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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풍차 Feb 24. 2021

청계야 청계야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겨우내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던 식물들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벌써 성급한 호접란은 꽃이 활짝 피기 시작했고 제라늄은 열심히 꽃대를 올리기 시작했다. 꽃시계가 봄을 알리며 식물과 꽃들을 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추위에 강한 식물부터 밖으로 옮겨놔도 괜찮겠다 싶어 베란다 물청소부터 시작했다. 날씨가 포근한 탓인지 밖에서 노는 아이들 소리가 제법 들린다.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 노는 소리를 거의 들을 수없었는데 오랜만에 들려온 반가운 소리다. 그때 밖에서 꽈당하는 소리와 함께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밖을 쳐다보니 아이가 자전거를 탄 채 넘어져 울고 있었다.


"며칠째 연습을 했는데 아직도 넘어지니. 네 친구 00이 좀 봐라. 너보다 훨씬 늦게 배웠는데 씽씽 잘 달리잖니."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일으켜 세울 생각은 안 하고 대뜸 야단부터 쳤다. 그런 아이 엄마가 못마땅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섰다. 그런데 자꾸 " 네 친구는 늦게 배웠는데도 씽씽 잘 달리잖니." 하는 소리가 이상하게 귓전을 계속 맴돌아 거슬렸다. 그것은 아마도 늘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고 있는 못난 나 자신을 그 속에서 발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속담에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말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항상 작아 보이고,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이 크게 보인다는 의미다. 나는 항상 내가 하는 일은 하찮아 보이고,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대단해 보여 잣대를 들이대며 그들과 비교하며 재단을 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자신감을 잃고 나 자신을 안으로 안으로 감추기에 급급했고 내 모습은 한없이 작아지고 피폐해졌다.


얼마 전 온양에 사는 언니가 비디오 영상을 보내 준 적이 있다. 그 비디오 속에는 청계가 알을 낳기 위해 자신의 둥지로 달려가는 장면이 담겨 있다.


" 애 막내야! 닭이 굉장히 멍청한 줄 알았더니 엄청 똑똑하더라. 우리가 멍청한 사람한테 닭머리라고 하잖아. 그런데 아니야. 닭들 엄청 똑똑해."

언니는 텃밭 가장자리에 작년 7월부터 닭을 키우고 있다. 청계와 일반 닭을 기르고 있는데 자꾸만 청계가 아무 곳이나 가서 알을 낳아 들고양이들이 먹어 버리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았다.

"애 청계야, 친구처럼 알 낳는 둥지로 가서 알을 낳아야지 왜 아무 데나 가서 알을 낳으면 어떡하니."

하며 알둥지를 보여 주며 여기다 낳으라고 몇 번을 야단을 쳤단다. 어느 날 심술이 났는지 청계는 친구가 낳은 알을 모두 쪼아 버려 못 먹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 진짜, 웃겨. 닭들도 남과 비교당하는 것이 싫은가 봐."

"언니, 정말로 닭들도 그걸 알까. 에이, 설마."

하며 그때는 언니 이야기에 맞장구를 치며 재미있게 웃어넘기고 말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인정해 주고 작은 일에도 칭찬을 해주자, 자신의 둥지로 알을 낳으러 달려간 청계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화면 속의 청계는 언니의 칭찬에 그렇게 행동했는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자신의 습관을 바꾸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변화를 위한 몸부림으로 자주 마음이 아팠고, 무너진 자존감은 열에 들뜬 듯 수시로 파닥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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