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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로백수 Nov 17. 2021

이사가 끝나고 고질병을 얻다

부모님과 내 집 살림 합치기

부모님 댁을 이사하게 되면 으레 부딪히게 되는 이슈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어머니의 '자개장'입니다.


IMF 때 파산을 하고 온 집안의 재산이 모두 없어져서

연신내 반지하 단칸방에서 부모님과 제가 한방 살이를 시작했던 이십여년 전에도

어머니는 그 자개장만은 버리지 못하시고 기어이 그 좁안 단칸방으로 장을 들이셨어요.

방이 좁아 다 들어오지 못한 장의 일부분은 집 밖 빈 공간에 비닐을 덮어서 보관을 하시면서까지요.


3짝의 장롱과 2짝의 문갑(이 얼마나 고풍스러운 단어인가ㅎ) 그리고 1개의 화장대로 구성된

1980년대 수백만 원을 들여 장만한(난 믿지 못하지만, 어머니는 칠백만 원이라고 주장하신다) 그 자개장은

그 이후 부모님과 내가 다시 조금씩 저축을 해서 지상으로 올라오고 집 크기를 키워가는 와중에도

계속 어머니를 따라다녔습니다.


"아, 엄마. 저건 이제 좀 버리자구요! 요즘 누가 자개장 써요. 그냥 붙박이장 해드릴게요".

장의 바깥 나무가 두꺼워서 실제로 수납공간의 크기는 장의 크기에 비해 별로 되지 않고

잦은 이사 과정에 겉이 깨지고 낡은 그 자개장을 버리자고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이야기를 해도 어머니는 그 자개장을 버리지 못하셨어요.

마치 그 자개장이 IMF 이전 당신의 행복했던 기억의 상징이나 되는 냥

그걸 버리면 당신의 지난 과거를 증명할 무언가가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인 냥

어머니는 그렇게 자개장을 20년 동안 열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에도 기어이 끌고 다니셨습니다.


어머니의 연세가 여든이 넘어가며 어머니의 그런 '가진 것들에 대한 집착"은 점점 더 강해지시는 듯 합니다.

덕분에 "얼마나 더 산다고, 지금 있는 거 쓴다"와 "그거 아직도 멀쩡한대 뭘 버려. 다 돈이다"의 2단 콤보가

맞물리며 부모님 댁과 아들 집, 두 집 살림을 한집으로 합쳐 넣어야 하는 이번 이사 과정에서

저는 어머니와 매일 수십 번을 싸워야 했구요ㅎ

계속 버려대는 아들과 그걸 계속 다시 가지고 들어오는 어머니와의 무한 루프 같은 싸움들.


결국 이사가 끝났지만 아직도 집안은 들어갈 공간을 찾지 못한 짐들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고

어머니의 고집과 막무가내에 매일 수십 번씩 빡친 제 몸은 스트레스로 인한 경직으로 사방이 파스투성입니다.

이 이사정리와 삑침의 끝은 과연 언제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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