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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Feb 04. 2021

어묵 아리랑

-어묵에 담긴 이야기-


푹 끓인 육수에 양파, 버섯, 무를 넣고 팔팔 끓인 다음 어묵을 넣는다. 냄비 안에는 맛도 다양한 어묵들이 연신 동동거리며 맛이 깃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를 지났을까, 추운 겨울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나던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한다. 뚜껑을 열고 한 국자 퍼올려 호호 불며 맛을 본다. 부산 앞바다 어디쯤에서 어부들이 건져 올린 싱그러운 바다 내음이 알싸한 청양고추 냄새를 안고 입안에 퍼진다.


식탁에 앉아 어묵탕을 기다리는 눈길들이 나를 쳐다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어묵탕을 큼지막한 그릇에 담아 식탁 위에 내놓는다. 쉴 새 없이 달그락거리며 젓가락이 오고 간다. 나는 길쭉한 어묵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끝부분을 입으로 잘근 씹는다. 순간 어묵을 사서 포장을 한 다음 수레에 싣고 우체국으로 끌고 가서 우리에게 부쳤을 시이모님이 떠올라 목이 멘다.

며칠 전 일이다.


"질부, 내가 방금 어묵 조금 보냈다. 맛있게 먹게."

옆에서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남편이 전화기를 빼앗아 이렇게 추운 날 무겁고 힘들게 뭐 하러 보내셨냐며 버럭 화를 냈다.


"야야, 상현아, 이 늙은이가 그런 재미도 없으면 어찌 살겠노? 내 재미다. 화내지 말 그레이."

그 뒤로도 이모님은 오꼬시며 어묵을 간간이 사서 부치셨다.


"이모님, 어묵이 너무 맛있어요. 애들도 너무 좋아하고요."

하고 감사의 전화를 드리면 "질부, 그랬나."하며 그 뒷날 바로 사서 또 부치셨다.


돌아가신 어머님에게는 형제분이 여러 명 있었는데, 그 형제들 중에 유독 부산에 사시는 이모님과 사이가 각별했다. 부산 이모님은 길을 걷다가도 예쁜 옷이나 특이한 물건이 있으면 " 저, 옷 우리 막내가 입으면, 정말 이쁠 건데, 모양이 특이한 이 그릇은 우리 막내가 쓰면 좋을 낀데." 하시면서 소포로 부쳐 주시곤 했는데, 그 속에는 어머니 물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질부인 우리들에게도 가끔 따뜻한 솜바지나 신발을 사서 함께 부치셨다.


그런 어머니에 대한 이모님의 무한정 사랑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사랑은 우리에게 계속 이어졌다. 나는 이런 시이모님의 사랑이, 아니 관심이 싫지 않다. 가끔 시골 친구들과 통화를 하다 보면, 엄마가 어제 깨와 고구마를 보냈는데, 된장을 보냈는데 하며 은근슬쩍 자랑을 한다. 나는 부모님이 직접 자연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먹는 그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결혼하고 몇 년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봄에는 취나물이나 고사리를 말려 보내 주시거나 가을에는 고구마와 고춧가루를 보내 주시곤 했었다. 지금은 가까이 살며 밑반찬이나 고추장을 만들어 챙겨 주시던 시어머님도, 시골에서 제철에 나는 농산물을 보내 주시던 부모님도 이제 곁에 안 계신다. 늘 쓸쓸하고 허전했다. 이제 그 빈자리를 시이모님이 채워주고 있다.


"어머! 너 또 시골에서 고구마 부쳐 왔니? 나도 어제 부산에서 설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오꼬시와 유과를 우리 이모님이 부쳐 주셨네."

이렇게 즐거운 상상을 하며 바구니에 들어 있는오꼬시를 꺼내 살짝 깨문다. 달착지근하고 고소한 맛이 기분 좋게 입안에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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