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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왜 ‘내 방’이 없을까

응, 우리 집이 없으니까

by 양독자



어린 시절 내 아지트는 ‘내 방’이었다. 우리 집에는 자그마한 방이 2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나 혼자 사용했다. 외동이었던 나에게는 ‘방 독점권’이 있었다. 이건 엄청난 특혜였다. 어쩔 때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보다 짜릿했다.



내 방은 나만의 영역이었다. 좋든 싫든 형제들을 룸메이트로 인정해야 하는 또래들과는 공간 활용면에서 질적으로 차이가 났다. 이곳은 내 물건, 내 체취, 내 취향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어쩌다 술에 만취한 아빠를 격리시키는 장소로 내 방을 활용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확실하게 분리된 영역이라는 반증이었다.



내 방을 품고 있는 우리 집이 참 좋았다. 엄마 말에 의하면 여기 살기 전에는 단칸방에서 지냈다는데, 다행히도 나는 그때의 기억이 없다. 그러니 내가 기억하는 한, 내 인생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애정하는 장소가 삶의 시작점이 된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그 행복이 오래가지 않은 건 좀 유감이지만.





어느 날부터 집안 분위기가 이상했다. 달갑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쯤은 세상 물정과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의 짬과 무관한 인간의 본능? 그런 거라고 해두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 아빠가 직장 동료에게 서준 보증이 화근이었다.



우리는 살던 집을 정리하고 멀리 떨어진 외조부댁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빚쟁이한테 쫓길 정도로 망한 건 아니었는지, 불행 중 다행으로 주변을 마무리할 여유가 남아있었다. 나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유치원으로 갔다. 사실상 마지막 등원이었다.



“서울로 이사 간다며? 좋겠다!“

아이들은 축하하듯이 나를 배웅했다. 동정을 사야 할 마당에 부러움을 사는 것이 민망했다. 얼마 남지 않은 졸업식에는 꼭 오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나는 싫어하는 반찬을 입에 넣고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저 속으로 대답했다.



‘바보들. 나는 서울로 가는 게 아니야. 그 옆옆에 있는 인천으로 가는 거야. 우리 집이 성공해서 가는 것도 아니야. 망해서 가는 거야. 그러니 내가 졸업식에 등장하는 서프라이즈 이벤트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아. 나는 오늘 너희들보다 먼저 졸업하는 거야. 일종의 유치원 조기졸업이지. 그러니 지금이 우리의 마지막이야. 안녕, 내 바보들아’





봉고차에 짐을 싣고 부산에서 인천까지 달렸다. 아빠는 운전석, 엄마는 조수석, 이삿짐은 적재함. 원래라면 내 자리는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작은 간이석이지만, 나는 좌석 뒤에 있는 좁은 짐칸에 눕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이런 내가 신경 쓰였는지 아빠와 엄마는 중간중간 고개를 돌려 내 안부를 물었다.



그렇다면 성공인가? 사실 이건 보여주기식 투쟁이었다. 이마에 하얀 끈을 두르고 침대에 드러누우면 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장면을 엄마가 시청하는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본받아 내 아지트를 돌려달라는 시위를 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드라마는 현실과 다르다는 교훈만 하나 얻었다.



쉬지 않고 400km를 날아온 덕분에 날을 넘기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 앞에는 늦은 밤까지 우리를 기다리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서 계셨다. 설날이나 추석에만 볼 수 있는 두 사람을 마주하니 잠시 기분이 들떴지만 이내 곧 가라앉았다. 우리를 반가워하기보다 짠하게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을 보니 확실히 명절 분위기는 아니었다.





우리는 방 3개짜리 집에서 살게 됐지만 그곳에 내 공간은 없었다. ’우리 집에 왜 내 방만 없어?‘ 라고 따질 수도 없었다. 우리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혈연으로 묶인 사이라지만 나는 얹혀사는 객식구나 다름이 없었다. 자기 객관화를 끝내자 마음속 하소연이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나의 자랑이자 사랑이었던 인생의 터전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떠나기 전에 실컷 떼를 써볼걸. 몸뚱이가 뒤집어진 벌레처럼 팔다리를 휘저으며 진상을 부려볼걸. 계속 여기서 살면 안 되냐고 땡깡을 피워볼걸. 나는 고작 일곱 살에 껄무새가 되었다.(껄무새는 ~할걸 하며 후회하는 사람을 말한다)



공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나는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지냈다. 공부할 때는 부모님 방, 잘 때는 할머니 방, 아무도 모르게 비밀스러운 것을 할 때는 가장 안쪽에 있는 할아버지 방을 빌려 썼다. 내가 떠돌이 생활을 하는 걸 모르는 동네 친구들은 이따금씩 우리 집에서 놀자고 응석을 부렸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집 밖으로 녀석들을 유인하느라 애를 먹었다.





