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SBS 드라마 <그 해 우리는>에서 유명한 도서관 씬이 있었다. 여주인공 연수가 잘못한 상황이었지만, 웅이가 도서관으로 연수를 찾아간 장면이었다. 자존심이 센 연수가 겨우겨우 콩알만 한 목소리로 사과를 하니, 웅이는 이렇게 말했다.
" 멍청아, 나한텐 그래도 돼. 내가 계속 이렇게 찾아올 테니까 넌 미안하단 한마디면 돼. 어차피 항상 지는 건 나야."
나에게 져 주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내가 잘못해도 이렇게 웅이처럼 찾아와 줄 사람이 있을까.
누가 나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을까.
문득 ‘져 준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져 준다는 것은, 어쩌면 정말 깊은 사랑이다. 부모 자식 간 사랑이기도 하고, 연인 간 사랑이기도, 친구 간 사랑이기도 하다.
내 자존심을 포기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그 사람을 잡고 싶은 기분.
억울하고 서운해도, 상대방이 웃으면 내 기분도 싹- 나아질 것만 같은 기분.
상대방이 괜찮다고만 하면, 나는 다 괜찮을 것만 같은 그 기분.
부모님은 늘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면, 먼저 사과하라고 가르치셨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먼저 사과하라고.
이십 대가 되고 성인이 되니, 문득 손해보고 살지는 말아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아무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먼저 내어주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손해 보고 살면, 나도 힘들고, 가족들도 힘들어질 수 있으니, 내 거 잘 챙기며 야무지게 살아야겠다고…
비록 그게 냉정하다는 평가를 듣더라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가정교육 받으며 형성된 성격은 어디 가지 않는지, 삼십 대 중반이 넘어가니 다시 양보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져 주고 싶다. 특히 소중한 사람에게 이겨 먹는다는 것이, 내가 그로부터 당장 뭔가를 더 챙겼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그렇게 있나, 싶었다.
그런데 머리로는 아는데, 참 쉽지가 않다.
뭐 때문에 이렇게 어려운 걸까,
누군가에게 져 준다는 것,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
한없이 나에게 져주겠다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아니, 아마도 그전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한없이 져주고 싶다.
올해 목표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딱 열 번이라도 완전히 져주는 것으로 세워 보기로 했다.
(사진은, 양평 카페, 칸트의 마을. 엄마와 함께 했던 비오는 날의 양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