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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단잠,
마당의 잔디, 우리의 아침

by 이진순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침대에 누운 어머니는 손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다. 이제 잠에서 깨어났다는 신호다.

“어머니! 일어나랜 노래 틀어노난 일어나진 안 허고 박자만 맞췀신게(일어나라고 노래 틀었는데, 일어나진 않고 박자만 맞추네)!”

“하하하하~”


둘이 눈을 맞추며 웃는다. 우리의 아침은 종종 이렇게 시작된다. 어머니의 환한 웃음을 보며, 왜 ‘웃음꽃’이란 비유가 생겨났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꽃봉오리가 터지는 그 환한 생명의 느낌이 웃음에 담겨있구나!


어머니가 이렇게 아침잠을, 이불의 포근한 느낌을 즐기는 사람이었는지 아주 오래도록 몰랐었다. 어머니의 욕구와 취향에 대해 긴 세월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아버지와 결혼한 20대 초반부터 80대 중반쯤까지, 어머니의 하루는 깜깜한 새벽녘 새벽기도로 시작되었다. 다니던 교회가 새로 건물을 짓는 동안 새벽기도가 없어졌고, 교회에 나가 새벽기도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하던 부모님의 오래된 습관도 없어졌다. 그리고 이제 어머니는 외출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되어 내가 깨울 때까지 깊은 잠을 잔다.


내가 10대일 때는 어머니가 아침마다 나를 깨웠다. 다디단 잠에서 나를 깨우는 게 너무 싫어서 한껏 짜증을 내며 겨우 일어났다. 깨우지 않고 학교에 지각하도록 뒀다면 아마 왜 안 깨웠냐고 더 짜증을 냈을 것 같다. 어머니는 그런 짜증을 받아내며 나의 하루가 시작되게 해주었다.


아침잠이 얼마나 달콤한지, 그 달콤함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 덕에 남을 깨울 때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잠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를 궁리하게 된다. 예전에 교사로 일할 때,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은 음악 소리 정도로는 이불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당연하다. 음악 정도로 그 달콤함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어림없지~. 음악을 틀어놓고 방에 들어가서 누워있는 학생들의 머리맡에 앉아 어깨를 주무르며 말을 걸다 보면, 아이들은 그 고통의 순간을 그래도 비교적 자연스럽게 빠져나오곤 했다.


어머니에게는 다행히 음악이 효과가 크다. 노래를 틀었는데도 꼼짝하지 않으면, 소리를 좀 더 높이고 스피커를 가까이 갖다 댄다. 그러면 바로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휙 돌리면서 눈을 뜬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쭈욱~ 나는 아침잠이 달다. ‘단잠’이라는 말에는 ‘숙면’이라는 단어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간질간질한 기분 좋음이 있다. 아침에 어머니를 깨울 때면, 웃음기를 머금은 채 “고만이 누우난(가만히 누우니까) 너무 좋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단잠이 주는 행복감을 만끽하는 표정이다.


“어머니 안 일어낭 계속 누웡 이시믄(안 일어나고 계속 누워 있으면) 센터 선생님 엄청 기다려야크라(기다려야겠네)”라고 말하면,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앉는다. 만끽의 순간을 지나, 긴 단잠으로 충전된 에너지로 ‘으싸~!’하며 일어나 또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 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60년 넘게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을까 싶다.


날이 따뜻해지면 외출 준비를 한 어머니는 현관에 나가 앉아 문을 열어놓고 마당 구경을 하면서 주간보호센터의 차를 기다린다. 작은 마당에 조금씩 끊임없이 봄이 찾아온다. 갈색이던 잔디가 푸르러지고, 노란 수선화로 시작해서 철쭉, 커베라, 백합, 낮달맞이꽃 등이 줄을 잇는다.

KakaoTalk_20250625_073407395.jpg 6월이 되니 백합이 이쪽저쪽에 흐드러졌다. 마치 백합의 함성을 듣는 듯하다. 집에 찾아온 손님들은 마당에 들어서니 백합향이 너무 좋다고 말한다.

같이 마당을 바라보고 있다가 어머니가

“아이고 집 지을 때 마을에서 마당 세멘 해주캔 해나신디 그때 잔디 허지 말앙 세멘 해불 걸 잘못해신가(시멘트 해주겠다고 했었는데, 그때 잔디 하지 말고 시멘트 해버릴 걸 잘못했나)?” 라고 말했다.

“잔디 까난(까니까) 보기도 좋고 덜 덥고 완전 좋은디~”라고 답했더니, “잔디도 깎고 풀도 메야 되고 힘들게시리”라고 하셨다. “하루에 좀씩만 허믄 안 힘들어. 꽃도 보고 나무도 있고 세멘 안 허길 엄청 다행이지~”라고 하니, 어머니는 그러냐며 끄덕거렸다.

몇 번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점점 어머니의 말이 바뀌어 갔다.

“바다로 어디로 좋은 잔디영 돌이영 구허래 다니느랜(잔디랑 돌이랑 구하러 다니느라) 고생은 했주만은(했지만), 그때 아버지 생각 잘 해서이? 세멘 해시믄(했으면) 저 밖에 세멘길추룩(시멘트 길처럼) 마당이 거뭇거뭇허고 막 보기 싫을 뻔해서(뻔했어). 덥기도 막 덥고~.”


KakaoTalk_20250625_073407395_01.jpg 마당에는 잔디 뿐 아니라 아버지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돌에 난 구멍에 흙을 채우고 손가락선인장을 심어놓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찬란한 꽃을 피웠다.


어머니는 내심 잔디하길 잘했다고 이미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풀을 뽑고 잔디를 깎아야 하는 게 신경 쓰여서, 마음에 없는 말로 내 생각을 떠봤던(?) 거 아닐까? 그리고는 내 반응에 맞춰 서서히 본심이 드러났던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머니 사회 생활 좀 할 줄 아는 사람이네~


내가 한 마디 덧붙였다.

“맞아. 아버지가 생각 잘했지. 어머닌 아버지 얘기 생전 안 허당(하다가) 잔디만 보믄(보면) 아버지 얘기 햄신게(하네). 아버지 잔디 안 깔아시믄(깔았으면) 큰일날 뻔 해서(했어).”

“하하하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됐을 때, 어머니는 간간이 할머니와 아버지 얘기를 하곤 했다. 우리가 좀 편리한 전셋집에 살게 되었을 때, 소파에 앉아 햇살이 비쳐드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할머니도 이런 집에 살았으면 엄청 좋아하셨을 거라고 하셨다.


어머니 구순 영상과 아버지 1주기 영상을 보고 나서는,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놨냐고 신기해하면서, “아버지도 같이 봐시민(봤으면) 좋아실 건디”라고 하셨다. 이 좋은 것들을 혼자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에 할머니와 아버지 생각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할머니와 아버지 얘기를 거의 안 하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도 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것들이 남아있다. 대표적인 게 ‘가자미’와 ‘잔디’다. 북한 출신인 아버지는 북한식 가자미 식혜 레시피를 어머니에게 전수해서, 우리집 밥상에는 가자미 식혜가 오르곤 했다. TV에 가자미가 나오면, 어머니는 “아버지 좋아허는 거”라는 말을 꼭 한다.


아버지,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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