보낼 예정이라는 아들의 설명을 듣자 의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이 계획의 적극 지지자가 됐다. 

‘어떻게 이런 결정이 가능하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들 부부가 그런 마음이 생겼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웠지만, 그렇더라도 현실적으로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는지도 궁금했다. 빈부에 관계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므로. 

아들 부부는 검소한 삶, 얽매임 없이 자유로운 삶을 원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아들은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해서 전국을 돌며 관련 일을 했었다. 15년 전 캠핑카를 얻게 되면서 이 부부는 본격적으로 장기여행을 하며 살아왔고, 몇 년 전부터는 일을 접고 여행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겨울이면 캠핑카를 끌고 멕시코의 해변에서 살았다. 그곳은 전기, 물 등 자원이 부족하고, 교통체증, 뉴스, 지켜야 할 일정이 없는 곳, 여행자들과 함께 서핑을 하며 아침을 맞는 곳, 돌고래와 고래상어와 함께 바다를 즐기는 곳이다. 자신들이 돈벌이로부터 일찍 은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많은 돈이 아니라 절약하며 검소하게 산 덕분이라고 그 비결을 밝혔다. 

자신들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에 이런 어마어마한 결정도 선뜻 내릴 수 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조건에서도 자신들의 ‘자유로움’을 최대한 누릴 수 있는 ‘자유력’의 소유자라고나 할까?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도 아닌 시어머니와 언제 끝날지 모를 여행을 떠나는 며느리를 상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마도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며느리’라는 의무감의 무게가 훨씬 덜해서 오히려 이런 결정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자유로운 자발성이 꽃필 수 있는  사회의 축복이라고나 할까? 

아버지가 병원에서 고통 받으며 돌아가시는 상황을 막 겪은 부부는 어머니를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는 데 마음이 모아졌다.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살아가실 어머니를 떠올려보니 어머니가 원하는 소소한 일상의 바램들을 충족시키며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닐 것 같았다. 대화를 나누다가 부부는 거의 동시에 “어머니가 우리랑 같이 살고 싶은지 한번 물어볼까?”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최종 결정권자인 어머니에게 물었다. 지금처럼 집에 혼자 사시기는 힘들 것 같은데, 그러면 요양원에 들어가실 수도 있고, 원하시면 우리 부부와 함께 여행하며 살아도 좋을 것 같으니 어떤 것이 좋을지 천천히 생각해보시라고 했다. “같이 가는 게 좋겠구나.” 어머니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이런 선택지가 있는 미스 노마는 참 좋겠다는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미스 노마와 아들 부부의 여행

그렇다고 이 가족이 우리 주변에서는 보기 힘들게 사랑 넘치는 별스러운 가족은 아니었다. 별스럽다면 부모와 아들, 딸, 이 네 명이 어떠한 혈연관계도 아니라는 것을 들 수는 있겠다. 부모님은 불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아들과 딸을 입양했고, 아들이 여섯 살 즈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대통령 경호 등의 일을 했던 여동생은 50이 되면 은퇴해서 부모님과 함께 살 계획이었으나, 40대에 설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은 가족 모두가 그 현실이 너무나 힘들고 버거웠으나, 입밖에 그 사실을 내뱉지 않는 것으로 그 아픔을 견뎌내려 했다. 1년에 한 번쯤 방문하고 안부를 묻고 가슴 속 깊은 이야기는 굳이 나누지 않던 가족이 이제 24시간을 함께 하는 여행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아버지는 리더쉽과 유머, 사교성이 있는 분이었던 데 반해 어머니는 조용히 그림자처럼 남들을 챙기며 살아오신 분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아오신 듯하다. 원래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었던 어머니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더 말이 줄어가고 체중이 줄어갔다. 남편의 사망과 자신의 암 선고,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보거나 상상해보지 않은 낯선 삶을 앞둔 90의 할머니가 희망으로 부풀기는 힘들 것이다. 미스 노마, 팀과 라미, 그리고 이들의 반려견 링고의 여행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 채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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