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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토끼 Oct 12. 2019

당신 눈빛 하나면, 충분해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눈을 가만히 보면, 상대방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알 수 있대. 그래서 난 사랑을 할 때도 사업을 할 때도 상대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지.' 드라마에서 나왔던 이야기인가, 책에서 나왔던 이야기인가, 친구가 얘기했던 말인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진부해져 버린 눈동자 타령이라니.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얼마 전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배우 손석구가 전여빈의 눈동자에 맑은 소주잔을 포개는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숨이 멎을 뻔했다. 손석구와 전여빈의 두 손이 엇갈리고, 전여빈의 눈동자, 그리고 손석구의 눈동자가 천천히 클로즈업되며..... 캬. 

  15년 전 정우성이 손예진에게 맑은 소주잔을 건네며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하고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던 것처럼, 그때 그들의 눈빛은 소주보다도 더 맑았던 것처럼. 눈동자의 힘은 그렇게 강력하다.  


JTBC 드라마 <멜로가 체질>


  최근 봤던 영화에서도 눈빛에 대한 인상적인 대사가 있었다. 영화 <완벽한 타인>에서 영배가 게이임을 밝히는 순간에서였다. “나 간다. 아, 그리고 너네한테 민수는 소개해주고 싶지가 않아. 사람의 본성은 월식 같아서 잠깐은 가려져도 금방 드러나게 돼있어. 만약에 민수가 여기 왔다면 너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잘 대해 주었을 거야. 앞에선 잘해 주잖아. 근데 결국 니들 눈빛에 상처 받았을 거야.” 눈빛의 힘은 정말 그렇게 강렬하다. 무언가를 판단하는 그 눈빛은 쉽게 숨겨지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모두가 현실에 마구 노출되고, 함께 그 냉혹함과 어려움을 느껴가다 보니, ‘나도 겪어봤잖아. 괜찮아, 말해봐’하는 정당화 속에서 현실적인 질문들이 난무한다. ‘야, 너 연봉은 어느 정도야? 너 학자금 대출이 있었나? 집 구했다며, 전세야, 매매야? 차는 있어? 부모님이 너한테 물려주실 거 좀 있나? 다 괜찮아, 나도 경험했잖아, 알아, 말해봐, 우리 친하잖아.’ 마음의 빗장을 내리고 거기에 답을 하는 순간 너의 눈빛이 흔들린다. 


  궁금해서 물었다고, 공감하려고 물었다고, 분명히 내 빗장을 내리라고 해놓고, 어느새 너의 빗장이 올라간다. 어떤 경우는 매우 높은 성벽이 철창과 함께 쳐 지기도 한다. 너의 눈은 어느새 나의 대답을 판단하기 시작한다. ‘그래, 요즘 다 쉽지 않지. 다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어’ 너의 언어는 나를 위로하지만, 너의 눈은 나를 산산조각 낸다. 결국 ‘음, 그래, 내가 너보다 낫다’는 결론에 닿을 때까지 너는 나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 빗장에, 성벽에, 철창에, 칼날에 나는 결국 베이고 피가 난다.  아프다. 


  반대로 어려운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어떤 위로보다 따뜻한 눈빛을 받을 때가 있다. 오늘도 그 눈빛에 끌려 ‘가족이라는 것이 뭐 별거 있을까. 그냥 마음 맞는 사람들의 따뜻한 눈빛을 받으면서, 그렇게 오늘도 힘내며 살아보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만큼. 


  나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눈빛을 주는 사람일까. 

  나도 모르게, 입은 따뜻하게 말하면서 누구보다 차가운 눈빛으로 너의 마음을 벤 적은 없었을까. 마음을 베이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알게 되니, 나 역시 그랬던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볼 때 눈물이 고인다. 왜냐하면, 정말 너무 차갑거든. 정말 너무 아프거든. 


  나도 사람이다 보니, 항상 따뜻할 자신은 없었다. 내가 피곤하거나 예민할 때 누군가의 어려운 말을 들으면, 그냥 눈을 감아야겠다. 그냥 눈을 감고, 손을 내밀어야겠다. 조용히 손을 잡아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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