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정하다>를 마치고
입정동에 작년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계속 오고 가며 여러 작업들을 했었다.
입정동을 처음 만난 지 1년이 되어가던 어느 날 다시 한번 입정동에 다녀왔다.
1947년에 지어진 대진 정밀은 이제 없다.
근대건축으로 구체적인 보전 계획을 요구했지만
벽돌을 떼서 그것을 보관하겠다는 말로 논란이 있었다.
이제 공사장 펜스가 쳐진 채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구멍이 난 틈새로 남겨진 흔적이 있을까 들여다봤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지고
텅 빈 공터만이 남아있다.
이곳저곳 무너져버린 흔적
조금이라도 이곳에 더 남아있고자 하는 이들이
가건물로 또다시 이동했다.
하지만 다른 곳에 가보니 가건물마저 무너진 흔적들이 보인다.
이곳을 떠나게 된 이들은 또 어디로 갔을까?
오래 곁에 있던 것들을 부수고
높은 건물들이 계속해서 올라간다.
저 자리는 누구의 자리일까?
우리는 우리가 있는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알고는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사라진 공간들 사이로
새롭게 지어지고 있는 건물들.
그 사이 텅 빈 길을 걸었다.
모든 게 사라졌고,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더 분명하게 느껴졌다.
너무 쉽게 무너지는 것 같아
또 너무 쉽게 새롭게 무언가가 지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공허했다.
'사라지는 가운데서 무엇을 잡을 수 있을까?'
입정동 있는 동안 계속해서 물었던 질문이다.
소설도 써보고, 박물관도 만들어보고,
혹시 몰라 열심히 이렇게 사진과 함께 기록도 남겨본다.
먼 미래에 옛날옛날,
이곳에 수많은 입정동 장인들이,
수많은 부품과 공구들을 만들어냈던 시간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길이 있을까?
낡은 것들이 사라지고
또 그 자리를 새롭고 단단한 건물들이 지어지는 것이 맞겠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함께' 가는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지
다시 한번 질문이 든다.
예술가가, 그리고 나라는 예술가가
정말 무력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나는 사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여전히 방법을 잘 모르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력하지 않은 예술을 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싶다.
지난 학기 학교 수업시간에 이런 작업들 한 이후에 가장 중요한 태도는
'stand by' '~의 곁에 함께 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함께 앞으로도 무분별한 재개발에 대한 이슈들을 지켜보고
어떻게 예술로 풀어나갈 수 있을지 잊지 않고 노력하는 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