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듣고 싶은 말은…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변모하던 90년대 후반, 동네 피아노 학원은 여자 아이들의 사랑방이었다. ‘학교 수업 따라가려면 계이름 정도는 알아야 돼’ 라는 괴담은 예비 학부모들의 귀를 자극했고, 급기야 사교육에 문외한이던 우리 엄마까지 움직이게 했다. 그녀는 나를 데리고 곧장 교습소로 향했다.
그렇게 난생처음 학원을 다니게 됐다. 학교를 마치고 어딘가 갈 곳이 생겼다는 사실이 싫지 않았다. 친구들이 하는 것을 나도 하고 있다는 동질감은 오히려 좋기도 했다. 꾸준히 배우다 보니 소소한 재미도 느껴졌다. 실력도 늘었는지 몇몇 곡은 악보 없이도 연주할 수 있었다. 뭐, 젓가락 행진곡 같은 거? 한 마디로 뛰어난 재능은 없는 편이었다.
크게 좋아하지도 딱히 잘 치지도 못했지만, 유일한 방과 후 활동이었던 피아노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누군가 취미나 특기를 물으면 ‘피아노’라고 답했다. 장래희망을 묻는 란에도 ‘피아니스트’라고 적었다. 녀석은 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나에게 버거웠던 질문들을 그럴싸하게 처리해 줬다. 기특하고 고마운 존재였다.
그 정도 마음으로 끝냈으면 좋았을 걸. 사소한 이유로 시작된 호감은 점차 욕심이 되었다. 나는 녀석이 갖고 싶어졌다. 대단한 소질이 없다고 피아노까지 없어야 해? 모든 일은 장비빨이야! 녀석만 있으면 베토벤은 아니어도 이루마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소유욕 1단계, ‘망상’이었다.
나는 곧장 소유욕 2단계인 ‘연장 탓’에 돌입했다. 내가 가진 문방구 출신 멜로디언이 못마땅해 보였다. 나~ 체르니 30 배우는 여자야~ 그런데 저걸로 연습을 하라고? 그건 말이 안 됐다. 오선지를 빼곡히 채운 음표를 소리 내려면 피아노가 있어야 마땅했다. 녀석의 몸값이 얼마인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 나 피아노 사줘"
드디어 마지막 단계, ‘생떼 부리기’를 시작했다. 난데없는 피아노 타령에 엄마는 무반응으로 반응했다.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는 진리는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나는 끊질기게 그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흔들어댔다. 철없는 행동이 누군가의 가슴을 찌르는 가시가 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더 이상 피아노를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멜로디언을 불며 툴툴거리는 행동도 그만두었다. 꿈쩍도 하지 않는 엄마에게 지친 것도, 녀석을 갖지 못한 서운함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납득했을 뿐이다. 꺾이지 않는 마음이 꺾여야만 하는 이유를.
돈이 없다는 엄마의 말은 핑계가 아니었다. 안 사주는 게 아니라 못 사주는 것에 가까웠다. 내가 아무리 고집을 피운다 한들 소용없었다. 재료소진으로 문을 닫은 맛집에 찾아가 1인분만 더 팔아달라고 애원하는 격이었다. 혹시 이게 시작인 걸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경험은 앞으로 더 많아질까? 나중에는 어떤 것들을 포기하고 체념하게 될까?
가져본 적도 없는 것을 빼앗긴 느낌. 녀석에 대한 애정은 급하게 식어갔다. 더는 피아노를 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은 학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엄마는 조금만 더 배우는게 어떻겠냐고 설득했지만, 나는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단호한 적은 인생 처음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나를 회유하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몇 년이 흐른 뒤, 나는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녀석과 재회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큰외삼촌 댁에 놓인, 나와 동갑내기인 사촌의 피아노였다. 적당한 우드톤. 매끄러운 표면. 상단에 올려진 하얀 자수 덮개. 신수가 훤해진 녀석은 나를 보며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녀석을 보았고, 엄마는 녀석을 보는 나를 보았다. 그녀는 뒤통수만 보고도 내 표정을 읽어내는 능력을 가진 걸까. 미련 가득한 내 눈빛을 알아챈 것 같았다. “한번 안아서 쳐봐” 엄마는 나를 떠밀었다. 이건 신종 희망고문인가? 어차피 나는 녀석을 가질 수 없는걸. 마치 나를 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껏 사줬는데 잘 치지도 않아”
큰 외숙모가 웃으며 한탄 섞인 말을 내뱉었다. 엄마는 눈치 없이 맞장구를 쳤다. 다들 그렇게 후회하더라며. 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고 이사할 때는 짐만 된다며. 나에게 피아노를 사주지 않은 것은 올바르고 현명한 처사였음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두가 눈치채고 있었다. ‘안’ 사준게 아니라는 것을. 그녀가 변명할수록 나는 점점 작아졌다.
엄마는 이후에도 종종 그 피아노를 비하했다.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녀석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잔뜩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한때 녀석을 갈망했던 내 감정마저 무시당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자신의 처지에 솔직하지 못한 그녀가 안타까웠다. 끝까지 아닌 척 외면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밉기도 했다. 그녀는 나에게 해야 할 말도 회피했으니까.
’큰 외삼촌댁에 있는 피아노 보고 부러웠지? 그렇게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사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 아빠가 뭐든 해주고 싶은데 우리 형편이 좋지 않아서 비싼 건 사줄 수가 없어. 그래도 이거 하나는 약속할게. 나중에 상황이 나아지면 우리 딸이 원하는 건 뭐든 해줄 거야‘
그때의 내가 이 말을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돈에 구애받지 않는 경제적 능력,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바란 건 가난에 구애받지 않는 풍요로운 마음이었다. 나는 피아노가 갖고 싶었던 게 아니다. 넉넉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주려는 마음, 그걸 원했다. 그것이 비록 말 뿐이라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