방방(房房) 곡곡을 떠돌아다니며 생활한 지도 벌써 5년. 유치원 조기졸업생이던 나는 어느덧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친구들은 차츰 ‘1인 1방’으로 룸 업그레이드를 받았다. 자기만의 공간에 나를 초대하는 날이 많아졌고, 그들 또한 내 초대를 원하는 눈치였다.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기에 섭섭한 마음을 애써 무시했다.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보다 상대를 서운하게 만드는 게 나았다.



빼앗긴 ‘방’에도 봄은 오는가. 몇 년째 겨울만 지속되니 없던 수족냉증이 생길 지경이었다. 내가 겨울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 계절을 편애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계속 춥기만 한건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거 운명의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요!’ 할머니처럼 천주교를 믿었다면 그분에게 따지기라도 했을 텐데. 무교인 나는 양심상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외조부모님이 살던 집을 처분하고 외삼촌네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사를 가야 했다. 그건 나에게 희소식이었다. 높은 확률로 방 독점권을 사용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역시 존버는 승리하는 거야! 나는 설렘을 안고 엄마의 임장을 따라나섰다.





“실례합니다. 잠시 집 구경 좀 할게요”

후우… 이번에도 한숨이 나왔다.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실망스러운 표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부동산 사장님은 내가 살고 싶지 않은 집만 보여주기로 작정을 한 것 같았다. 다른 매물을 볼 때마다 ‘혹시 여기서 살게 되면 어쩌지?’ 하고 마음을 졸였다.



선택지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는 최악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라 했다. 엄마는 그나마 덜 낡았던 집으로 계약을 했다. 그곳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돈이 중요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계속 이렇게 살아야 했다.



열두 살이나 됐는데 이제 세상 물정과 친하게 지낼 때도 되지 않았냐며 나를 쪼아대는 것 같았다. 왜 나한테만 그래요? 왜 나만 철이 들어야 해요? 다른 애들은 놀이터에서 철봉이나 들어 올리고 있는데… 라고 따지고 싶었다. 내가 지닌 인성에 비해 인생의 진도가 빠르다 보니 반발심만 강해졌다. 지나친 선행학습은 역효과를 부르는 법이다.





부모님은 이사 간 집에서 제일 큰 방을 나에게 주었다. 책상과 책들을 한 곳에 모아 놓으려면 그 방법이 유일했다. 덕분에 온갖 잡동사니가 내 방으로 모여들었다. 엄마는 거실에 드나드는 것처럼 노크도 없이 방 문을 열어댔다. 나중엔 아예 문을 열고 지냈다.



무료 공용공간으로 소문이 났는지 건물 외벽을 거닐던 바퀴벌레까지 내 방으로 들어와 정모를 했다. 벌어진 틈새를 죄다 막았지만 녀석들은 새로운 구멍을 찾아 진입을 시도했다. 구석구석 덫을 놓아도 소용이 없었다. 이건 세스코가 와도 박멸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를 마치고 취직을 할 때까지, 우리는 그 집을 벗어나지 못했다.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바퀴벌레도 이제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들보다 징글징글한 생명체는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둘렀을지도 모른다.



내가 사회인으로 적응했을 즈음, 나는 부모님께 이사를 제안했다. 매번 조금 더 버텨야 한다고 반기를 들던 엄마가 웬일인지 순순히 백기를 들었다. “그래, 한번 알아볼게” 이 정도면 충분히 견뎌냈다고 스스로를 인정해 준 것 같았다.





기나긴 처가살이와 전세살이를 끝내고 진짜 우리 집을 만나는데 꼬박 20년이 걸렸다. 새 보금자리는 연식이 있는 곳이라 기본적인 도배와 수리를 하고 이사를 하기로 했다. 그곳에는 낯설지만 그리웠던 내 아지트도 있다. 도통 실감이 나지 않았다.



“벽지는 무슨 색으로 할까요?”

인테리어가게 사장님이 내 방에 붙일 벽지를 골라보라고 하셨다. 매일 먹는 점심 메뉴를 정하는데도 한 나절이 걸리는데 평생 쓸지도 모르는 것을 단숨에 결정할리 없었다. 종류는 또 어찌나 다양한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갈피도 잡지 못했다.



한참을 머뭇거리자 보다 못한 사장님이 먼저 제안을 했다. 파스텔톤의 연분홍색 벽지였다. 평소 ‘핑크 알레르기’가 있어서 웬만해선 분홍색 아이템을 구입하지 않는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저 벽지로 도배된 방은 어린 소녀의 공간처럼 느껴질 것만 같았다.



“네 그걸로 해주세요”

7살 이후로 마음이 자라지 못한 성인에게 딱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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