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예를 들어 돌이켜봤을 때 지금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을 했던 순간. 쪽지시험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필통 속에 작은 커닝 페이퍼를 숨겨놓고는 정작 한번 꺼내보지도 못했던 어린 기억. 배가 불러 더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식해버린 어제. 적당히 부렸다면 좋았을 지난날의 허세까지.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텐데 하고 후회하는 순간들 말이다. 그중 억울한 걸로 따지자면 단연코 맛없는 걸로 배를 채웠던 빌어먹을 어느 날의 한 끼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은 한 끼 식사를 하더라도 절대 허투루 먹는 경우가 없다.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은 그야말로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과이고, 아무 정보가 없는 식당엔 쉬이 들어갈 용기가 없다. 맛집이라 단단히 벼르고 갔던 식당은 정오가 채 되기도 전에 재료가 떨어지는 일 또한 허다하다. 한 시간 안에 우리는 찾아놓은 맛집으로 이동해 행복한 식사를 하고 한 손에는 진한 커피 한 잔을 들고 다시 회사로 들어와야 한다. 완벽한 점심시간을 보내기위해 치밀하게 세운 이렇다할 계획이 잘 따라줬다면 좋겠지만 인생이 늘 그러하듯 변수라는 녀석이 찾아와 훼방을 놓을 때도 있다. 소중한 나의 빅데이터로부터 배신을 당한다면 꽤나 씁쓸할 것이다.
이렇게 매일을 보내다 보면 우리는 잦은 외식으로 인해 조금씩 늘어난 뱃살이 신경 쓰이고 식습관에 대해 돌아보는 시기가 찾아온다. 건강한 식습관을 다시 바로잡기 위해 샐러드를 회사로 배달시켜 먹거나, 균형 잡힌 영양소가 들어가 있다는 다이어트 식단을 주문해 점심을 해결한다. 이도 지겹다 느껴질 땐 내 입맛에 맞춰 요리한 집 반찬들로 도시락을 사보지만 설거지가 만만치 않다. 다시 맛집 탐방을 떠난다. 이런 패턴이 반복된다. 그러다 보면 우린 딜레마에 빠진다.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만족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완벽한 점심 식사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녹색얼굴을 한 완두콩이 귀여운 한날의 솥밥
"내게 허락된 외식은 몇번일까?"
지금은 이렇다 할 외식 한번 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아졌다. 이번 해엔 봄방학이 끝나도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였고, 인륜지대사 중의 하나인 결혼식을 올리고 참석하는 일도 인원 제한이 걸려 소규모로 진행되어야 했다. 대기업을 선두로 재택근무 시스템을 구축하여 시행하는 회사들도 많아졌다. 재택으로 인해 출근길 정체는 눈에 띄게 줄었지만, 밖으로 나오는 유동인구가 크게 줄어 외식업계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저마다의 사정은 다르겠지만 배달음식의 수요가 폭증해 그에 따른 배달 라이더들도 함께 늘어났고, 도로 위의 배달 오토바이는 더 많은 주문을 받기 위해 곡예운전을 마다않는다.
아무리 급변하는 사회라지만 근 1년도 안된 사이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렇지만 다행히 우린 변화에 익숙하고 적응하는 것에 적응해왔다. 학교에 등교하는 것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아 온라인으로 접속해 출석체크를 한다. 온라인 강의를 듣고 학생과 선생님 간에 피드백도 원활하게 이뤄진다. 앞서 언급한 재택근무가 늘어났고, 화상을 통해 회의가 진행된다. 밖에서 식사하는 게 불안해진 우리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정성껏 요리한 음식을 내놓기도 하고, 배달 어플을 통해 주문한 각 나라의 음식을 대접하기도 한다. 또한 재택이 생기면서 비대면 회식문화도 생겨났다. 저마다의 취향에 맞는 음식과 음료 혹은 주류를 준비해 컴퓨터 앞에 자리를 잡는다. 모니터 화면에는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있었을 직장동료들의 모습이 보인다. #언택트 트렌드를 좇는 선구적인 본인들의 모습에 어색한 웃음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분위기가 무르익어 익숙한 회식의 형태로 자리 잡아간다.
외출이 힘든 요즘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나눈 식사
물론 이러한 형태의 문화가 자리를 잡아간다 하더라도, 언제까지고 이런 고립된 생활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점차 여러 식당에서 대안책을 내놓고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옆, 앞사람 간에 아크릴판을 설치하여 비말로 인한 감염을 피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테이블을 만들어 테이블 간의 간격을 넓혔고, 곳곳에 손소독 제을 비치해놓았다. 그렇지만 실로 완벽한 방역이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어디도 가지 않는 것일 것이다. 이렇듯 삶의 터전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지만, 변화된 오늘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우리의 앞날에 또 어떠한 변화들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지만 기대해보기로 한다. 비 내린 뒤 땅이 더 굳어지는 법이다. 비가 내린 후엔 훨씬 깨끗해진 시야와 맑은 하늘을 선물 받는다. 희망을 갖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돌이켜 보면, 비가 온 뒤엔 공기의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늦여름에 시원한 비가 내려준 뒤엔 가을의 쓸쓸함이 느껴졌고, 겨울 막바지에 내린 비는 봄의 아지랑이를 데려왔다. 계절이 변하는 기로에선 늘 비가 내렸다.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우리의 크고 작은 일상의 변화를 나누고 싶어졌다. 다른 사람의 일상을 통해 힌트를 얻어 어제와 다른 오늘을 보낸다면 나의 일상 또한 더 풍요로워지리라 믿는다. 좀 더 나은 하루를 보내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결론도 내릴 수 없지만, 오늘의 마무리는 이렇게 하고 싶다. 내가 사랑한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