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느끼는 첫 경험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현장에는 약 20여 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성별로 나누자면 남녀의 비율이 약 7:3 정도 되구요, 연령대로 따지면 50대 미만과 이상의 비율이 약 3:7 정도가 되는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하고 있구요.
나이 차이와 상관없이 상호 존대를 하고, 같은 시급을 받으며 같은 일을 하는 평동한 조직이라서 이런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고 느끼고 있지만, 간혹, 아주 간혹 말입니다. 저는 제가 이 조직에서 ‘마이너리티’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는 '조직 내에서 마이너리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 뭔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데 그걸 공론화시키기에는 눈치를 보게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 저는 ‘정규직’이었구요, ‘남자’였구요, 소처럼 일하는 “30대~40대”였습니다. 운 좋게도 서울 지역의 대학을 나왔고, 지금이야 ‘문송하다’는 말을 하지만 그래도 문과 중에는 취업이 잘 된다는 ‘상경계열 학과’를 졸업했고, ‘현역 군필’이라는 딱지(?)도 가지고 있었죠. 더 감사하게도 졸업하는 년도에 취업하는 회사의 그룹 공채로 입사를 했고, 이후 회사는 회사 창립 멤버로 일해왔구요.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저는 제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을 해결하는 것에 크게 눈치를 봤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게 부당한 것인지 아닌지 의견을 물어볼 공채 동기들이 있었고, 해결책을 상의할 선배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이게 고쳐져야 한다는 확신이 생기면 소속 부서의 장에게 자유롭게 건의를 할 수 있는 조직문화도 있었고, 인사담당자를 찾아가 요청을 할 만한 친분도 있었구요. 여차하면 사장님 방에 찾아가서 요청을 드려도 그분이 제가 누군지 얼굴 정도는 알 거라는 패기(?)도 있었던 듯합니다.
저는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어요. 제가 노력해서 당연히 얻은 것들이라고 생각했구요.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제가 회사나 이 사회의 다소 주류라고 할 만한 그룹에 속해있었어서 크게 부당하다고 느낄만한 일이 없었던 거였고, 제 주위의 선배와 동료들이 따뜻하게 봐준 거였고, 회사에서도 연봉 대비 퍼포먼스를 생각했을 때 가성비가 있을 연차이다 보니 그냥 잘 받아준 거였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건의하는 사항들이 그리 어렵지 않게 수정될 만한 소소한 일들이기도 했겠구요
그런데 이제 와서 제가 그런 주류에 속한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그건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됐어요.
제가 일하는 곳에 대화를 하며 상대방의 몸을 만지는 분이 있으세요. 팔이나 등이나 이런 곳들을 만지며 대화를 하시는데요... 저는 이게 불편합니다. 뭔가 그 손길이 아무 생각 없이 툭 치는 느낌이 아니라 쓰다듬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듯한데요... 가만히 보면 그분은 다른 분과 대화를 할 때에도 그런 듯하고, 그분의 동료인 여자분들과 팔짱을 끼고 걷거나 손바닥을 마주치거나 하는 스킨십이 자연스럽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그게 참으로 불편합니다. 가끔은 소스라치게 놀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일이 몇 번 있었음에도, 저는 아직까지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걸 공식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그분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이 이야기가 자칫 ''성적인 영역'의 문제로 번지지 않을지, 그렇게 됐을 때 그분의 절친들이나 제가 있는 조직의 다른 여성분들이 어떻게 반응을 할지.. 생각이 많아지고 눈치가 보여서 말을 못 꺼내겠더라구요. 좀 더 정확히는, 제가 문제를 제기해도 이게 납득이 되고 받아들여질 거라는 것을 제가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 말을 꺼내지 못하겠달까요. 저는 이렇게, 제가 불쾌감을 느끼고 있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데도 눈치가 보여 아무에게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이, 그리고 제가 제기하는 이슈가 조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참으로 낯설기만 합니다. 아마 이런 기분이 "직장에서 Minorit로 일하는 기분"이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되구요.
그분에게 어떤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분은 활발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분이거든요. 늘 안부를 물어주시고 먹을 것도 나눠주고 하는 고마운 분이기도 해요. 그래서 그분 하고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이야기를 꺼내기가 더 어려운 듯도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도 드는 거예요. 내가 이런 불쾌감을 느끼는데 저분이 과연 좋은 분인 건가. 저분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내가 이야기를 해서 하지 않게 하는 것이 그 분과 나의 관계에 더 좋은 것이 아닌가. 아니 다른 사람들과 모두 불편하게 되더라도 우선해야 하는 것은 "나의 감정"인 것은 아닌가.
말하자면 소소한 듯도 하지만, 당사자인 저는 괴로운, 그렇지만 말하기는 눈치가 보이는 이런 상태인 채로 시간이 지나고 있습니다. 아직은 눈치를 보고 있지만 곧 당사자분과 이야기를 해보려구요. 이런 걸로 끙끙거리는 건 스스로 저 답지 않다고 느끼고 있거든요. 커피를 마시며 편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게 불편하다, 조심해주시면 좋겠다구요. 그분도 아마 미안하다고 하며 잘 받아줄 거라고 믿어보려고 합니다. 만약 이야기가 제가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과가 흘러가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각오도 다지면서 말이죠.
이십여 년 동안의 직장생활 동안 수없이 받은 '차별'에 대한 교육의 내용과 의미가, 전에 없이 다르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지금의 이 불편함. 잘 해결되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