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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Oct 29. 2019

3. 왜 내 비밀을 지켜주지 않아요?

진짜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이거 진짜 진짜 진짜 비밀이야!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비밀을 지키기로 하고, 약속-복사-싸인-코팅까지 한다. 비밀을 지키는 것은 의리의 척도였다. 친구가 말해준 비밀은 정말 무덤까지 끌고 가야만 했다. 아무리 옆에서 다른 친구가 나를 꼬시고 고문해도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 비밀을 입 밖으로 내뱉을지언정 차라리 날 죽여라!


  물론 솔직히 말하면 아주 가끔 유혹에 넘어갈 때도 있었다, 그럴 땐 또다시 ‘너 진짜 그거 A의 비밀이니까, 절대 절대 절대 절대 말하면 안 돼! A가 얘기하면 처음 듣는 척하고 들어야 해’ 하고 몇 번이나 확인하곤 했다. 그동안 나의 친구의 비밀에 대한 방어율은 얼마나 될까.  


  어릴 땐 ‘진짜 진짜 진짜 비밀’인 것들이 많았고, 그 작은 또래 집단들 사이에서 나는 목숨을 걸고 그것을 지켜야 했다. 그런데 어른이 되니, 중복되는 집단보다는 여기 친구 무리, 저기 친구 무리가 있어서인지 비밀을 지켜야만 하는 중요성이 왠지 낮아지는 기분이 든다. 어차피 A와 B는 서로 모르니까, 만날 일 없으니까, 말해도 되겠지. ‘내 친구 얘긴데~’ 이름만 생략한 나의 이야기들이 술술 어딘가에 둥둥 떠다니겠지. 어딘가 인터넷 익명게시판에 올라와있을 수도 있겠지. 결혼한 내 친구들은 남편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야, 너 이거 진짜 진짜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해도 내 말을 듣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도 하고, 적당히 알아서 거르겠지 하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믿지만 믿지 않기 때문에, 점점 비밀을 말할 곳이 없어진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말은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일까.  


  왜 내 비밀을 지켜주지 않아?

  비밀이 있으면 좋겠다. 내 비밀을 누가 지켜주면 좋겠다. 비밀인데 비밀이 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뭔가 서운하고, 뭔가 외로워진다. 야, 니들 남편한테도 엄마한테도 절대 절대 말하면 안 돼!  (아, 나도 비밀 잘 지킬게)





(커버 이미지 : 제주 세화해수욕장 앞 '세화씨 문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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