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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로백수 Mar 19. 2022

4일째 내리는 비가 미치는 영향

파란 하늘이 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창 밖을 보며 쓰는 이야기

요즘에 제 머릿속을 가장 많이 어지럽히는 생각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입니다


제 브런치를 구독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가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고는 있지만, 전 21년의 제 회사원 생활을 마감하고 백수의 삶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회사생활을 그만둘 때 각오한 것들이 있었어요. 소득의 포기, 그로 인한 생활수준 아니 정확히는 소비 수준의 하락, 원래 있지도 않았던 사회적 명예나 관계의 축소... 뭐 그런 것들요.


반면 기대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노년의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궁색하더라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고, 여유 있는 시간에 창에 드는 좋은 볕을 즐기거나, 좋아하는 노래를 종일 듣고, 가끔 사치하듯이 통닭 한 마리 정도 사서 부모님과 함께 먹으며 온종일을 아주 느긋하게 보내는 그런 삶 같은 거요. 시간이 나면 외국어 공부니 취미활동이니도 하면서 조금씩 나에게 충실해지는 것도 꿈궜구요.


그러다가 스텝이 조금 꼬였습니다 ^^'
집안에 부모님과 3명이서 24시간 같이 보내는 것이 주는 문제점을 해결하기도 해야 했고, 3년 백수생활을 하려고 모아둔 돈을 담아둔 SOXL이 올해 들어 반토막 나며 재정계획에 문제도 생겼고, 또 이사와 살기로 한 동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아는 사람들도 만들고자 하는 욕심도 생겨서 선택한 아르바이트 때문입니다.


제가 한 달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은 130여만 원 남짓. 제가 보유한 SOXL을 한 달에 1/36 만큼씩 팔아서 생활비로 쓰고 있던 것이 SOXL 폭락으로 차질이 생긴만큼 그 돈이 엄청 요긴하게 쓰이고는 있지만, 하루에 한두 번씩 과연 내가 이러려고 회사를 그만뒀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서울에서 혼자 직장생활을 할 때에 비해서는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엄청 늘기는 했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아르바이트하며 쌓이는 피로가 늘어나는 만큼, 함께 살기 시작한 초반에 비해 점점 그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기도 하고. 이렇게 지낼 거면 그냥 서울에서 회사 생활하며 돈을 많이 벌어서 부모님과 짧더라도 좋은 것들을 함께 하거나, 부모님을 돌봐드릴 간병인을 고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대학생 때부터 30여 년 맺어온 제 인간관계, 애정하는 지인들을 모두 서울에 놔두고 이곳에 내려와서, 상대적으로 공통점도 별로 없는 사람들과 크게 관심 없는 일을 하며, 많지 않은 돈을 위해 성취감 없는 일을 하고 지내는 것이 주는 심적 피폐함이 꽤 커지고 있달까요. 물론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사람들의 문제인 듯하지만요.


세상에 좋은 사람들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와 맞는 좋은 사람이 많은 건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친한 사람"이란, 나에게 심적 위안을 주는 "좋은 사람"이란 그런 거 아닐까요? 학창 시절을 공유하거나, 관심사를 공유하거나, 같은 업무 경험을 공유하거나 하는 등의 같은 "코드"를 공유하는 좋은 사람 말이에요.


우습게도 저는 지금까지 그런 코드를 "대학입시"나 "입사시험", "면접" 등의 사회적 필터를 통해 공유해왔더라구요. 그런 필터를 통과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나 교제하는 편안함이 생겼던 건 아닐까 싶어요 요즘. 상대적으로 정밀하지 않은 '시급제 아르바이트'란 필터는, 실은 필터로 작용하지는 못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함께 하는 사람들과 나의 공통적 코드를 찾기는 어려운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분들도 좋은 사람들이지만, 뭐랄까... 그냥 이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연락을 하지는 않을 것 같고, 저 분들과 인간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그닥 잘 들지 않아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같습니다.


며칠째 비가 오니 기분이 처지는 느낌입니다. 조만간 휴가를 내고 서울에 놀러 가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이곳에서도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겠지만, 그래도 아직은 내 마음의 고향인 그곳에 가서 수다 파워를 좀 충전하고 와야겠달까요. 그전에 이번 주말엔 부모님과 이것저것 맛있는 거 먹으면서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도 좀 늘려야겠다 싶구요. 이번 주말엔 분명, 2~3킬로 정도는 살이 찌겠네요 ^^'


다들 눈비 오는 주말 차분하게, 하지만 편안하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정말 파란 하늘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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